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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홍서원의 실천적 이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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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0-06-06 12:34 조회3,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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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홍서원의 실천적 이행에 대하여

도암 스님_고불총림 백양사 강주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는 누구나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 욕구의 대부분은 생명체의 수명과 안전을 위한 본능적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수명과 안전도 포함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불안정하다. 불안정할수록 안정에 대한 욕구도 커진다. ‘자기 자신’이나 ‘우리’만을 위한 집착을 동반한 행동을 이기적이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강한 이기적 욕망이 발생하면, 강한 자력에 금속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욕망의 대상에 강하게 달려 들어간다. 자유와 행복을 찾지만 점점 더 부자유스럽고 힘들어진다. 우리는 어떻게 자유와 행복을 찾아야 할까?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이 우주에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무한하게 많다. 숫자적으로도 그렇겠지만 종류별로도 그러하다. 그것들 중에는 우리의 사랑과 존중을 받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 형편이 여유로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괴로움이라는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지만 현실은 그러하다. 집착과 분별과 망상이라는 번뇌를 보물처럼 소중히 여긴다. 망상 분별 집착이 자신을 도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믿는다.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게 해 줄 것으로 믿는다. 자신의 의지처인 이것들이 괴로움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는 공장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악몽을 꾸고 있는 이가 있다면 깨워 주는 것이 옳다. 길을 잘못 알고 헤매이며 고통을 받는 이가 있다면 바르게 알려 주어야 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가 있다면 도와주어야 한다. 이기적 행위는 타인 뿐 만 아니라 자신도 괴롭히는 것이다. 이타적 행위는 타인 뿐 만 아니라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계산법은 이와는 정 반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기적인 집착과 분별을 놓지 못한다. 놓으면 죽는 줄 안다. 누구인가 놓아 보고 이익을 얻은 경험을 해본 지혜로운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그러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많은 이들을 돕고 싶다’는 원을 일으키는 것이다. 세세생생에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진실한 지혜와 실천력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그것이 『중생무변서원도』라 얘기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번뇌란 무엇인가. 너와 나의 행복을 방해하고 가능성을 좌절시키는 심리적, 정신적 에너지이다. 이것은 이기적 에너지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존을 파괴한다. 이기적이고 대립적인 에너지로 무장하고 누군가를 대하면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상황이 발생된다. 이기적 대립 이면에는 탐욕·분노·착각·거만이라는 집착 분별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자기 에너지를 이어간다.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다른 이를 돕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먼저 이러한 자신의 번뇌를 끊어야 한다. 집착을 내려 놓고 분별도 내려 놓아야 지혜가 나타난다. 강한 집착과 분별은 강력한 중력과 같다. 중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하늘로 비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분별 집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타인을 돕는 진실한 지혜는 생기지 않는다. 번뇌를 끊고 자유로워야 다양한 방편 법문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번뇌무진서원단』이다.

법문은 다양한 방편문이다. 방편문이란 편리한 문이라는 뜻이다. 큰 방에 많은 수의 문이 사방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각자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편리한 문이 있다. 각자 문을 통해 들어가면 모두 같은 방안에 있게 된다. 나에게 가깝고 편리한 문이 다른 사람에게도 편리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에게 가깝고 편리한 문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각자에게 가깝고 편리한 문이 필요하다. 가깝고 편리한 문이 각각에게 같지 않으니 획일적일 수는 없다. 각자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의 문이면 충분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다양한 문을 통해 들어온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문앞에서 각자의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들만의 방편문을 선택하고 나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방편문이라야 경절문이 된다. 경절문이란 최단거리로 다가갈 수 있는 문을 말한다. 다른 이의 경절문이 나의 경절문은 아니다. 망상·분별·집착을 내려놓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다양한 방법 하나하나가 근기에 맞으면 경절문이다. 다양한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방편문도 모두 배워야 한다. 그러나 먼저 자신의 방편문을 통해 자신이 성취한 이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이 분산되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한 연후에 기필코 다양한 법문을 모두 배워야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된다. 이를 일러 『법문무량서원학』이라 일컫는다.

불도란 견성성불을 말한다. 지고하게 높다. 부처님에게는 이기심이 없다. 망상 분별 집착도 없다. 이러한 번뇌가 모두 끊어지고 습기마저 모두 사라졌을 때 성불하는 것이다.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이루고자 하는 이타적 대비심과 지혜가 이루어 내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 원을 성취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성불이라는 결과를 얻는다. 원인을 원만하게 성취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 얻어지는 것이다. 결국은 『불도무상서원생』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위에서 열거한 사홍서원의 네 가지 서원 가운데 ‘중생무변서원도’는 이타적 대비심을 바탕으로 일체의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하고자 하는 발원이다. 수행자가 갖추어야 하는 첫 번째 마음이다. 첫 번째 서원이 굳건해야 번뇌가 비로소 번뇌로 보인다. 자신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극복하고 내려놓는다면 대장부가 된다. 자신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진실로 남을 돕는 지혜를 기를 수 있다. 안으로는 자신의 번뇌를 내려놓고 밖으로는 다른 이의 관점에서 그들을 돕는 과정에서 번뇌는 끊어지고 습기마저 사라지는 무상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원은 동시에 일으키고 실천은 근기에 맞게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 원을 실천하는 깊이와 지속력에 따라 성취도 빠르거나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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