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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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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0-02-25 15:18 조회3,8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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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기도

 

박문현_동의대 철학과 교수

 

나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출가’했다.

중학교 진학률이 20%도 안되는 시골 학교에서 전국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K중에 응시하여 합격했지만 하숙비는 커녕 등록금도 없는 처지였다. 나의 형편을 안 지역 유지들이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고 중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 댁의 가정교사로 숙식과 등록금이 해결되었다. 나는 중·고 6년을 부모님의 도움 없이 아르바이트만으로 학업을 마쳤다. 그 뒤 대학 4년도 물론 혼자서 생활비와 학비를 조달하며 끝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돈 한 푼 없는데도 아무런 걱정이 안 되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학생이 졸업해 가정교사 일자리가 없어져도 금방 또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진급을 못 한 채 상담실에서 대기할 때는 누군가가 등록금을 내주기도 했다. 고1때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가 결식학생을 위해 내놓은 급식쿠폰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기 전 우연히 어떤 ‘도사’를 만나 인생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는 대뜸 “이 사람은 부모님의 몸만 빌어 태어났을 뿐 모든 것은 불보살이 맡아서 키워주고 있군.”이라고 말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합리적이지 않은 이런 신비스런 얘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장난스럽게 몇 가지를 묻고는 나와 버렸다.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테마를 모색하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만난 일본의 노교수가 내게 자기가 연구하던 주제를 한 부분 떼어 공부하라고 주는 것이었다. 내가 받은 주제는 그 때까지 선행연구가 없는 것이라 다소 힘들긴 했지만 독창적인 논문으로 만들 수 있어 내겐 행운이었다. 그 후 대학교수로 취직하기 위해 원서를 내야 하는데 박사과정 재학 중이라야 지원 자격이 되었는데 나는 그 때까지 박사과정을 밟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동국대가 교수채용원서마감일 전까지 나를 합격시켜 주었다. 석사과정에서는 유학을 공부했는데 동국대에서는 묵자사상을 접하게 되고 이것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지도교수로는 유학을 전공하셨지만 불교교육 및 포교에 더욱 열정을 보이시는 전 동국대 총장 송석구 박사이시다.

대학에서는 불교철학을 비롯해 도가철학 등 동양철학을 가르치면서 초능력, 환생 등의 신비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교수들과 함께 초능력학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한국정신과학학회를 창립하는데 참여하여 지금도 부산·울산·경남지역지회를 이끌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영혼의 존재에 대하여 증명할 수 없을까를 늘 생각하다가 에드가 케이시의 이야기를 적은 「윤회의 비밀」을 읽고 우리나라에도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1994년에는 정연득이라는 아이를 만나 그의 전생기억능력을 검증하는 작업을 10여명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하고 이것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전생을 말하는 사람들’로 발표했다. 이것은 그 후 TBS를 통해 일본 전역에도 몇 차례 방송된 바 있다.

성철스님께서는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제대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하신 바 있다. 나 역시 육체를 떠난 영혼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고 믿기만 한다면 불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인들이 제대로 그 종교를 신앙할 것으로 생각하기에 지금도 이러한 영혼의 존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대학교수가 된 이후 방학 때만 되면 간단하게 짐을 꾸려 산사로 들어갔다. 그 동안 영남·호남의 여러 사찰에서 내 나름의 ‘동안거’ ‘하안거’를 지냈다. 5년 전부터는 통도사의 한 암자에 방을 정해 놓고 주말을 거기서 지내고 있다. 단기출가인 셈이다. 무슨 고시 공부하듯 독실하게 학문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은 번역이나 논문을 작성하고 그 외에는 사찰 부근을 포행한다. TV, 컴퓨터, 전화기 등의 문명의 이기들을 멀리한 채 오로지 자연 속에 잠긴다.

산을 마주하고 두세 시간 앉아있기도 한다. 예불시간을 지키는 것은 물론 수시로 법당에 들어가 절도 한다. 오로지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이것도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주로 강의하고 연구하는 논문의 주제는 중국의 제자백가에 관한 것이다. 묵자는 물론이고 노자와 장자를 주 전공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이것들은 모두 불교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묵자가 내세우는 겸애라는 것은 차별 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불교의 자비와 다를 바 없다. 그는 또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만 한다면 중생들은 선업을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나는 묵자의 전도사가 되어 지금까지 국내외에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무위자연을 강조하는 노자사상을 10여 년 전부터 무료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노자의 사상은 불교로 들어가는 입문이라고 감산대사는 말했다. 지금은 불교교양대학이나 신행단체 및 불교방송국에서 감산대사의 노자 도덕경을 중심으로 ‘불교로 보는 노자’를 강의하고 있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전공분야는 불교학이 아니다. 묵자나 노자로 불교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백련암의 원택스님이 부산에 고심정사를 세우자 나는 그곳 불교대학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원택스님의 후원으로 불교문화학회를 창립하여 올해부터는 회장을 맡게 되었다.

나는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불교를 신앙으로 하겠다는 원을 세워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보면 불교라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교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의 어린 시절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할 가난 속에서도 할머니는 손자를 위하여 새벽 일찍 일어나 염불하시고 쌀 한 움큼을 가지고 절에 가셔서 축원하시는 걸 봤다.

당신께서는 오직 손자 생각밖에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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