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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과 응무소주 이생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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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암 작성일13-01-25 21:45 조회3,744회 댓글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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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과 응무소주 이생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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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맞은 편에 있는 정선생집- 정선생은 서각으로 금강경 나무병풍을 만든바 있다.>

 

온갖 자재들과 덮개들이 마당을 뒤덥고 있는 혼잡한 마당에서 여기 저기 집을 둘러보고 있는데 건너편 정선생집에서 동원엄마와 딸이 걸어서 나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무들이 모두 옷을 벗고 있어 그 집 마당에서 하는 소리들이 다 들릴 정도로 소리가 가깝다. 마침 마을에서 내려오는 트럭 한 대가 멈추더니 서로 인사를 나눈다.

 

"운동하러 가요"

 

나는 그런가 했다. 그런데 아래 마을로 가던 동원엄마와 둘째 딸이 우리집으로 방향을 튼다. 자세히 보니 동원엄마의 손에 빨간 냄비가 들려있는 것이 보인다. 그 냄비는 우리집에 맛있는 음식을 갖다 줄 때 자주 등장하는 냄비다.

 

마중나가보니 냄비에는 국이 들려있고 둘째 딸이 끌고 온 핸드카에는 암탉이 나은 달걀 한봉지와  배추 두포기, 그리고 된장 한 병, 고추 장아찌들이 들어있었다.

 

“오늘 닭계장을 끓였어요.”

 

20121241.jpg

 <된장, 닭계장, 이 한겨울에 정말 귀한 배추, 그리고 암탉들이 서둘러 낳은 수정란 달걀들이다.>

 

번번히 너무 감사하다. 며칠전에는 내가 그 집 가족 서울 나들이를 할 때 소밥과 동물밥을 주었다고 성대하게 저녁 초대를 하고 닭을 한마리 잡아 주더니 이번에는 한 짐 싸서 이렇게 갖다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신세진 것, 신세 질 것을 생각하면 그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받으면 조금은 부담스럽다.  

 

"빚은 얻지 말고 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남에게 도움을 많이 주고, 받는 것은 적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내가 남에게 조금 주고 배로 받으려 하면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 인간사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基心)'이라는 말이 있다. "마땅이 머문 바 없는 곳에서 마음을 일으켜라" 또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라고 많은 해설서들이 번역해 주었다. 그러나 이 말은 지독히도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실천하기가 어려워서다.

 

이 말을 마음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속된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하는 방법은 먼저 베푸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베풀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이것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매우 어려워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또 하고 또 하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몸에 배는 것,  그것이 다름아닌 수행이고 정진이다. 베풀고 베풀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금강경이 가르치는 수행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된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도 슬퍼는 하되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기뻐해도 기쁜 마음에서 빠져  들지 않는 것을 무위(無爲)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유명한 일화들이 수없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다. 

 

한 스승과 제자가 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내를 만났는데 물이 불어서 물살이 몹시 거세었다. 내 앞에는 물을 건너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가씨가 있었다. 스승은 발을 걷어붙이고 아가씨를 등에 업어 내를 건네 주었다.

 

한참이 지났다.

 

“스님, 어쩌자고 수행자가 여인을 등에 업습니까?” 하고 제자가 볼멘 소리를 했다.

 

스승이 말했다.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

 

이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뜻이다. 하고도 한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귀농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50년이 훌쩍 넘은 나이에 시골생활을 하려니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도움말을 해준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귀농인과 정착인과 많은 다툼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한 마을에 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착인이 농로 길을 막고 귀농인을 괴롭히기도 하고, 또 귀농인도 내려와 정착인을 무시하고 또 같은 방법으로 농로길을 막는 사건이 속출하는 것을 보면 시골생활이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에 중요한 사상은 그저 베푸는 사랑보다는 어찌보면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도 내가 했다는 마음에 머물지 않는 마음, 얼마나 아름다운 사상인가?

 

그렇지만 내가 나쁜 일을 하고도 나쁜일에 머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잘못 활용해도 정말 잘못한 경우다. 바로 헌재소장 청문회에 등장한 이동흡 같은 이다. 헌재 소장까지 넘볼 수 있도록 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던 사람인데 규정된 규칙을 어기는 것을 관행이라고 지키지 않고 남에게는 엄한 잣대를 들이댄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부류다. 이 사회의 리더들은 너무도 규정을 어기는 사람이 많다.

 

정선생네 된장은 정말 맛있다. 나도  10년, 20년 30년 묵은 된장...심지어는 50년 묵은 된장도 얻어서 먹어봤는데 그러한 된장들은 하나같이 귀하기는 했지만 맛이 없었다. 된장은 어느정도 간이 맞아야 하고 단맛도 나야 한다. 그런데 오래된 된장은 간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지나치고 검었다. 그래서 눈맛과 입맛 모두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일단 맛이 없는 귀한 된장과는 사귀지 않는다. 오래된 것을 자랑하는 사찰음식의 스님들도 계시지만 나는 된장 맛없는 것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된장이 오래 될 필요가 왜 있는지도 모른다. 된장은 빨리 빨리 담궈서 그 때 그 때 맛있게 먹는 것이 장땡이다. 와인처럼 말이다.

 

오늘은 동원이 엄마가 갖다 준 된장으로 아침을 먹는다. 참 행복한 시골생활이다.

 

서암합장

 

 

 

댓글목록

반야월님의 댓글

반야월 작성일

행복한 시골생활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 행복하시겠네요.
군침도는 먹을거리도 올려 놓으셨구요, 전 오늘 아침 먹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맛있겠다는
느낌이 드네요.^^

보현수님의 댓글

보현수 작성일

서암님께서 푸근하고 정겨운 이웃을 잘 만나셨군요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중요한 것이란 걸 실감 하셨겠습니다.

주위에 보면 귀농해서 정착하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행복하게 잘 적응 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 보인답니다

예쁜집 마무리 되면 앞이 탁트인 거실에 앉아서
향기 좋은 차 한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질라는동요.

맑은하늘님의 댓글

맑은하늘 작성일

하루해가 짧아 오후가 되면 해질녘으로 여내 닿아 버리지만 따뜻한 햇살에 등내밀고 베란다 한켠에 앉아 있다보면  때맞춘 한끼보다 맑은 커피 한잔이 더욱 기분을 녹녹히 하지요.
반야월님!
마음의 한끼 대접 하고 싶네요
둥근 상에
방금 눈 밭 밀치고 뚝 잘라 온 배추 노란속,
된장에 참기름 갖은 양념 믹서한 고소함만 으로
밥반찬을 다해도 그 맛이 일품일 때가 있지요
반야월님!
한 술 떠시고
많은 미소 듬뿍......^^()

반야월님의 댓글

반야월 작성일

고마울 따름입니다. 맑은 하늘님!
머릿속으로 맛나게 먹을게요.
평소 집에 있을땐 정말 맑은 하늘님 말씀처럼
갖은 양념을 한 맛난 된장에 알찬 노란 배춧속을
찍어 먹었답니다. 진짜 신선하고 맛나죠?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서암님
너무 반갑습니다.
한동안 뜸하셨는데 변화가 있었군요.
앞으로도 무위자연의 삶 많이 보여주세요.

그리고
보현수님도 반가웁군요.
말없이 후원만 하지마시고
이제는 전면으로 나오셔서
많은 활동 하시기를 기대한답니다.^^

반야월님의 댓글

반야월 작성일

보현수님!
홈페이지 방문하셔서 이렇게 글을
올려 주시니 반가워요.
서암님도 등장해 주시고 그동안 못 뵈었던
분들을 뵈니 정말 힘이 더 나는 것 같아요.
관심을 가져 주시나 보다 하구요.

보현수님의 댓글

보현수 작성일

영영님! 반야월님!
이렇게 반갑게 반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표현을 못했을 뿐^^
늘 큰 관심 갖고 있었답니다.
두분 좋은글 항상 고마웠구요
추운 휴일 따스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마하심님의 댓글

마하심 작성일

역시 나비넥타이 보다는 물장화가 더 잘 어울리는 서암님이십니다.!!^^
넓은 창과 건넛집을 통해 사계절 마음껏 누리시고,저와도 같은 이웃이 되신 것 반겨드립니다.
서암님 마당에 멍석을 깔아주시니 모두들 이렇게 오손도손 얘기꽃을 피울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다음번엔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마음으로 군고구마도 가지고 오실꺼죠?ㅋㅋ
먼길 잘 다녀오시고,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오._()_

맑은하늘님의 댓글

맑은하늘 작성일

가끔
꿈을 꾸는 것이 있습니다
축서사가 감감히 보이는 한적한 곳에 자리하나 잡으면
꼬옥
벽난로는 넣어야지!
아침이면
고요함이 끝이 없어 저멀리의 소리도 귀기우려 보기도 하고
맑은 날이 언제나 이어지니 내 마음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기도 하고프겠지요
저는요!
나이들면 꼭 그렇게 할거예요
꼭이요!!
모두들 너무 부럽습니다. 그 행복의 세계는 어떤가요??
부러워라!!!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순박한 봉화사람으로 바뀌어가시는 서암거사님을 뵐때마다
천군만마를 얻은듯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고
부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하루하루가 즐거우시고 건강하시고 보람으로 가득하시길
기원 합니다
법융  합장

서암님의 댓글

서암 작성일

늘 봉화로 내려오게 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어찌 이리로 오게 되었는지 곰곰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요
모두다 축서사와의 인연입니다.
도반님들과 함께 살다 함께 이곳에서 묻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정말 매력적인 곳이지요.
저도 한때는 봉화가 꿈이었답니다.^^

반야월님의 댓글

반야월 작성일

공기좋은 시골에서 생을 살다가 조용히 자연에
묻힌다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심신이 편안한게 최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