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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으로 하나되는 법우회를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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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0-02-25 14:55 조회3,0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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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으로 하나 되는 법우회를 만들어갑시다

 

송상욱_법우회장

 

사랑과 자비 광명으로 세상을 밝히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내가 팀장 자리에 앉고보니 두려움이 앞선다. 법을 모르는 팀장이라고 하늘이 웃는 것 같아 몇 가지 고민을 했다. 그래도 세월은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는 게 세상사이지만 돌아보면 오늘은 흔적 없이 사라진 땀방울이 아니던가.

그동안 법우회 팀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일련의 일들을 개인적으로 정리해보았다. 문제점을 알고 간다면 해결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더불어 이를 실천하는 과정들을 통해 이 또한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에 다가서는 길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의식에만 치우치지 말자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문화와 법을 구별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성지순례에 나서서 참배하고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는 등의 의식과 문화만을 불교로 알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그릇의 내용물은 보지 않고 그릇의 색깔과 질감만 얘기하는 듯하다. 부처님을 공양한 지 10여 년이 넘어도 부처님께 무엇을 올리는 것만을 불교로 알고 있으니 알맹이 없는 밤송이만 난무한 꼴이다.

생활과 동떨어진 논리 불교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를 얘기하라면 입으로는 줄줄 잘 외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생활 현장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제대로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가르침을, 삶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 불교 이론을 가십거리로 전락시켜 자신을 장식하는 액세서리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처님의 출가 목적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참자유를 찾고자 함인데, 우리의 앎은 자신의 자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부처님은 바른 생각과 바른 행을 일으키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팔정도'에서 가르치셨는데 우리는 이를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 것인가. 결국 사변이나 기복에 치우친 앎과 수행은 괴로움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무아집(無牙執)을 수행의 지표로 삼고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문제 해결을 찾고자 한다.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 법은 명확하다. 괴로우면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인연에 맞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혀 앞을 보지 못하는 어둠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길이 분명하다면 괴로울 까닭이 없다.

그래서 괴로우면 사로잡힌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수행이라고 하며, 그 목적은 바로 보는 것이다. 집착을 보고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연기법을 우리의 세계관으로 믿고

부처를 보면 연기가 보이고 연기를 안다면 부처가 보인다고 한다. 금과옥조처럼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는 연기법을 가치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는 유신론과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유물론이 잘못된 견해임을 밝히면서 인연론을 설파하셨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원인과 그 조건들이 모여서 생겨났다가 원인이 다하고 조건이 바뀌면 사라진다. 끊임없이 생명할 뿐 어떤 고정된 모양이 없기에 '무아'라고 하고, 끊임없이 생멸하기에 '무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무상, 무아는 연기 현상을 설명한 것이기에 연기를 알면 곧 부처를 아는 것이다. 이 연기법을 우리의 세계관으로 삼을 때 우리는 무한한 창조의 힘을 갖게 된다.

모든 법회는 연기법을 익히는 장

법이 곧 연기이고 연기가 불성이다. 이것을 제대로 익히고 터득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는 단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재교육해야 한다. 사업과 이벤트 위주로 진행되었던 행사와 법회를 연기법을 익히는 도량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법회는 연기법을 익히는 장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인연법은 한국인의 피에 녹아 있다. 이 뜻을 분명하게 밝혀서 숙명론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창조하는 동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자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자리가 되어야

드러냄을 통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들어보면서 자기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 법회는 자신의 집착을 제대로 보고 이것을 내려놓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마음 나누기와 나와 남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인연법에 비추어 객관화시켜 나가도록 운영해 나가야 한다.

연기법을 익히고 깨닫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누구나 오랜 겁을 통해 익혀온 습관이 있고,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가치관이 있다. 이것은 매우 강하여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연기법을 세계관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례들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모범 사례도 드물다. 다행인 것은 주위에 눈 밝은 선지식들이 많아 배움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스로 부족한 확신을 계속해서 다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연기법을 가치관으로 삼는 일은 점차 다가오는 미래의 확실한 대안이다. 그래서 더욱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법우회가 회원들이 연기법을 가치관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임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지난 10여 년간 초파일 행사 주관, 헌공법회를 집행하면서 부처님을 공양해왔다. 자신의 아집을 내려놓고 일관된 공덕과 원력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채우려고 한다. 이것이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주위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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