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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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02-08 09:24 조회4,138회 댓글0건본문
[유니텔 부처님나라 정기참선법회] 2003년 2월.
마음의 행복
축서사 무여큰스님
(큰스님) "몇시에 오셨나?"
(수련화) "차가 막히고 길이 얼어서 11시 정도에 도착했습니다."
(큰스님) "음... 새 얼굴도 있네… 뭐 공부를 좀 열심히 하시는가? "(일동 웃음)
요새 그 시중에서 많이 팔리는 책 중에서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이라는 책이 많이 팔린다고 하데요. 그리고 틱낫한 스님이 쓰신 ‘화’라든지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그런 책이 잘 팔린다고 해요. 작년에 어디에서 보니까 현존하는 인물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분이 달라이라마라고 하데요.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망명정부 수반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인 총책임자가 달라이라마인데 그 ‘행복론’도 난 자상하게 읽어 보진 못하고, 대충 이래 넘겨만 봤는데, 행복은 마음에서 온다 그런 내용일 거예요.
그리고 월남의 스님이 쓴 ‘화’라든지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는 책도 바로 수행을 그대로 나타내는 그런 표현이래. 화는 수행만 잘 하면 저절로 없어져. 수행이 원만한 단계에 들어가면 마음은 아주 평화로워. 아주 고요하면서 맑아. 그런가 하면 얼굴에는 자연적으로 미소가 떠 오르는 것이 수행자인데, 즉 마음은 아주 편하고, 아주 평화롭게 얼굴에는 그 미소가 떠 오른다는 것은 행복을 그대로 상징하는 거래.
행복은 수행에서만 느낄 수가 있어요. 수행을 떠난 행복은 사실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있어도 그건 보잘 것 없고 아주 별 것 아닌 그런 수행이라 할 수가 있어요. 어쨌든 수행을 지극하게 해서 행복을 맛보지 못하면 진정한 행복은 모르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어요. 세속에서 살면서 돈을 번다든가, 명예를 갖춘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권세나 세상 사람들이 보통 바라는 오욕을 갖추면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겠지. 그러나 그 행복은 순간적이라 아주 짧은 시간, 잠깐 왔다가 가요. 그런 행복 뒤에는 거의 괴로움이 따라요. 그러나 수행에서 한 번 느끼면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정도로, ‘아! 이것 뿐이다. 나야말로 참으로 행복하다 이 수행하는 것이 아주 즐겁고 정말 잘한다’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있는데… 여러분도 수행을 좀 지극하게 해서 참행복이 무엇인지 꼭 느껴서 인생의 보람과 긍지를 꼭 느끼시기 바래요. 수행은 웬만큼만 하면 참으로 대단한 것을 느껴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좀 갖추지 못하고 좀 진지하게 하지 못하면 조금 편해 가지고 맑아지는 그런 정도는 느낄 수 있지만 깊게 들어가기는 좀 어려워요. 어쨌든 수행에서 행복을 못 느끼고 인생에서 진정한 값어치를 못 느끼면 그 분은 헛 사는 분이다. 반쪽 인생도 못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늘 수행을 해가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아주 보람 있고 알찬 그런 한 해가 될 거예요.
새해 덕담 중에서 일신일신하라 그런 말을 하는데 일신 날로 새롭게 나
날이 새롭게 그렇게 살아가는 분이 잘 사는 분이 아니겠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날로 새롭게 사는 것은 돈을 번다든가 명예나 권세에서는 날로 새롭게 살기가 어려워요. 반드시 수행이 곁들어야 돼요. 수행이 없는 그런 생활은 새로울 수가 없어요. 새로운 것 같아도 새롭지 못하고요. 사람은 늘 새롭게 살아서 침체되지가 않아야 돼요. 늘 새 기분을 느낄 정도로 사셔야 되요. 꼭 같은 공간 즉 집이면 집, 직장이면 직장, 늘 같은 공간에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끼리 아니면 식구끼리 늘 같은 생활을 하더라도, 즉 빨래하시는 분은 빨래하고, 밥하고, 주부 같으면 살림을 늘 같은 공간에서 하더라도, 또 직장 일도 늘 비슷한 일을 계속 하더라도, 날로 좀 새로운 기분을 느낄 정도로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달라야 돼요. 오늘보다 내일은 더 잘 살아야 돼요. 내일보단 다음 날이 더 좋아야 되고, 점점 발전되는 새 기분을 느낄 정도로 그 삶의 진정한 새로운 느낌을 느낄 정도로 그래 사셔야 될 거래요.
그래 살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된다는 것, 수행을 하지 않고는 절대 새 기분을 느낄 수 없어요. 외부의 어떤 영향으로 물리적인 어떤 힘으로 새로운 기분을 느끼기는 어려워요. 그것도 느낄 때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래요. 이 새 기분을 반드시 제대로 느끼려면 마음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 그래서 마음공부가 참으로 좀 깊어지면 마음은 늘 평화로워요. 옆에서는 죽느니 사느니 한다든가 아무리 어렵고 괴롭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은 아주 평화로워, 아주 고요하고 아주 편안해져.
그래서 옛 어른 말씀에 아 이것이면 되지 않느냐. 즉 마음 편하면 되지 않느냐 그런 말이 있어요. 마음 편안하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그런가 하면 마음만 편하냐 묘한 즐거움까지도 느껴요, 아주 묘한. 편하고 즐거우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즉 행복을 느끼는 거래요. 삶의 진정한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가 있어요. 어쨌든 그런 것은 수행에서만 가능하다. 수행을 떠나서 그런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어요. 평시에 좀 어렵고 잘 안 되는 것 같더라도 늘 수행하려고 애 쓰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는 일반적인 이야기고, 실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여러분 공부에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이 좋으니까 자기 공부에 대해서 솔직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물을 것이 있거든 물어요. 내 거기 적당한 이야기를 해드리면서 법문을 대신 할께요. 법문도 일반적인 법문이 있고, 특별한 법문이 있어요, 보통 누구에게나 맞는 그런 법문이 있는가 하면 자기에게 특별한, 자기한테 꼭 맞는 그런 법문이 있어요.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는 것도 건강을 전체적으로 좋게 하는 그런 방법이 있는가 하면, 아픈 부위에 꼭 맞는 꼭 찌르듯이 고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약이 필요해요. 그런 약을 안 쓰면 건강이 좋아지기 어려워요. 그래서 법문을 듣는 것도 아주 특별하게 자기에게 꼭 맞는 그런 법문을 듣는 것이 좋아요. 여러분 멀리 왔으니까 자기 공부를 이야기 해 주면, 또 문제점을 스스로 노출시켜서 질문을 하면 내 거기에 적당한 대답을 해 드릴께요. 질문 있거든 물어봐요.
(SRH) 두 가지 여쭙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다른 것들을 들을 때 점점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단전으로 들려서 단전과 상대방과 통하는 그런 것을 많이 느끼는데 어떤 이치에서 그런 건지 여쭙고 싶고, 또 한가지는 항상 간절하게 공부에 대해서 그리워하고 해야겠다 마음먹고, 제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판단하기에는 간절함을 항상 갖고 있는데 실제로 실생활을 하면서 앉는 시간 자체는 양이 중요하진 않다고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일진대 많이 앉지는 못하거든요.
시간자체가 중요하진 않지만 마음은 간절하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것은 그 간절함이 적어서인지 아니면 그 동안의 습 때문에 그런 건지 자신을 경책하는 의미에서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싶습니다.
(큰스님) 단전이 그렇게 의식되는 것은 단전으로 그간 나름대로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애 쓴 결과라. 즉 마음이 주인공이 단전 쪽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는 상황이래요. 그래서 흔히 보통은 머리로 생각한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또 머리로 생각도 하는데 머리든 단전이든 아니면 예를 들어서 손 바닥 위든 꾸준히 수행을 해서 단련만 하면 어느 곳이라도 다 생각을 하고 그 자기의 주인공이 한 곳으로 모여요. 그래서 어떤 곳이래도 즉 처처가 바로 주인공이 있는 그 자리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단전은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안 들고 막연하고 참 덤덤한 그런 단전이지만 애 쓰다 보면 아주 예민한 단전이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머리 이상으로 머리보다 명석하고 아주 날카로운 그런 것이 될 수가 있는 것이 단전인데 어쨌든 그렇게 꾸준하게 단전으로 집중시켜서, 단전에서 수행의 본틀을 갖추어 갈 수 있도록 고래 애쓰고 노력해요. 그러면 수련화는 여성이고 그리고 여성이니까 좀 기가 좀 약하다거나 마음가짐이 좀 강하지 못하다든가 좀 남성적이지 못하든가 그럴 수가 있는데 단전으로 늘 집중해서 수행해가면 아주 강한 그런 그 단전이 돼서 좀 성격도 남성적이 좀 될 수 있고, 즉 강한 의지를 가질 수도 있고, 단전 자체가 아주 튼튼하면 하복부가 아주 튼튼해져요.
그래서 어디 가서 배짱도 있고, 여성적인 아주 나약함이라든가 흔들림이 많은 그런 마음이 상당히 없어져서 아주 특별한 갖춤을 갖출 수가 있어요. 단전을 꾸준히 그렇게 애쓰고.또 한 가지는 본인은 이야기처럼 그렇게 느껴질 수가 있는데, 그러나 간절하게 하기는 좀 어려워요. 그러나 간절하게 안 되더라도 아주 간절하게 늘 애 쓰고 애써요. 그러면 어느 날 문득 참으로 간절해져. 그래서 공부가 아주 일취월장하듯이 수승한 그런 경계를 스스로 느낄 수도 있는데, 어쨌든 늘 간절한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되도록 노력하고 애를 써요.
공부는 그 사람에게 적당하게 해야 돼요, 적당하게. 이 살림을 살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이 살림을 사는 것도 수입이라든지 가족 상황 여러 가지를 참작해서 적당히 해야 참 알뜰한 그런 살림이 되고 행복한 그런 살림이 될 수가 있어요. 돈 많이 번다고 해서, 펑펑 쓴다고 해서 행복한 살림이 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부가 어떤 살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집이 행복이 오느냐 못 오느냐 그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을 거래요.
그렇듯이 직장인이 직장에 근무하는 것도 그래요. 흔히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다, 좋은 직장보단 나한테 맞는 직장이어야 돼요. 그래야 내가 직장에 참으로 가서 일도 열심히 하고 하는 보람도 느끼고 그래서 성과도 거둘 수가 있을 거래요. 나보다 너무 격이 높다든가 내가 감이 도전하기 어려운 그런 직장에 취직하면 오히려 실력이 없는 사람이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면 여러 가지 부족하고 못난 점이 드러나요. 그러면 아주 어려워요, 괴롭고요. 그래서 좋은 직장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듯이 공부 자체도 그래요.
내게 아주 적당하게 맞는 공부를 해야 되요. 그래서 나를 키워가면서 내 인생도 그렇게 적당하게 살아가야 되고요. 그래야 행복이 와, 그래야.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훤칠한 아주 대단한 그런 도인 스님들이 있어요. 나는 10점짜리 인간인데, 80점짜리 90점짜리 인간이 하듯이 그렇게 도전하고 그런 흉내내다가는 평생 따라가도 못 따라가. 가랑이 찢어져요. 내가 10점짜리 같으면 10점짜리가 할 수 있는 적당한 그런 수행을 해야 돼요. 그렇듯
이 내게 맞는 내게 적당한 그런 수행을 해야 돼요. 그래야 쉽고 또 의외로 깊게 느껴지고 그런 가운데서도 참으로 그 수행의 기쁨을 느껴요.
(JYJ) 요즘은 회사에서 일이 굉장히 바빠서 따로 정진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고요, 이렇게 피곤한 상태에서는 정진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가요?
(큰스님) 피곤하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직장을 파하고 들어와서 조금 괴로운 상태라든가 그럴 땐 갔다, 와서 먼저 샤워를 한다든가 좀 기분을 전환 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서 외형적으로 어떤 조치가 있고 난 후에, 한 10분이나 20분 정도 아주 편안하게 누워요. 그래서 그날 쌓인 피로나 스트레스 같은 것을 싹 좀 해소를 시켜, 일단은. 그러고 일어나서 바르게 정좌해서 그렇게 해요. 공부 자체가 너무 갑자기 너무 되게 너무 알뜰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에는 약간 느슨하듯이 좀 부담 없이.
그래서 얼마간은 아주 가볍게 그렇게 하다가 서서히 본격적으로 고래 해 나가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마음도 아주 편하고 드는 공부 자체도 아주 무난하게 흡취 내비(?)될 수 있어요. 젊은이나 기운이 펄펄 하는 분
은 바로 앉자마자 바로 해도 괜찮아요. 그러나 보살 같은 경우나, 연세가 높은 분들 기력이 좀 약하신 분들은 일단은 좀 쉬어서 그간 쌓이고 쌓인 피로나 스트레스나 괴로움 같은 것을 좀 소멸시켜서 아주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래 달래듯이 적당하게 수행하면 의외로 바로 나름대로 마음이 편하고 아주 고요해져요. 그러면 그날 쌓이고 쌓였던 그런 것이 원천적으로 해결될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 수행 자체가 진지하게 들어갈 수가 있는데.
어쨌든 그날 기분에 따라서 자기의 컨디션에 따라서 적당하게 그렇게 해나가면 아주 알맞고 바로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런 것이 바로 지혜라, 그런 것이. 그래서 화두 하는 것도 처음부터 어떤 분은 과격하게 막 밀어 부치듯이 되게 하는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은 십중팔구는 상기가 와요. 젊은이들로서 또 공부가 한창 될 때 그럴 때는 막 마구 밀어 부치듯이 그래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보통 사람은 그리 해서는 안 돼요. 보통 사람은 자기에게 좀 맞도록 적당하게 고래 해나가야 되. 아까 이야기 했듯이 그날의 기분이 어떠냐 컨디션이 어떠냐, 그날의 여러 가지 기분도 상승 무드를 탈 때가 있는가 하면 하향곡선을 그릴 때가 있어요. 아주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어요. 아주 좋을 때가 있고요. 아주 좋더라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적당한 그 기분에 따라서 맞추어서 화두를 들어 나가고 염불을 해나가는 거래요, 맞추어서. 그래야 아주 되는 자체도 적당하게 되지.
행복은 크고 화려한 데서 있는 것이 아니래요. 보잘것없는 데서, 아주 별 것 아닌 데서 즉 가까운 데서나 대단치 않은 데서 행복을 느낄 수가 있어요. 즉 공부의 행복도 그래요. 그 요란스럽게 막 대단하게 해서 느끼는 분도 있지만 좀 느슨한 것 같고 조금은 답답한 것 같고 너무 약하지 않느냐 그런 느낌에서 출발하면 의외로 쉽게 바로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럴 때 자상하게 자기를 점검하면 자기를 거의 알 수가 있어요. 거기에 맞춰서요.
(JYJ) 업무 중에 정신이 없을 때가 막 이어지다가 숨 돌릴 짬이 생기고, 이렇게 이어지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을 하나요.
(큰스님) 업무 중에? 그 마음이 이레 순간적으로 일정하게 계속 되는 분이 있고, 순간적으로 변하는 분이 있고, 아주 끊기듯이 딱딱 간격이 있는 분이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요. 아주 고요하게 가져요. 즉 번뇌망상이나 괴로움 같은 것을 일체 배제하고 아주 마음을 고요하게 해. 고요하게 하면 맑아져요. 맑아지면 끊임이 없어요. 간단이 없어요.
그러면 아주 초롱초롱한 생각으로서 업무를 보더라도 제대로 볼 수가 있
고 그렇게 보면 일 하는 능률도 오르고,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아도 능률이 올라요. 그런가 하면 아주 올바르게 제대로 할 수가 있고요. 고런 정도까지는 하면 수행하는데 보람을 느끼지. 어쨌든 일에 내 공부가 적용이 되도록 해요 도움이 되도록. 공부 다르고 일 달라선 안돼. 공부에 일을 접목 시킬 수 있어야 되고, 일에 공부를 접목시킬 수 있어야 돼. 일과 공부 전혀 다른 것이지만 접목시키려면 시킬 수 있어요, 그게 지혜라. 그렇지 않으면 공부하고 일하고 늘 다른 것처럼 별개의 것으로 느끼기가 쉬워. 그래 해서는 깊은 것을 못 느끼고 일에 별로 도움도 안돼요.
(JI) 저는 미국에서 온 자인입니다. 지금 화두 수행을 하고 있는데요, 저한테 맞는 공부가 어떤 것인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화두 수행을 하거든, 화두 얼마나 하셨어요?
(JI) 얼마 안 했어요.
(큰스님) 얼마 안 했거든 호흡법을 하시지. 호흡법을 해서 일정한 단계가 되거든 그때 가서 화두 수련을 하고 초보단계에서는 호흡법으로서 일단은 기초를 다져서 그래 본격적으로 서서히 좀 격을 높이시지. 어쨌든 주부라든가 또 생각이 좀 많은 분들, 스트레스 같은 것을 많이 받는 분일수록 호흡법으로 하면 좋아요.
(JI) 일을 할 때는요?
(큰스님) 일을 할 때는? 무슨 화두를 들었소?
(JI) 이뭣꼬요.
(큰스님) 이뭣꼬를 들었어? 그럼 이뭣꼬를 들었거든 굳이 호흡법으로 바꾸지 말고 호흡에 의지해서 호흡을 해요.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이뭣꼬…
(JI) 일을 할 때도요?
(큰스님) 그렇지 계속이지
(JI) 그런데 제가 일을 하면서 의식을 단전에다 두고 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하는 일이 아침에는 굉장히 바빠요. 그런데 어느 날은 몸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마음이 편안한 걸 느꼈어요. 그래서 그냥 계속 단전에 의식을?
(큰스님) 단전에 늘 두면서 해요. 의식은 늘 단전에 둬요.
(JI) 하면서 화두는?
(큰스님) 이뭣꼬 그대로 하시고요. 일을 좀 열심히 하고 일에 빠지면 화두를 놓치는 수가 있는데 그건 뭐 자연스러운 현상이래요. 그래서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 일에 두느냐 화두에 두느냐 중요한데. 일할 대는 일에 비중을 둬요. 일 안 하고 화두만 할 때는 화두에 빠지고요 어쨌든 그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이뭣꼬… 이뭣꼬… 그래 하면 호흡법이나 다름이 없어요. 화두 참선 중에서 최상은 화두래요.
요새 수행법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최상은 화두법이래요. 그러나 화두법이 보통 세속인들이 하기가 조금 어려우니까.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 본격적으로 못 하니까 그래. 어려우니까 화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그래서 일단 호흡법으로 기초를 다져가지고 하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웬만하면 바로 화두하는 것이 사실은 더 좋아요. 그러나 보살 같은 경우는 운동도 좀 겸해서 즉 건강도 좋고, 수행도 되는 그런 방법이 바람직하니까 그런 방법으로서는 그렇게 화두를 하면 좋아요.
(JI) 운동하고 겸할 수 있는 거요?
(큰스님) 호흡법 자체가 운동에 들어가는 거예요. 꼭 움직여야 운동이 아니고 사실은 진솔한 운동은 내면을 호흡으로 즉 공기로서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이 운동이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가 있어요. 꼭 팔다리로 움직이는 것만이 운동이 아니라.
(YRW) 저는 서울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에 한 3년간 다니고 있습니다. 거기서 지장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을 하면 좋은가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큰스님) 지장기도가 잘 된다 싶을 때, 어느 정도 되던가요?
(YRH) 지장기도를 시작할 때는 제 소견으로 제가 업장이 두텁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업장소멸을 하기 위해 고심을 하다가 봉은사에서 기도를 잘 하는 것 같이 생각이 들어서 지장기도 팀에 들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항상 공부에 대한 수행을 바르게 하고 싶은 그런 간절함으로 따라 왔습니다.
(큰스님) 그래 좋은 생각인데, 지장기도를 하다 보면 잘 된다 싶은 때가 여러 번 있었죠? 그럴 때 고 상황이 어땠어요?
(YRH) 상황은 많이 제가 마음도 편안해졌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배우고 싶은 그런 경우가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책도 보고 여러 가지 듣기도 하고…
(큰스님) 그러면 지장기도를 많이 하셨거든, ‘지장보살 부르는 것이 이뭣꼬…’ 하는 그런 화두를 하세요. 지장보살 부르는 것이 이뭣꼬. 그 지장보살… 하다가 보면 지장보살에 폭 빠지는 그런 경우가 있었을 거래요. 폭 빠지는 경우는 한 곳에 집중이 되는 상황이래요. 집중이 되면 아주 고요해져요. 집중이 되는 그 때를 기억하면서 지장 부르는 것이 이뭣꼬 하는 그런 참구를 해요. 보살님처럼 호흡에 의지해서 즉 단전호흡, 심호흡, 복식호흡이라고 하는데 호흡을 좀 깊숙이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이뭣꼬… 들이키면서 지장보살 부르는 것이 내쉬면서 이뭣꼬… 이렇게 하세요.
좀 된다 싶거든 그 자체가 너무 번거롭거든 들이키면서 지장보살 부르는 것이 그것은 빼고 그냥 이뭣꼬만 하구요. 처음 시작할 때는 반드시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부르는 것이 이뭣꼬 그래 하시구요.
(SRH) 한 법우님을 위해 여쭙고 싶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거나, 직장이나 가정에서나 잘 안 풀린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좀 되다가도 잘 안 되고 시련이 온다거나 그런 경우가 있는데… 특히 불법을 접하지 못하셨거나 초심자의 경우는 그런 경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몰라서 힘들어 하는 분을 위해 어떤 말을 해줘야 되고 그분들이 어떤 사실을 알아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큰스님) 사람은 자기를 알아야 되요, 자기를.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 자기가 몇 점짜리 인간인가, 자기의 분수나 됨됨이나 자기의 능력을 알아야 되요. 그래서 적당한 사업을 하더라도 해야 돼요.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자기는 10점짜리 인간인데, 80점 90점 도전하면 매번 실패하고 말아. 10점짜리 인간이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을 하고, 그런 공부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돼. 그래서 자기를 얼른 파악해야 돼. 그래서 자기에 맞는 그런 삶을 살아야 돼. 그러면서 매일 자기의 부족한 점, 못난 점, 어리석은 점을 매일 고쳐나가고 매일 잘 살려고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되고. 그럼으로써 나날이 발전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아까 이야기처럼 날로 새롭게 살 수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매일 저녁에는 꼭 그날의 결산을 반드시 하세요, 그날의. 내가 그날 그 시간까지 얼마나 잘 살았느냐. 잘 살았으면 뭘 살았느냐. 못 살았으면 문제가 뭐냐, 단점은, 약점은, 부족한 점은, 고칠 점은 뭐냐. 하나하나 점검하고 따지듯이 추출하듯이 해서 늘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고 반드시
고쳐나가요. 바로 고칠 수 있는 것은 바로 고치고, 바로 고칠 수 없는 것은 메모라도 해서 꾸준히 계속 고쳐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나라는 인간을 계속 매일 만들어 가요. 그래서 어제보다는 오늘 내가 확실히 좋아야 되요. 내일은 오늘보다는 더 발전적이고 더 달라져야 되고. 다음날은 더 긍정적이어야 되고요. 그렇게 자기를 계속 고쳐 나가고 좋게 해나가는 거래요.
고쳐서 좋게 하려고 애 써도 잘 안 되는 것은, 자기를 계발함으로써, 즉 수행함으로써 머리를 더 초롱초롱하게 하고 마음을 아주 고요하게 해서 더 깊게 생각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해서 더 잘 하게 하는 거래요. 그러면 매일 발전할 수 밖에 없어요. 스스로 느낄 정도로 발전이 되도록 살아야 되요. 안 되는 분은 반드시 안 되는 이유가 있어요. 따져보면 아 이래서 안 되는구나. 이래서 문제구나 대번에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어쨌든 매일 잘 살 수 있으려고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되. 인생은 작가가 자기라는 작
품을 만들듯이 살아가야 돼, 자기라는 작품을. 조각가가 매일 다른 작품을 만들어 가듯이 자기라는 인간을 만들어 가야 돼요. 만들려면 직접적으로 문제점을 추출해서 고쳐나가고 좋게 하는 방법도 써야 되고, 그런가 하면 간접적인 방법도 써야 되고요.
그럼으로써 그런 것이 좀 어렵고 잘 안 되는 경우는 기도라든가 또 자기를 더 잘 계발해서 잘 하려고 애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수 밖에 없고 달라질 수 밖에 없지. 뭐 여러 번 실패하고 뭐가 잘 안 된다 하는 사람은 둔한 사람이래요. 인생에는 실수가 없어야 되요. 흔히 산전수전 다 겪는다. 산전수전 겪는 사람은, 그 분은 뭐 한가지 성공 못 해요. 큰 성공하기 어려워요. 실수 없이 살아야 되요. 했다 그러면 성공해야 되요. 그 정도로 깊게 생각하고 노력해가면서 그 몸부림치는 가운데서 아마 보람과 참 긍지를 느낄 거래요. 아주 둔한 학생이 공부 잘 하기는 어려워요. 아주 능력이 없는 분이 참 크게 성공하기도 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뭐 참 천재적인 그런 머리를 가진 분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아주 능력이 대단한 분도 있지만, 꾸준하게 계발하면 얼마든지 천재성을 계발할 수가 있고, 자기 능력을 얼마든지 계발할 수가 있어요. 그게 수행이라. 그게 화두고 그게 바로 기도래요. 자기를 계발하는 좋은 방법이래. 그래서 사람은 눈망울이 막 초롱초롱해야 돼요. 막 빛나야 돼요. 즉 지혜가 번득거려야 돼요. 아침에 출근 할 때 막 설레일정도가 되야 돼요. 어서 가서 일 하고 싶다든가, 어서 빠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을 다스릴 줄 알아야 돼요. 무슨 일을 하면 푹 빠져야 되고요. 돈을 잘 못 번다, 지위가 좀 낮다, 잘 못 산다, 그런 사람은 아주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자기 자신을 잘 점검해서 그렇게 되려고 바짝 애를 쓰세요. 그 뒷받침은 반드시 수행이 돼야 돼요.
(BJ) 경전을 읽다 보니 아상 등 상에 대해서 해석이 나오는데 와 닿지 않아서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대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큰스님) 상은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말해요, 교만심.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사상상이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은 자기를 너무 내세워요. 자기 위주로 살고, 자기 본위대로 생활하려고 하고. 그래서 나를 너무 내세우고 나 위주로 내 본위대로 살다가 보면 남하고는 거리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남을 멀리하고 남을 좀 무시하고 남에게는 관심도 안 갖고 사는 그런 것이 상인데 부처님은 아주 자비한 분이래요. 자비해서 나보다는 남을 더 생각
할 정도로 큰 마음을 가진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즉 그럴 정도로 큰 마음을 가지고, 넓은 마음으로써 대하고 어떤 것이라도 그런 마음 자세로 살아가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인데, 어쨌든 그런 고집, 자기위주, 자기 본위대로의 생각, 그것이 바로 상이래요. 그런 상을 없애야 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전혀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 큰 마음을 가지는 분이 바로 큰 사람이고 대인이다 할 수 있어요.
(BJ) 4가지를 똑같이 생각하면 됩니까?
(큰스님) 다 달라요.
(BJ) 각각의 차이점을 알 수가 있을까요?
(큰스님) 그거는 길게 이야기 하자면 시간이 걸려요.
(DW) 지금 수식관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처음 2001년도쯤에 큰스님 법회 때, 참선수행을 할 때 경전이나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셔서 가급적 책을 읽지 않았는데 너무 모른다고 생각을 해서 경전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요?
(큰스님) 너무 모르는 상태 같으면 기초적으로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어요. 불교적인 지식을. 기초는 갖춰야 돼요. 여의도의 63빌딩 그런 높다란 건물을 지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되잖아요. 그래야 한강 같은 백사장에도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자기라는 한 인간을 여의도 63빌딩 같은 크고 높은 그런 사람이 되게 하려면 기반이 좀 제대로 닦여야 돼요.
그래서 이론도 좀 갖추고 학문적으로도 접근하면 좋고요. 그래서 충분히 발심을 하고 심신을 갖춘 그런 상태에서 공부를 하면 더 잘 되는데, 직장 생활을 한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바쁜 상황에서 그래 하려고 하면, 이것저것 갖춘 연후에 하면 좋긴 좋은데 갖출 여유가 없는 기라. 그래서 제대로 못 갖춘 상태에서 꼭 필요한 것만 내다 가지려고 하다 보니깐 수행을 그리 하는 게 좋다. 수행이 뭐냐 하면 그걸 아셔야 돼요. 수행은 마음
을 아주 고요하게 해서,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수행이래요. 마음을 아주 고요하게 해서 맑게 하는 것이 수행이래. 그건 기본이래요.
참선을 하는 분도 고래 안 되면 그건 잘 못 되는 거래요. 기도나 염불을 하는 분도 그렇게 안 되면 그건 잘 못 되는 것이고요.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하게 하려면은 즉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면 번뇌망상이 없어야 되요. 일체 욕망마저도 다 사라져야 되고요. 경을 읽는 것은 이론적으로 갖추는 거래요. 이론적으로 갖추는 것은 그 말씀 자체는 좋은 말씀일지 몰라도 마음을 오히려 번거롭게 하고 어지럽게 해요. 번뇌망상을 많이 떠오르게 하구요. 그래서 수행하는 데는 경전도 보지 말라는 이유가 바로 그거래요.
그러나 공부를 더 잘 하게 하고 싶은 그런 생각을 내는 즉 발심하는 데는 좋아. 그러나 실제 그 마음공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마음 공부할 때는 책도 보지 말라, 어떤 데 관심도 갖지 말라, 전화도 받지 말라, 특별한 이유가 없거든 어디 오가지도 말고 오직 거기에 빠져라 하는 것은 번뇌망상의 근원이 될만한 것은 제거해서 아주 고요하게 한 곳에 빠지기만 하라는 거래요. 그래야 마음 공부 자체가 되는 거래요. 그래서 자기 필요에 따라서 아주 기초가 없어서 기초를 좀 갖추고 싶거든, 갖추어 가면서 책도 좀 봐가면서 하되, 할 때는 그 책도 놓아 버려요. 책에서 알았던 그런 이론적인 것도 생각하지 말고, 이 처사가 질문한 사상에 대한 것도 생각하지 말고. 사상도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그것까지도 생각하지 말라는 거래요.
어쨌든 그렇게 마음을 아주 일체 번뇌망상을 다 제거하고 뭐 하고 싶다는 욕심마저도 내지 말고 오직 거기에 빠져야 고요해져요. 그래야 마음 공부가 되고 그걸 수행이라고 그걸 도 닦는다고 해요. 그것이 아니면 책을 천 권 만 권 봐도 부처님의 그 진솔한 뜻을 몰라. 거기 안 들어 가면 아무리 절에 자주 오로, 뭘 잘 하고, 부처님 말씀을 앵무새처럼 아주 좋은 말씀을 하더라도 수행하고는 거리가 멀어. 그저 남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데 그쳐. 내 마음 공부는 아니래. 그렇게 번뇌망상을 다 비우는, 없애는 것을 흔히 마음을 비운다 해요. 즉 마음을 비우면 바로 고요해져요. 그 없애는 작업이 바로 수행이래요.
부처님 말씀에 부처님이 제일 먼저 부처님이 되고 나서 제일성이 뭐였었느냐 ‘아~ 희한하구나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덕성을 갖췄네.” 즉 본래는 부처라는 거래요. 본바탕은 부처님과 꼭 같다는 거래요. 그런데 왜 부처가 못 되느냐 번뇌망상 때문이라는 거래요. 번뇌망상이 마음을 흐리게 해요, 흐리게. 그래서 밝은 마음, 본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래요. 그 번뇌망상을 없애는 작업이 바로 공부래요. 그러니깐 처사가 본인에 맞춰서, 책을 조금 보고 싶거든 봐 가면서 그래 하시고요. 이 수행이 뭐다. 잘 사는 길이 뭐다 라는 것을 아세요. 그래서 거기에 맞춰서 살아야 돼요.
(EG)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게 수행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맘이 상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데, 말을 안 할 수도 없고요. 말을 많이 하면서도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나 수행과 연관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대인과 소인의 차이는, 대인은 무슨 다툴 일이 있을 때 막 싸움질할 때, 할 때는 막 되게 아주 지나치게 할 정도로 딱 하고 나면, 돌아서면 잊어버리듯이 일체 생각을 안 해요. 어떤 분은 부부싸움도 잠 자기 전에는 살림이 거덜날 정도로 대판 싸우다가 누우면 코 고는 사람이 있다는 거래요. 그런 사람 있다고 하지. 근데 어떤 분은 한 번 싸우면 전부 잊질 못해요. 늘 찌그랑찌그랑 하듯이 따지고 문제 삼고 그런 분이 있어요. 즉 대인은
한 번 깊게 생각하고 뭐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장면만 지나면, 그 순간만 지나면 잊어버리듯이 생각을 놓을 줄 아는 분이 대인이다...
그런가 하면 소인은 두고두고 생각하는데, 습을 그렇게 좀 들이려고 애를 써요. 즉 생각을 할 때는 아주 깊게 심사숙고 해요. 그런가 하면 이야기할 때는 열심히 이야기 하고, 그 순간 딱 지나거든 그걸 좀 잊어버리듯 이 마음 자체를 놓아버려요, 그런 훈련을 하면서. 그런 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잘 되느냐? 이야기처럼 잘 안 되는데 그럴 때는 얼른 수행을 해요. 즉 염불 하시는 분은 얼른 그 염불에 빠져버려요. 참선하시는 분은 참선에 빠지고, 호흡하시는 분은 호흡에 빠져서 그래서 마음을 얼른 고요하게 하고 일체 잡생각 없이 막 빠지도록 하는 그런 훈련을 하세요.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야기 할 때는 아주 대단하게 했다가도 그 때만 지나가면 바로 놓는 그런 습을 들이세요.
그래서 일을 좀 열심히 하는 분도, 어떤 분은 열심히 일 해도 스트레스 같은 것 별로 안 받는 사람이 있어요. 건강을 그렇게 해치지 않는 분이 있어요. 어떤 분은 조그만 일만 있어도 스트레스 받고 괴로워하는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은 놓을 줄 모르기 때문이래요. 생각하고 일할 때는 아주 대단하게 화끈하게 열심히 하더라도 놓을 줄을 알아야 되요. 잘 안 놓아지거든 바로 마음공부를 바로 시작해요. 그러면 편안해지고 놓아져요. 그래서 일체의 잡념이 없을 정도로 푹 빠지게 되요. 그러면 설사 하루 종일 괴로웠던 그런 것도 집에 와서 한 순간만 지나면 아주 맑고 아주 가벼운 그런 자신을 느낄 수가 있을 거래요. 일은 그래 해야 되요, 일은. 그런 습을 들이면, 아마 일 하는데 수행이 아~ 참 도움이 되는구나. 참 좋구나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빠질 때는 막 되게 빠져버려요. 놓을 때는 확 놓아 버리고요. 그래서 미운 친구가 있는 분은 소인이라고 하지요. 미운 사람이 없어야 돼요.
순간은 밉고, 싫어하고, 막 죽일 것처럼 생각하더라도, 그 순간만 지나면 허허 웃으면서 악수 턱턱 할 정도가 되야 돼요. 어떤 분은 한 번 잘 못하면 두고두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얼굴만 생각해도 밥을 못 먹는 분이 있어요. 그
런 분은 상대가 어떤 분일지 몰라도 아주 못난 사람이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그런 단점은 고치는 것이 좋지요.
(BJ) 정근하다 보면 가끔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느낌이 들고, 몸을 바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 쪽에서 뭔가 녹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제대로 되는 건지, 문제가 있는 건지요?
(큰스님) 그건 조금 되는 듯한 그런 상황이라고 하면 돼요. 되는 듯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런 상황이다, 처사는 하면 될 사람이래요. 잘 할 사람이래요. 근데 처사도 좀 물렁한 사람이래요. 그래서 하더라도 좀 고집스럽게 끈질기게 좀 못하는 분이라 그렇지. 하면 될 분이라. 바탕은 되어 있는데 좀 자기를 다스림이 약해서 제대로 못해서 깊게는 들어가기가 조금 어려운 때가 많겠지만 그런 때는 바짝 애쓰고 열심히 하는 그런 시간들을 좀 자주 가져요. 그러면 될 수 있는 분이래요. 그것이 된다,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래요.
(BJ) 옛날부터 물렁물렁한 것을 고쳐보려고 하는데요.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되나요? 아니면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 맞춰 열심히 실천적인 방법이 중요한 것인지 발심이 더 중요한 것인지요?
(큰스님) 둘 다 필요해요.
(BJ) 둘 다 필요한 것은 알겠는데 어느 쪽을 먼저 해야 하는 건지요?
(큰스님) 어느 쪽을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간절하게 하고, 아주 열심히 좀 지극하게 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강해지는 것을 느낄 날이 있을 거래요. 강하고 좀 지독하고 좀 철저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부드러울 때는 한 없이 부드러워야 되요. 즉 자비가 뚝뚝 흐르듯이 자비하고 아주 인자하면서도, 즉 물렁한 것이 아주 안 좋은 것만은 아니래. 물렁한 것 같지만 아주 강한, 마음 속에는 막 대단한 독침 같은 것이 있어야 된다는 거래요. 근데 처사는 물렁함이 너무 대단해 독침은 없고. 어디 가면 사람 좋다는 얘기는 듣겠지. 그러나 늘 물렁해 빠졌어. 어쨌든 강하게 좀 지독하게 철저히 하는 그런 자신을 좀 만들어 가요.
(BJ) 잘 알겠습니다.
(큰스님) 자기를 만들어 가지 못하면 수행자가 아니래요.
(JYJ) 대인관계에서는 연락을 안 하게 되면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일 바쁘고 또 나름대로 수행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다 보면 사람들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큰스님) 자기라는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이냐 목표를 정하고, 삶 자체도 좀 이래 어떻게 살 것이다 좀 정리가 되고 나름대로 계획이 되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해 살아야 될 거래요. 사람이 다 갖출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꼭 해야 될 것, 내가 꼭 갖춰야 될 것, 그것은 반드시 갖춰야 돼. 즉 수행 쪽에 좀 관심을 많이 두고, 수행으로 일생을 살고 싶다 그러면 수행에 좀 관계가 안 되고, 방해가 되고, 마장이 될만한 것은 배제하는 게 좋아요. 친구들 만나서 그 뭐 시간 보내고, 재미있게 보내고, 그러고 일반 보통 사람들이 살듯이
그렇게 교제하고 그런 생활을 하려면 수행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그런가 하면 또 너무 수행 쪽에 치중하다 가보면 친구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뭐 가족관계도 뭐 좀 소원해지기가 쉽기도 하고. 그래서 내 방향 자체를 확실하게 정해서 좀 방해가 되고, 안 해야 될 일은 딱 안 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야 내 일생이 원만하고 좀 무난한데, 어쨌든 일생 동안 어떻게 사느냐 목표가 뭐냐, 나의 그 프로그램을 짜듯이 내 일생을 계획을 좀 짜요. 짜서 거기에 맞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요. 그래야 뭔가 좀 이룰 수 있고, 갖출 수가 있지. 뭐 이것저것 다 갖추려고 노력하다 보면 뭐 하나 제대로 갖추기가 어려운 그런 분도 있어요.
몇 년 전에 서울에 어떤 분이 돌아갔는데, 유명한 분이라 누구라 하면 알지 모르겠어요. 상당히 유명한 평론가에 들어가는데, 평론가이면서도 하여튼 그 분은 이런저런 명예직을 한 스물 몇 가지쯤 가진 분이었다고 해요. 명사인데. 그런데 정작 평론가라고 하면서 돌아가신 뒤에 뭐 책이라도 한 권 낼까 싶어서 내려고 보니까 책 한 권을 낼 수가 없더라는 거래요. 즉 여러 곳에 관심을 많이 갖다가 보니까 글 한 편 제대로 쓴 글이 없더라는 거래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그 친구들 글을 모아 가지고 유고집 비슷하게 냈다는 그런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한테 들었는데, 팔방미인이란 없어요. 다 갖출 수는 없어. 그 살림도 잘 하고, 직장에도 잘 다니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그런가 하면 나름대로 사회활동도 잘 하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갖출 수는 없거든요. 한 가지 특출하면 다른 여러 가지는 그냥 형식적으로 겨우 갖출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래요.
유명한 퀴리부인이 음식 솜씨가 그렇게 없었다는 거래요. 그렇게 유명한 분이지만 밥할 줄도 몰랐다는 거래요. 그 딸이 어떤 어머니하고 어머니 친구 집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음식을 내놓았는데 그렇게 맛이 있더라네요. 그 막 씹지 않아도 막 넘어가는 정도로. 근데 그 다음날 집에 와가지고 밥을 먹으려고 하니까 밥이 안 넘어가더라는 거래요. 그래서 어머니가 참 유명하지만 밥 할 줄도 모르는 어머니다 하면서 어머니를 달리 봤다는 그런 그 일화가 있는데, 사람은 한 가지가 좀 특출하면 참으로 뛰어나면 다 갖출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생각하지 말고, 한 두 가지에만 관심을 가져요.
(SRH) 사회적인 현상이어서 불자로서 바른 시각을 갖고자 하는 마음인데요, 요새 회사에서도 그렇고 방송 매체에서도 로또라는 복권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장난이나 농담으로 또는 요행심도 있고, 열풍이라고까지 표현이 되는데 바른 시각을 가진 불자라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요?
(큰스님) 그런 그 사행심에는 마음을 갖질 안아야 되요. 똑바르게 살아가야 되요. 그래서 일을 하더라고 내 한 것 만큼 받을 생각을 하고, 건물을 짓더라도 그야말로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서 내 능력대로 살 생각을 해야지, 어떤 그런 이익을 바란다던가 일확천금을 바란다든가, 그런 생각은 안 해야 돼. 그런데 열풍에 쌓이고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정상적인 마음이 아니라는 거래요, 정상적인. 그렇게 내가 피땀 흘려서 벌려는 그런 생각을 않고 그런데 관심을 가지고 일확천금을 바라는 그 자체가, 사실은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
더라도 그런 생각은 안 가져야 돼요. 수행하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안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비슷한 생각까지도 안 가져야 돼요. 그 사람은 또 갑자기 어떻게 돈이 들어왔다 해도 내 분수에 안 맞는 돈은 줄 곧 나가버려요. 내 것이 안돼.
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60년대라든가 50년대라든가 서울의 그 어떤 거지가 하루 종일 한 푼 두 푼 구걸해가지고, 복권을 샀는기라. 그 때 어떤 은행에서 복권을 했는데 아 복권이 당첨됐는기라.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복권을 잊어버릴까봐 밥 얻어 먹는 깡통에 붙였던 거래요. 붙이고는 가지고 다니면서 별 자랑을 다 했는기라. 술을 좀 얼큰히 먹고, 다시는 거지 신세 면한다고 안 한다고 그 깡통을 한강물에 버려 버렸는기라. 아, 실화라. 미국의 어떤 신문 가십란에 언젠가 많은 복금을 탄 분이 있어요. 그 분도 비교적 아주 가난한 분이라. 근데 몇 백억을 탔는 거래요. 미국 사상 두 번째라든가 그렇게 많은 복금을 탄 사람이라고 해요.
갑자기 그 때 큰 부자가 되니까 자기를 주체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막 여기 쓰고 저기 쓰고 어쨌든 씀씀이가 커지더니, 자기 부인이 결혼할 때는 자기가 훨씬 그 부인 상대가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오히려 부인이 유리한 조건이 많았는데, 돈이 많아지니까 그 부인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라. 그래 부인과 이혼하고는 또 새장가를 들었는데 거래요. 새 장가를 누구하고 들었느냐, 헐리웃의 어떤 여배우하고 결혼을 했다는 거래요. 여배우는 돈 보고 결혼을 했는거래요. 그래저래 여배우하고 몇 년 살다가는 그냥 죽어버렸는기래요. 돈을 나름대로 썼지만 다 써보지도 못하고, 결국은 돈 때문에 여배우하고 살다가 죽는 그런 신세가 됐는 거래요.
즉 돈이 들어와도 수용할만한 정도가 돼요. 내 것으로 만들 그럴 정도가 돼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그 돈도 결국은 나가버려. 그래서 어떤 부정으로 번 돈이라든가 어디서 도둑질한 돈은 결국은 순수한 내 것이 되기 어려워요. 결국은 그렇게 다 나가버려요. 흥청망청 쓰게 되고, 안 쓸 곳에 가서 버리듯이 쓰게 되고, 사기 당하고 그래서 결국은 다 나가게 되는데, 돈을 벌더라도 내가 분수에 맞게 내게 알맞은 바른 삶으로 돈을 벌어야 돼요. 그런데는 수체 눈을 돌리지 않아야 돼. 화투 치는 것은 재미 이상으로 치면 안돼.
어쨌든 사행심을 조장해 가지고 뭐 떼돈을 벌고 크게 됐다는 그런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근데 보통 사람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사실은 정신이 올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래. 속된 말로 골이 비어서 그래요. 그런 것을 예사롭게 생각하는데 그 자체가 문제인 거래요. 즉 바른 생각을 못하는 분이래요. 술 취한 듯이, 미친 듯이 비틀거리면서 그래 살아가는 거래요. 그러니 당할 것은 당하고 그 일생 살아도 별로 갖추지 못하고 그렇게 좀 허망하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 것을 엄격하게 따지면 도심에 들어가는 거래요. 남의 물건을 직접적으로 훔치는 것만이 도심이 아니라 그런 생
각도 도심이라는 거래요. 그래서 아주 바른 눈으로 보면 전부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래요. 좀 바른 생각으로 똑 바르게 사는 분이 좀 드물다는 거래요. 그러니 세상 자체가 아주 혼탁한 거래요.
요새는 뭐 이런 이야기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할까, 요새 뭐 그래 살아서야 어떻게 살 수 있느냐 그런 이야기할 분이 있을지 몰라도 설사 세상이 어떻게 되더라도 그래도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서 양심의 가책을 안 받을 정도는 살아야 되요.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자기가 부끄러워 자기가 더 괴로워요. 그래 살면 훗날 아주 부끄러운 그런 한 평생이 되고요. 나도 어제인가 그저께인가 뉴스 들으니까 불란서 같은 데서는 나이 많은 분들이 그냥 소일거리로 재미로 복권을 산다고 하대요. 재미로 사는 거라. 그런 정도면 괜찮아요. 그저 재미로. 좀 심심하니까. 그런 정도로 사면 괜찮은데, 그게 뭐 빛을 내가지고 은행에 뭐 돈을 내서 산 분도 있다고 하데요.
(KD) 말씀하신 것은 기본바탕은 마음에서 이루어진다는 맥락이신 것이지요?
(큰스님) 그렇지
(KD)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일을 행하였느냐 이런 것들에 따라서 거기에 대한 가치라든가 그런 것들이 결정되는 것인가요?
(큰스님) 그래요. 일체가 유심조다 그런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이 잘 하고 잘 못하는 것도 마음에 달려 있고, 그 평가도 마음에서 평가를 해야 돼요.어쨌든 그 수행이 뭐라는 것,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길이다. 잘 사는 길 자체가 잘 산다는 것이 뭐다 그런 것을 아셔서 거기에 좀 맞게 부단히 노력하고 애 쓰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쨌든 그 자기라는 한 인간을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듯이 만들어가요. 출발점은 즉 태어날 때는 수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좀 못난 보잘것없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인간은 계발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천재성을 계발할 수도 있고, 아주 대단한 능력자로 계발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만큼 노력하고 애 쓰느냐에 따라서 아주 대단한 분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자기한테 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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