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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길들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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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0-06-06 10:44 조회2,7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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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길들이는 사람

성공스님_비로사/ 축서사 불교대학 강사

 

 

 

왕의 말을 모는 마부 중에 다리를 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이 타고 다니는 명마 한 필을 길들이고 있었는데,

그 말은 마부가 이끄는 대로 잘 움직였다.

어느 날, 말은 마부의 걸음걸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마부가 한쪽 발을 절며 절뚝절뚝 걸어가는 것이었다.

말은 그것을 보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저 사람은 나를 길들이며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분명 저 사람이 발을 절뚝거리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저 사람의 걸음걸이를 본받아야 한다.”

이튿날부터 말은 마부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절뚝거렸다.

그 모습을 본 왕이 수의사를 불러 물었다.

“내 천리마가 왜 다리를 저는가? 무슨 병이 생긴 것은 아닌가?”

수의사는 곧 마구간으로 달려가 말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는 말에 이상이 없음을 알고 다시 왕에게 와서 말했다.

“말은 아무 탈이 없습니다. 마부를 바꾸어야겠습니다.”

왕은 곧 마부를 바꾸었고, 말은 본래의 걸음걸이를 되찾았다.

-본생경 184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월국(越國)에는 서시(西施)라는 절세미녀가 있었는데, 하루는 병이 들어 한쪽 눈을 찡그리게 되었다. 이날 이후로 중국 전역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모든 여인들이 한쪽 눈을 찡그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 너른 땅에 한쪽 눈을 찡그리고 다니는 여인이 넘쳐 났을 것이니 볼만하지 않겠는가. 늘 서시(西施)의 아름다움을 닮고 싶었던 여인들이 서시(西施)의 흉내를 낸 것이니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승은 제자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 청출어람도, 존경하는 스승도 존재하리라. 스승은 물질적인 욕구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졌을 때 빛이 난다. 스승은 집단의 이기주의로부터 스스로 놓여날 때 비로소 그 빛이 아름답다.

참다운 스승은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조용한 몸짓 전체로 보여준다. 바른 스승은 제자의 잘못이 제자의 몫이 아닌 자신의 몫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제자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고 바른 길로 가도록 지켜보고 기다려 준다.

부처님은 당신을 닮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모든 제자들이 당신을 뛰어넘기를 바라셨다. 부처님은 세상의 큰 스승이셨다. 세존(世尊)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는 그 순간, 아난존자는 묻는다. 25년을 하루같이 시봉하던 큰스승의 입멸(入滅)을 맞아야 하는 그때, 아난존자님의 심정은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외발로 선 듯 했으리라.

“부처님 열반하신 후에 누구를 믿고 의지하오리까?”

부처님께서는 나를 믿고 따르라고 하지 않았다. “법을 스승으로, 자기 자신을 스승으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른바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의 교훈이다. 이 말씀 한 마디로 우리 중생은 참다운 자유를 얻게 되었다. 부처님의 권능에 속박된 자유가 아닌, 누구에게도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 바른 가르침에 순응(順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조차도 버리라고 하셨다. 당신의 깨달음과 같은 깨달음이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하시고, 그것을 이룰 때까지만 당신의 가르침에 의지하라고 말씀하신다.

생사윤회의 고통바다를 아주 건넌 이에게 그 바다를 건너게 해준 뗏목이 필요 없듯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밝은 달을 발견한 이에게 더 이상 손가락이 필요 없는 것과 같이, 그 이후의 일이야 이미 수많은 조사스님들께서 말씀하신 일이니 아직 눈조차 뜨지 못한 아이로서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제 부처님께서 저 진리의 세계에서 이 땅에 오신 날이 곧 다가온다. 그날은 우주 삼라만상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함께 새로운 생명의 눈을 뜨는 날이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날, 우리는 백천만겁의 윤회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매년 오는 날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경이롭고 눈물겹다.

모름지기 ‘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 아버지다운 아버지, 어머니다운 어머니, 스승다운 스승, 학생다운 학생, 아들 딸 다운 아들 딸. 탱자 같은 귤이야 어디 먹을 수나 있겠는가. 개살구 같은 살구를 어디에 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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