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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마음의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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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0-06-06 11:10 조회3,0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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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행로

이미현_출판인

 

 

어려서부터 유난한 길치인 탓에 지금도 어디 낯선 곳에라도 가게 되면 일단 인터넷으로 위치나 거리를 먼저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확인을 하고도 막상 길에 나서면 아프리카 사막에라도 떨어진 사람처럼 헤메이기 일쑤이니 자타공인 길치임에 분명하다.

살아오면서 길치의 면모를 드러낸 삽화를 들자면 무수하다. 이사 다음 날 집을 못찾아 퇴근길에 동네를 한 시간씩 뱅뱅 돈 적도 여러 번이었고, 어떤 장소든 서너 번은 가야 두 발이 기억을 저장한다.

산도 마찬가지. 어릴 때 아버지 손에 잡혀 산을 자주 올랐다. 갓바위 올라가던 산성 길 어디쯤에서 길을 잃어 두려움에 떨며 아버지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여직 오십 번도 넘게 오른 북한산이지만 일행 없이 나 혼자 올라가라고 하면 몇 발자욱도 못떼고 산 아래서 우왕좌왕할 것임에 틀림없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너도 나도 앞쪽은 무슨 산, 그 옆은 무슨 산 하며 동서남북을 가리키지만 나는 저 산이 도봉산인지 삼각산인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고개만 갸웃할 뿐이고 사방 산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는 그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낯선 풍경이나 풍물에 대한 호기심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 정작 이렇게 방향감각이 없다보니 현실에서 더러 난감한 상황을 맞기도 한다. 그나마 같이 움직이는 일행 가운데 길 감각이 뛰어난 이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더러 미안한 경우도 생기곤 하니 어쩌랴 감수할밖에......

이럴 때면 꼭 드는 생각이 있다. 목적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사방 팔방 길을 돌고 있는 이 모양새가 인생이라는 길 위를 헤메이고 있는 내 모습과 한치도 다르지 않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길을 나서기 전에 인터넷이나 경험자의 설명을 통해 어느 정도 숙지하고 출발했는데도 막상 길 위에 나서면 나침반 없는 여행자처럼 불안해진다. 그러다가 헤메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안한 마음은 갑갑함과 자괴감으로 바뀌게 되니 이러다가 아예 길 떠남 자체를 망설이게 되지나 않을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길 위에 서 있다. 나아가면 갈수록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헷갈리는 초보 운전자에게 네비게이션이 요긴하듯 굽이굽이 경계의 연속인 인생길에서 우리가 참으로 기대고 의지해야 할 곳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다. 비바람 속에서도 밤새 꺼지지 않은 빈자의 일등처럼 간절하게 마음의 등불로 삼을 일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우주 법계의 모든 현상은 마음의 작용이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 개개인의 삶 역시 각자 마음의 여정을 펼쳐 놓은 그림이다.

그런데 마음은 업의 작용에 의해 쉼 없이 움직이고 몸은 그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하게 되어 있다. 청정함도 마음에서 나오고 악업도 마음에서 비롯하므로 본래 맑고 탁함이 없는 이 마음을 잘 써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지 그렇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따로 놀다 보면 실생활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래서 선지식은 ‘일체 마음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 고구정녕 이르신 것이리라.

<혈맥론>에서 또 일렀다. ‘앞부처, 뒷부처가 다 마음을 일컬음이니 마음이 곧 부처’라고. 그러고 보면 이처럼 부처의 길, 마음의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 동서고금을 통털어 얼마나 많았던가.

일대사 인연으로 이 땅에 오셔서 평생 길에서 길로 가르침을 설하신 부처님께 지심정례 드린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을 개창한 달마, 머나먼 중국 땅에서 역경에 몸 바친 구마라즙, 죽음을 불사하고 사막을 건너 서역 길을 순례한 혜초스님과 많은 구법승들.... 구도의 길에서 큰 족적을 남긴 역대 조사 스님들과 현금(現今)의 스승들, 얼마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길 떠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바로 눈 돌려보면 사방에 마음의 길을 찾아 나선 선지식들이다.

그 귀한 발자욱을 좇아 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참 행복하다.

 

‘만법유심(萬法有心)

불가설(不可設) 불가설(不可設)’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다.

말로 할 수 없다. 말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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