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탄생, 새로운 출발-2009-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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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11-15 13:47 조회4,580회 댓글0건본문
새로운 탄생, 새로운 출발
무여 큰스님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오늘 시월 초하루는 유서 깊은 문수산 축서사에서 매년 연중행사로 열리는 100일 관음기도 입재일입니다. 동참하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자비 광명(慈悲光明)이 가득하여 나날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잘 되어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또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년도 알차고 보람 있는 한 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혹여 만족스럽게 사시지 못한분은 마지막 그날까지 절실하게 기도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말만 들어도 설레고 저절로 합장이 되고 희망과 용기가 솟구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스스로 ‘나는 잘못 사는 사람이다’, ‘나는 괴로움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는 생각을 하며, 부족하고 어리석어 어려움이 많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지극하고 간절하게 기도해 보십시오.
또한 장래 희망과 포부가 충천하는 사람일수록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기도해 보십시오.
신도 여러분께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백일기도를 하시고, 평상시에도 기도를 하시고 때때로 특별기도도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가 잘 됩니까? 기도하시는 보람과 긍지를 느끼십니까?
기도는 마음이 문제가 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도를 흉내만 내듯이 하는 분은 별 효험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열심히 지극하게 하시는 분은 대단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실 것입니다.
기도는 하면 하는 것만큼, 애쓰면 애쓰는 것만큼 공덕이 쌓일 것입니다. 당장 가피(加被)나 느낌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더 지극한 신심을 내시고 더 굳건한 원력을 세워서 열심히 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자기를 개발하고, 자기를 완성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해라’ ‘마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반드시 해야 하고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안하면 안 한 만큼 자기 손해입니다.
이번 기도에는 가급적이면 온 식구가 해보십시오. 흔히 기도나 염불은 여신도들이 주로 하는 것으로 잘못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에는성의 차별이 없고, 나이나 직업에도 분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학생이나 직장인은 아침에 108번, 저녁에 1,080번 정도를 해 보시고,주부나 여유가 많은 사람은 하루에 2만번 또는 3만번 이상 해보십시오. 아침 저녁 기도를 마치고는 반드시 축원을 하십시오. 축원은 평생의 서원을 담아 간절하게 하십시오. 속담에는 ‘빌면 무쇠도 녹는다. ’고 했고,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했습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움직이고 만물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어떠한 소원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이번 100일 기도를 열심히 하셔서 가피와 보람을 진정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이번 호 법문은 ‘새로운 탄생, 새로운 출발’이라는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머지않아 ‘부처님의 성도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부처님처럼 수행하여 도를 이루어 인생에 새로운 탄생이 되고 새로운 출발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는 납월 8일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지 6년만인 서른다섯 살 나던 해, 이 날 새벽 저 동쪽하늘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을 보시고 인간과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달으신 후 부처님이 되신 날입니다.『방광장엄경』에서는 도를 이루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 들어가지 않으리라.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라 선포하노라. ”부처님께서는 깨치는 순간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 들어가지 않으리라 ’하시면서, ‘이것은 최후의 고뇌'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고뇌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출가하셨다가 드디어 부처가 되셔서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공영방송 KBS의 장기 인기 프로그램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살면 병들어 일찍 죽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모색해서 안내하고 인도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송사에서는 국민을 건강하게 하고, 평균 수명을 몇 살 더 높여준 야심작이라고 자랑한답니다. 아쉬운 점을 지적한다면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영역을 깊게 다루지 못한 것이 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는 생활이 풍요롭고, 삶의 질이나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라 방송사뿐만 아니라 의학은 물론이고 과학이나 일반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장수에 대하여 대단한 열을 올리고, 유관 기업체는 회사의 장래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돈 버는 일일까요? 사랑을 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명예나 권세를 쥐는 것일까요? 돈이나 사랑이나 명예나 권세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일입니다. 자기의 생사문제보다 더 큰일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우리 불가에서는 이 일을 인생대사(人生大事), 또는 생사대사(生死大事)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2,500여 년 전에 벌써 이 생사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괴로운 일이라 갈파하시고 이 생사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위대한 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KBS의 표현을 빌리면 ‘생로병사의 비밀’을 찾으려고 그토록 어렵고 괴로운 고행을 하셨다가 드디어 찾으신 것이 바로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마디가 앞에서 말씀드린‘어둠의 세계를 밝혀 고통의 수레를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일체 고통, 생로병사의 고통 뿐만 아니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생로병사의 비밀’을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출가 전에 궁궐의 네 문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외출에서는 늙고 쇠약해서 괴로워하며 한숨 짓는 늙은이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들이에서는 병들어 신음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았고, 세 번째 외유에서는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궁중에서는 병자나 노인이나 죽은 사람의 모습을 못 보다가 큰 충격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마지막으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문(沙門)의 모습을 보고는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왕자로 태어나서 장차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었고, 이미 결혼하여 야수다라라는 부덕을 겸비한 부인과 라훌라라는 똑똑한 아이까지 둔 아버지였고, 부왕인 정반왕의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서 영원을 살아가려면 출가하여 수행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과감히 출가를 결행했습니다.
부처님은 눈 덮인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가 뼈를 깎는 무서운 정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명상에 잠기는 사색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명망이 높던 다섯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기도 했으나 만족스럽게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괴로운 고행을 결심했습니다. 그 시절 고행자들이 수행하는 고행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고행만을 골라 했습니다.
그것은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으며, 몇 톨의 낱알과 한 모금의물로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눈은 해골처럼 움푹 들어가고 뺨은 가죽만 남았습니다. 몸은 앙상하여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고행은 어느 정도 수행에 보탬이 되기도 했지만 근원적인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과감히 고행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홀로 숲속에 들어가 보리수 아래에 단정히 앉아 다시 비장한 결심을 하였습니다.“이 자리에서 육신이 다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實相)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부처님은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마음을 내서 정진한 지 이레째 되는 날입니다. 주위에 신비로움이 쌓이고 샛별이 하나 둘 빛나기 시작하는 시각, 유난히 큰 샛별을 보는 순간 명상에 빠졌던 부처님의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환희였습니다.
순간 세상 만물의 이치가 환히 밝게 드러났습니다. 우주와 자신이 둘이 아니고 우주가 곧 자신이며, 자신이 곧 우주의 주인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집착과 고뇌가 자취도 없이 풀려버리니 생사의 괴로움이 열반의 즐거움이 되고, 치성하던 번뇌가 최상의 보리가 되며, 무서운 지옥이 즐겁기만 한 극락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니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어느 곳에도 막힘이 없는 대자유인(大自由人), 대해탈인(大解脫人)이 되었습니다.
이 때 ‘부처님의 미간에서 둥근 빛이 솟아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두루 비추시니, 삼악도의 문이 크게 열리며 어둠의 공포 속에 고통을 느끼던 일체의 생명들이 기뻐 노래하며 방광을 향하여 나아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가 크나큰 환희와 축복으로 가득차서 대지가 은은히 진동하고, 하늘과 땅위에 광명이 빛나는 속에서 신들이 찬양하는 노랫소리와 하늘의 신들이 꽃을 뿌리는 장엄하고 엄숙함을 느꼈습니다. 하늘신이 미묘한 꽃을 뿌리고 향을 피워 부처님께 공양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깊은 지혜 소리도 아름다워라. 위없는 큰 보리를 얻으셨으니 모든 소리 가운데서 제일이어라. 이제 저희들이 경배합니다. 이 세상을 위하여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시어 등불 되시고 의지도 되사 능히 사람들의 독한 화살 빼시고 다시 이 세상의 대의왕(大醫王)이 되셨네. 옛적에 연등불 만나 뵈옵고 대비심을 일으키사 일체를 위하시니 세존은 세상의 꽃과 같아 삼계의 진흙에도 물들지 않네. 그 마음 견고하여 훼방 못하고 높고 넓어 움쩍 않는 수미산 같네. 금강과도 같으사 부수지 못하고 가을의 보름달 같이 깨끗하셔라.”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으니, 앞에서 ‘그토록 바라던 고뇌가 풀려서 생사가 열반(涅槃)이 되고, 번뇌가 보리(菩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생로병사의 근본 비밀’을 해결하는 것은 바로 깨달음, 성도(成道)라는 것입니다.
고뇌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번뇌 망상(煩惱妄想)의 고뇌요, 둘째는 생사문제(生死問題)의 고뇌입니다.
첫째, 번뇌 망상의 괴로움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일으키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살다가 보면 이런 망상 저런 번뇌를 많이 일으키며 살아갑니다.
흔히 범부들의 망상은 한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해서 8만 4천 번뇌라고 합니다. 이런 번뇌와 괴로움이 생사의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번뇌 망상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바로 여러분이 일으키는 삼독심(三毒心)이 원인이 됩니다. 삼독심, 세 가지 독한 마음이란 탐욕심과 진에심과 치심을 말합니다.
탐욕심(貪慾心)이란 탐애심(貪愛心), 탐착심(貪着心)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이 분수에 넘치게 만족할 줄 모르고 탐착하고 탐애하면서 욕심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초등학생에게‘너의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을 말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한 배우나 세계적인 스포츠인을 지명하듯이, 현재 자기의 분수에 맞지 않게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은 과분한 생각에 매달려 애착을 하고 욕망을 갖는것을 말합니다.
진에심(嗔恚心)이란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미워하고 분한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관계에서나 직업상 어렵고 힘든 때도 있거늘, 어떤 사람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불끈불끈 내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분한 마음을 내기도하니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가 문제이고 인격이 부족한 탓입니다. 명색이 마음을 닦겠다는 사람이 진에심을 일으키면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노여움은 항상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니 결국은 후회로 끝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치심(癡心), 어리석은 마음이란 일체 만물의 이치나 도리에 어두워 어리석고 부끄럽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사물의 진상이나 존재하는 근본 도리인 연기법(緣起法)을 알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횡설수설(橫說竪說)하며, 일마다 그르치며 괴롭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백유경(百喩經)』에는 이런 비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높고 아름다운 삼층집을 보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가진 내가 저렇게 훌륭한 집을 지을 생각을 왜 못했을까?’
부자는 목수를 불러 말했다.“저 훌륭한 집과 똑같이 집을 지을 수 있겠나?” “그 집은 제가 지은 집입니다.” “그러면 저 집보다 더 훌륭한 삼층집을 빨리 지어주게.” 목수는 서둘러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터를 닦아 기초를 세우고 일층을 세우고 있는 그를 보고 부자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뭘 하고 있는 거요? 나는 삼층만이 필요할 뿐이요. 일층, 이층은 필요 없으니 빨리 훌륭한 삼층만을 지어달란 말이요.”목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가끔 이런 탐욕심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번뇌의 피해가 오죽이나 독하면 독사(毒蛇)의 독이나 독룡(毒龍)의 독에 비유하여 삼독심이라 했겠습니까?
근대 고승인 만공(滿空)스님은 “지옥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탐진치(貪嗔痴)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번뇌와 망상이 깨달음을 더디게 하고 지혜를 어둡게 합니다.
존경하는 축서사 신도 여러분!
이렇게 수행에 독이 되고 해가 되는 번뇌나 망상도 화두에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거나 염불에 일념이 되어 빠지면 난롯가에 봄 눈 녹듯이 없어집니다. 공부가 안될 때는 그렇게 들끓어서 괴롭고 불안하기만 하던 번뇌 망상이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면 아무런 힘도 없고 괴로움도 주지 못하고 일어났다가는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화두가 더 깊어지고 순숙되어서 성성하고 적적하게 들리고,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변함이 없이 들리는 상태가 되면 미세 망념이 잠깐 일어났다 이내 사라질 뿐 마음은 늘 고요하고 고요할 뿐입니다. 일부러 생각을 일으키고 기억을 더듬어도 고요하게만 느껴집니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괴로운 생각도 힘든 생각도 사라지고, 가난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가난하다 어렵다 하는 생각마저도 없어집니다. 음식을 먹을 때나 사물을 보면서 좋다 나쁘다는 분별심도 없어지고, 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화두가 되기 전에는 조금만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하면 화를 내고 괴로워하던 좁은 마음도 담담해지고 무심해집니다.
이럴 때는 눈도 맑아지고, 나뭇잎이나 꽃을 보면 춤을 추는 듯 생기를 느끼고, 사물을 봐도 살아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 음식도 맛있게 기분좋게 먹게 되고, 늘 마시는 차맛도 깊게 느껴지고, 자주 듣는 산새소리가 정겨워 눈시울을 적시기도 합니다. 심지어 바닷가 태풍이 몰아쳐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파도 속에서도 평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생명의 신비로움을 알게 되어 수행의 가치를 더욱 느끼게 됩니다.
화두가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들리는 상태가 되면 마음은 고요하고 고요해서 몸과 마음이 지극히 안정됩니다. 또한 아주 맑고 가벼워져서 어떠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법열까지 느끼게 되며 보통의 사람들은 사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됩니다.
마음은 아무 괴로움 없이 아주 편안하고 편안하며, 몸은 맑고 가벼운데다 묘한 즐거움까지 느끼며 살아가니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복은 조금만 느껴도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합니다. 이런 행복을 못느끼면 반쪽 인생도 못된다고 합니다. 반쪽은커녕 극히 일부분밖에 못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경지가 되면 절에 오지 말라고 밀어내도 안 올 수 없고, 화두선이 어렵다 해도 안 할 수 없는 것이 참선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참선자라면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됩니다. 화두가 깊은 잠에서도 성성(惺惺)하게 들려서 미세(微細)한 망념까지 완전히 소멸돼야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옛 도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깨침의 순간은 갑자기 환해져 가슴 속이 후련하고 탁 트이면서 온 몸에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아주 묘한 즐거움이 넘쳤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선사는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하고, 어떤 종사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기도 하고, 어떤 선지식은 어찌나 좋은지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여 산천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깨달음은 스스로 깨치지 못하면 알 수 없습니다. 물을 마시는 것도 마시는 자만이 그 기분을 알 수 있듯이 깨달음도 오직 깨친 자만이 그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께서도 참선을 잘 하셔서 인생에 진정한 기분을 느끼시고, 일체의 고뇌를 벗어나서 불교신자가 된 보람을 참으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수행자 여러분!
둘째는 생사문제의 고통입니다. 생사문제의 고민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출가하였고, 천하 선지식(天下善知識)과 시방의 승려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청춘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면서 법을 위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현대인은 과거 사람처럼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보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삶을 행복의척도로 삼는 분이 많습니다.
특히 요즘은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생활의 질과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라 웰빙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웰빙이란 영어로 ‘웰(Well)’과 ‘빙(being)’의 합성어로 ‘건강한 삶’ 또는 ‘안락한 인생’을 말합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참살이’라 하여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몸과 마음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건강한 신심을 유지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삶의 유기적 조화를 통해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하는 문화를 말하며,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자신과 공동체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리하면, 육체적인 삶과 정서적인 안정을 따르는 삶의 방식이며 행복을 구현하기 위한 모든 소비와 사회활동과 관련된 생활양식으로서 그 개념이 매우 포괄적이고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현대인에게 맞게 발전된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선진된 생활양식이지만 이런 스타일로는 궁극적인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오는 완전한‘생로병사의 비밀’을 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의 열쇠는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데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야만 생사를 자유자재(自由自在)하고,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서 해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웰빙 스타일’에서도 수행을 잘 해서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일념이 되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상당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화두가 더 깊어져 깊은 잠에서도 한결같이 들리는 상태가 되면, ‘아! 생사가 둘이 아니구나. 생(生)이 곧 사(死)이고, 사가 곧 생이라 생사가 일여하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본성(本性)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사가 둘이 아니고 본성은 영원하다는 확신까지 서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까지도 죽음에 당당해지고 죽음의 근심과 걱정에서 사라집니다.
선에서는 이런 정도는 돼야 ‘웰 다잉(Well-dying)’, 행복한 죽음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깨달음을 열어 생사까지도 자재하고 해탈해야 진정한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부터 선가(禪家)에서는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데 비유했습니다. 옷은 오랫동안 입다가 낡거나 검어지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이 몸뚱이도 늙거나 병들면 새 몸으로 마음대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생사문제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명제이고, 극복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제인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평생 수행해온 선승들은 입적(入寂)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이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죽음은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법신(法身)의 탄생이며, 열반의 기쁨”이라는 것을 겪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옛 도인들처럼 ‘열반은 최고의 행복이며,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참선자야말로 생사문제의 고통을 해결하고 ‘생로병사의 비밀’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 미래를 기원하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꿈은 여기 현실의 일에서 가져야 할 것이니 이루고자 하는 뜻에 확고부동하여 흔들림 없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야 한다.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땀 흘려 노력하라. 그 누구인들 내일 죽음이 있음을 알겠는가? 삶에서 염라대왕과 계약이란 없는 것 오직 밤낮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라.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영광이 있고 현자의 칭찬이 따르리라.
”존경하는 축서사 신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어둡고 괴로운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새로운 탄생, 새로운 출발’을 합시다. 여러분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확고부동한 자세와 생각으로 여러분의 능력을 발휘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본래는 부처님과 꼭 같은 능력과 자질을 갖춘 부처입니다. 옛 어른들이 법을 위하여 자신을 버렸듯이, 기도를 위하여, 선정을 위하여,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던지고 희생해 보십시오. 오로지 오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게으르지 말고, 그 날 그 날 밤낮으로 정진합시다.‘이런 사람에게 영광이 있고, 현자의 칭찬이 따르듯이’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져 궁극에는 깨달음을 얻어 생사까지도 초탈할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대해탈인(大解脫人)이 될 것입니다.
한 점이 영명(靈明)하여 시방세계 두루 하니
법계만상(法界萬像)이 비로자나 법신 아닌 것 없네
문수산 정상에서 하얀 파도 일어나니
낙동강 수심에서 흙먼지가 일어난다.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무여 큰스님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오늘 시월 초하루는 유서 깊은 문수산 축서사에서 매년 연중행사로 열리는 100일 관음기도 입재일입니다. 동참하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자비 광명(慈悲光明)이 가득하여 나날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잘 되어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또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년도 알차고 보람 있는 한 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혹여 만족스럽게 사시지 못한분은 마지막 그날까지 절실하게 기도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말만 들어도 설레고 저절로 합장이 되고 희망과 용기가 솟구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스스로 ‘나는 잘못 사는 사람이다’, ‘나는 괴로움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는 생각을 하며, 부족하고 어리석어 어려움이 많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지극하고 간절하게 기도해 보십시오.
또한 장래 희망과 포부가 충천하는 사람일수록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기도해 보십시오.
신도 여러분께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백일기도를 하시고, 평상시에도 기도를 하시고 때때로 특별기도도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가 잘 됩니까? 기도하시는 보람과 긍지를 느끼십니까?
기도는 마음이 문제가 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도를 흉내만 내듯이 하는 분은 별 효험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열심히 지극하게 하시는 분은 대단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실 것입니다.
기도는 하면 하는 것만큼, 애쓰면 애쓰는 것만큼 공덕이 쌓일 것입니다. 당장 가피(加被)나 느낌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더 지극한 신심을 내시고 더 굳건한 원력을 세워서 열심히 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자기를 개발하고, 자기를 완성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해라’ ‘마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반드시 해야 하고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안하면 안 한 만큼 자기 손해입니다.
이번 기도에는 가급적이면 온 식구가 해보십시오. 흔히 기도나 염불은 여신도들이 주로 하는 것으로 잘못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에는성의 차별이 없고, 나이나 직업에도 분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학생이나 직장인은 아침에 108번, 저녁에 1,080번 정도를 해 보시고,주부나 여유가 많은 사람은 하루에 2만번 또는 3만번 이상 해보십시오. 아침 저녁 기도를 마치고는 반드시 축원을 하십시오. 축원은 평생의 서원을 담아 간절하게 하십시오. 속담에는 ‘빌면 무쇠도 녹는다. ’고 했고,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했습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움직이고 만물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어떠한 소원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이번 100일 기도를 열심히 하셔서 가피와 보람을 진정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이번 호 법문은 ‘새로운 탄생, 새로운 출발’이라는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머지않아 ‘부처님의 성도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부처님처럼 수행하여 도를 이루어 인생에 새로운 탄생이 되고 새로운 출발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는 납월 8일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지 6년만인 서른다섯 살 나던 해, 이 날 새벽 저 동쪽하늘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을 보시고 인간과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달으신 후 부처님이 되신 날입니다.『방광장엄경』에서는 도를 이루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 들어가지 않으리라.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라 선포하노라. ”부처님께서는 깨치는 순간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 들어가지 않으리라 ’하시면서, ‘이것은 최후의 고뇌'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고뇌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출가하셨다가 드디어 부처가 되셔서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공영방송 KBS의 장기 인기 프로그램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살면 병들어 일찍 죽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모색해서 안내하고 인도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송사에서는 국민을 건강하게 하고, 평균 수명을 몇 살 더 높여준 야심작이라고 자랑한답니다. 아쉬운 점을 지적한다면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영역을 깊게 다루지 못한 것이 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는 생활이 풍요롭고, 삶의 질이나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라 방송사뿐만 아니라 의학은 물론이고 과학이나 일반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장수에 대하여 대단한 열을 올리고, 유관 기업체는 회사의 장래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돈 버는 일일까요? 사랑을 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명예나 권세를 쥐는 것일까요? 돈이나 사랑이나 명예나 권세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일입니다. 자기의 생사문제보다 더 큰일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우리 불가에서는 이 일을 인생대사(人生大事), 또는 생사대사(生死大事)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2,500여 년 전에 벌써 이 생사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괴로운 일이라 갈파하시고 이 생사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위대한 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KBS의 표현을 빌리면 ‘생로병사의 비밀’을 찾으려고 그토록 어렵고 괴로운 고행을 하셨다가 드디어 찾으신 것이 바로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마디가 앞에서 말씀드린‘어둠의 세계를 밝혀 고통의 수레를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일체 고통, 생로병사의 고통 뿐만 아니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생로병사의 비밀’을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출가 전에 궁궐의 네 문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외출에서는 늙고 쇠약해서 괴로워하며 한숨 짓는 늙은이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들이에서는 병들어 신음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았고, 세 번째 외유에서는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궁중에서는 병자나 노인이나 죽은 사람의 모습을 못 보다가 큰 충격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마지막으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문(沙門)의 모습을 보고는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왕자로 태어나서 장차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었고, 이미 결혼하여 야수다라라는 부덕을 겸비한 부인과 라훌라라는 똑똑한 아이까지 둔 아버지였고, 부왕인 정반왕의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서 영원을 살아가려면 출가하여 수행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과감히 출가를 결행했습니다.
부처님은 눈 덮인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가 뼈를 깎는 무서운 정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명상에 잠기는 사색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명망이 높던 다섯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기도 했으나 만족스럽게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괴로운 고행을 결심했습니다. 그 시절 고행자들이 수행하는 고행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고행만을 골라 했습니다.
그것은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으며, 몇 톨의 낱알과 한 모금의물로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눈은 해골처럼 움푹 들어가고 뺨은 가죽만 남았습니다. 몸은 앙상하여 피골이 상접할 정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고행은 어느 정도 수행에 보탬이 되기도 했지만 근원적인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과감히 고행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홀로 숲속에 들어가 보리수 아래에 단정히 앉아 다시 비장한 결심을 하였습니다.“이 자리에서 육신이 다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實相)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부처님은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마음을 내서 정진한 지 이레째 되는 날입니다. 주위에 신비로움이 쌓이고 샛별이 하나 둘 빛나기 시작하는 시각, 유난히 큰 샛별을 보는 순간 명상에 빠졌던 부처님의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환희였습니다.
순간 세상 만물의 이치가 환히 밝게 드러났습니다. 우주와 자신이 둘이 아니고 우주가 곧 자신이며, 자신이 곧 우주의 주인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집착과 고뇌가 자취도 없이 풀려버리니 생사의 괴로움이 열반의 즐거움이 되고, 치성하던 번뇌가 최상의 보리가 되며, 무서운 지옥이 즐겁기만 한 극락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니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어느 곳에도 막힘이 없는 대자유인(大自由人), 대해탈인(大解脫人)이 되었습니다.
이 때 ‘부처님의 미간에서 둥근 빛이 솟아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두루 비추시니, 삼악도의 문이 크게 열리며 어둠의 공포 속에 고통을 느끼던 일체의 생명들이 기뻐 노래하며 방광을 향하여 나아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가 크나큰 환희와 축복으로 가득차서 대지가 은은히 진동하고, 하늘과 땅위에 광명이 빛나는 속에서 신들이 찬양하는 노랫소리와 하늘의 신들이 꽃을 뿌리는 장엄하고 엄숙함을 느꼈습니다. 하늘신이 미묘한 꽃을 뿌리고 향을 피워 부처님께 공양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깊은 지혜 소리도 아름다워라. 위없는 큰 보리를 얻으셨으니 모든 소리 가운데서 제일이어라. 이제 저희들이 경배합니다. 이 세상을 위하여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시어 등불 되시고 의지도 되사 능히 사람들의 독한 화살 빼시고 다시 이 세상의 대의왕(大醫王)이 되셨네. 옛적에 연등불 만나 뵈옵고 대비심을 일으키사 일체를 위하시니 세존은 세상의 꽃과 같아 삼계의 진흙에도 물들지 않네. 그 마음 견고하여 훼방 못하고 높고 넓어 움쩍 않는 수미산 같네. 금강과도 같으사 부수지 못하고 가을의 보름달 같이 깨끗하셔라.”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으니, 앞에서 ‘그토록 바라던 고뇌가 풀려서 생사가 열반(涅槃)이 되고, 번뇌가 보리(菩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생로병사의 근본 비밀’을 해결하는 것은 바로 깨달음, 성도(成道)라는 것입니다.
고뇌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번뇌 망상(煩惱妄想)의 고뇌요, 둘째는 생사문제(生死問題)의 고뇌입니다.
첫째, 번뇌 망상의 괴로움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일으키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살다가 보면 이런 망상 저런 번뇌를 많이 일으키며 살아갑니다.
흔히 범부들의 망상은 한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해서 8만 4천 번뇌라고 합니다. 이런 번뇌와 괴로움이 생사의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번뇌 망상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바로 여러분이 일으키는 삼독심(三毒心)이 원인이 됩니다. 삼독심, 세 가지 독한 마음이란 탐욕심과 진에심과 치심을 말합니다.
탐욕심(貪慾心)이란 탐애심(貪愛心), 탐착심(貪着心)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이 분수에 넘치게 만족할 줄 모르고 탐착하고 탐애하면서 욕심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초등학생에게‘너의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을 말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한 배우나 세계적인 스포츠인을 지명하듯이, 현재 자기의 분수에 맞지 않게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은 과분한 생각에 매달려 애착을 하고 욕망을 갖는것을 말합니다.
진에심(嗔恚心)이란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미워하고 분한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관계에서나 직업상 어렵고 힘든 때도 있거늘, 어떤 사람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불끈불끈 내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분한 마음을 내기도하니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가 문제이고 인격이 부족한 탓입니다. 명색이 마음을 닦겠다는 사람이 진에심을 일으키면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노여움은 항상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니 결국은 후회로 끝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치심(癡心), 어리석은 마음이란 일체 만물의 이치나 도리에 어두워 어리석고 부끄럽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사물의 진상이나 존재하는 근본 도리인 연기법(緣起法)을 알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횡설수설(橫說竪說)하며, 일마다 그르치며 괴롭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백유경(百喩經)』에는 이런 비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높고 아름다운 삼층집을 보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가진 내가 저렇게 훌륭한 집을 지을 생각을 왜 못했을까?’
부자는 목수를 불러 말했다.“저 훌륭한 집과 똑같이 집을 지을 수 있겠나?” “그 집은 제가 지은 집입니다.” “그러면 저 집보다 더 훌륭한 삼층집을 빨리 지어주게.” 목수는 서둘러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터를 닦아 기초를 세우고 일층을 세우고 있는 그를 보고 부자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뭘 하고 있는 거요? 나는 삼층만이 필요할 뿐이요. 일층, 이층은 필요 없으니 빨리 훌륭한 삼층만을 지어달란 말이요.”목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가끔 이런 탐욕심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번뇌의 피해가 오죽이나 독하면 독사(毒蛇)의 독이나 독룡(毒龍)의 독에 비유하여 삼독심이라 했겠습니까?
근대 고승인 만공(滿空)스님은 “지옥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탐진치(貪嗔痴)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번뇌와 망상이 깨달음을 더디게 하고 지혜를 어둡게 합니다.
존경하는 축서사 신도 여러분!
이렇게 수행에 독이 되고 해가 되는 번뇌나 망상도 화두에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거나 염불에 일념이 되어 빠지면 난롯가에 봄 눈 녹듯이 없어집니다. 공부가 안될 때는 그렇게 들끓어서 괴롭고 불안하기만 하던 번뇌 망상이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면 아무런 힘도 없고 괴로움도 주지 못하고 일어났다가는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화두가 더 깊어지고 순숙되어서 성성하고 적적하게 들리고,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변함이 없이 들리는 상태가 되면 미세 망념이 잠깐 일어났다 이내 사라질 뿐 마음은 늘 고요하고 고요할 뿐입니다. 일부러 생각을 일으키고 기억을 더듬어도 고요하게만 느껴집니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괴로운 생각도 힘든 생각도 사라지고, 가난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가난하다 어렵다 하는 생각마저도 없어집니다. 음식을 먹을 때나 사물을 보면서 좋다 나쁘다는 분별심도 없어지고, 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화두가 되기 전에는 조금만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하면 화를 내고 괴로워하던 좁은 마음도 담담해지고 무심해집니다.
이럴 때는 눈도 맑아지고, 나뭇잎이나 꽃을 보면 춤을 추는 듯 생기를 느끼고, 사물을 봐도 살아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 음식도 맛있게 기분좋게 먹게 되고, 늘 마시는 차맛도 깊게 느껴지고, 자주 듣는 산새소리가 정겨워 눈시울을 적시기도 합니다. 심지어 바닷가 태풍이 몰아쳐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파도 속에서도 평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생명의 신비로움을 알게 되어 수행의 가치를 더욱 느끼게 됩니다.
화두가 꿈속에서도 한결같이 들리는 상태가 되면 마음은 고요하고 고요해서 몸과 마음이 지극히 안정됩니다. 또한 아주 맑고 가벼워져서 어떠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법열까지 느끼게 되며 보통의 사람들은 사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됩니다.
마음은 아무 괴로움 없이 아주 편안하고 편안하며, 몸은 맑고 가벼운데다 묘한 즐거움까지 느끼며 살아가니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복은 조금만 느껴도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합니다. 이런 행복을 못느끼면 반쪽 인생도 못된다고 합니다. 반쪽은커녕 극히 일부분밖에 못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경지가 되면 절에 오지 말라고 밀어내도 안 올 수 없고, 화두선이 어렵다 해도 안 할 수 없는 것이 참선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참선자라면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됩니다. 화두가 깊은 잠에서도 성성(惺惺)하게 들려서 미세(微細)한 망념까지 완전히 소멸돼야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옛 도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깨침의 순간은 갑자기 환해져 가슴 속이 후련하고 탁 트이면서 온 몸에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아주 묘한 즐거움이 넘쳤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선사는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하고, 어떤 종사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기도 하고, 어떤 선지식은 어찌나 좋은지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여 산천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깨달음은 스스로 깨치지 못하면 알 수 없습니다. 물을 마시는 것도 마시는 자만이 그 기분을 알 수 있듯이 깨달음도 오직 깨친 자만이 그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께서도 참선을 잘 하셔서 인생에 진정한 기분을 느끼시고, 일체의 고뇌를 벗어나서 불교신자가 된 보람을 참으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수행자 여러분!
둘째는 생사문제의 고통입니다. 생사문제의 고민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출가하였고, 천하 선지식(天下善知識)과 시방의 승려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청춘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면서 법을 위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현대인은 과거 사람처럼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보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삶을 행복의척도로 삼는 분이 많습니다.
특히 요즘은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생활의 질과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라 웰빙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웰빙이란 영어로 ‘웰(Well)’과 ‘빙(being)’의 합성어로 ‘건강한 삶’ 또는 ‘안락한 인생’을 말합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참살이’라 하여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몸과 마음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건강한 신심을 유지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삶의 유기적 조화를 통해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하는 문화를 말하며,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자신과 공동체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리하면, 육체적인 삶과 정서적인 안정을 따르는 삶의 방식이며 행복을 구현하기 위한 모든 소비와 사회활동과 관련된 생활양식으로서 그 개념이 매우 포괄적이고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현대인에게 맞게 발전된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선진된 생활양식이지만 이런 스타일로는 궁극적인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오는 완전한‘생로병사의 비밀’을 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의 열쇠는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데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야만 생사를 자유자재(自由自在)하고,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서 해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웰빙 스타일’에서도 수행을 잘 해서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일념이 되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상당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화두가 더 깊어져 깊은 잠에서도 한결같이 들리는 상태가 되면, ‘아! 생사가 둘이 아니구나. 생(生)이 곧 사(死)이고, 사가 곧 생이라 생사가 일여하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본성(本性)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사가 둘이 아니고 본성은 영원하다는 확신까지 서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까지도 죽음에 당당해지고 죽음의 근심과 걱정에서 사라집니다.
선에서는 이런 정도는 돼야 ‘웰 다잉(Well-dying)’, 행복한 죽음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깨달음을 열어 생사까지도 자재하고 해탈해야 진정한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부터 선가(禪家)에서는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데 비유했습니다. 옷은 오랫동안 입다가 낡거나 검어지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이 몸뚱이도 늙거나 병들면 새 몸으로 마음대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생사문제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명제이고, 극복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제인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평생 수행해온 선승들은 입적(入寂)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이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죽음은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법신(法身)의 탄생이며, 열반의 기쁨”이라는 것을 겪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옛 도인들처럼 ‘열반은 최고의 행복이며,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참선자야말로 생사문제의 고통을 해결하고 ‘생로병사의 비밀’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 미래를 기원하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꿈은 여기 현실의 일에서 가져야 할 것이니 이루고자 하는 뜻에 확고부동하여 흔들림 없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야 한다.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땀 흘려 노력하라. 그 누구인들 내일 죽음이 있음을 알겠는가? 삶에서 염라대왕과 계약이란 없는 것 오직 밤낮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라.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영광이 있고 현자의 칭찬이 따르리라.
”존경하는 축서사 신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어둡고 괴로운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새로운 탄생, 새로운 출발’을 합시다. 여러분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확고부동한 자세와 생각으로 여러분의 능력을 발휘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본래는 부처님과 꼭 같은 능력과 자질을 갖춘 부처입니다. 옛 어른들이 법을 위하여 자신을 버렸듯이, 기도를 위하여, 선정을 위하여,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던지고 희생해 보십시오. 오로지 오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게으르지 말고, 그 날 그 날 밤낮으로 정진합시다.‘이런 사람에게 영광이 있고, 현자의 칭찬이 따르듯이’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져 궁극에는 깨달음을 얻어 생사까지도 초탈할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대해탈인(大解脫人)이 될 것입니다.
한 점이 영명(靈明)하여 시방세계 두루 하니
법계만상(法界萬像)이 비로자나 법신 아닌 것 없네
문수산 정상에서 하얀 파도 일어나니
낙동강 수심에서 흙먼지가 일어난다.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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