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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초보불자 백일기도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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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0-02-25 15:12 조회2,9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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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불자 백일기도 체험기

 

김근아_오도각

 

살다보면 인생을 리셋해서 제로 ‘O’ 지점에서 시작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바이러스로 엉망이 된 컴퓨터를 포맷팅으로 초기화시키듯. 그러나 초기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말끔해진 화폭에 신나서 새 그림이라고 애써 그렸지만, 다시 보면 전과 다를 바 없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초기화를 반복하는 삶을 살다보면 사계절을 넘어서는 제5계절은 오지 않는다. 나 라는 인간 한계의 지평을 언제고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점철된 초기화의 반복말이다.

절은 잘 사는 법을 연습하는 곳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어떤 식으로든 매번 초기화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어떤 조건, 상황에서도 나는 똑같은 삶을 살 터였다. 이제 문제는 이미 선택한 것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였다. 어떤 조건이 설정된 인생이든 잘 살아내고 싶었다. 나는 까마득한 높이의 번지점프대에 성큼 올라서는 기분으로 축서사를 선택했다.

축서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우울했다.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내 안의 명령에 따라 꼼짝없이 봉화행 버스에 올라탄 순간부터 나는 체념하고 있었다. 나는 내 안의 뚝심어린 생명체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체념을 통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나는 기도객이 아니라 축서사의 일원이 되어야 했다. 소임으로 주어진 일만 하면 되고 나머지 시간은 기도에만 몰입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축서사와 같은 큰 절 살림에는 많은 일손이 필요한데 반해 깊은 산사를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연히 사시 예불이나 정진 시간에도 운력을 우선시하는 절 살림의 관행상 유언무언의 압력이 수시로 가해졌고 난 혼란스러웠다.

한동안 균형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러 보살님들의 조언과 충고가 이어졌지만 저마다 관점이 다르고 취하려는 방식도 달랐다. 봉사하며 복을 짓는 것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축서사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돌아보아야 했다. 나는 기도 중심 원칙을 세웠고 혹여 비난을 받는다 해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입장도 자각하게 됐다.

큰스님께서 절은 잘사는 법을 연습하는 곳이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잘 배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절 생활을 잘하면 어디 가서든 잘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루를 머물러도 객이 아닌 주인으로서 머물러 오는 손님을 맞이할 줄 알아야 잘사는 사람이라 하셨던 말씀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어진 일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인 이상 누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몸이 힘들고 잠이 부족하고 여러 핑계가 겹치는 날에는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지만 나는 축서사의 주인이고자 했다. 그렇게 객에서 주인이 되니 비로소 눈앞의 삶에 여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주인이 되니 저절로 모든 가능성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주어지는 것 이상은 아무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았고 설사 호의를 못 받아도 실망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았다. 받으려는 위치에서 주려는 위치로 자리가 바뀌니 그동안 품었던 모든 실망과 불만과 분노가 자꾸 대접받고자 하는 손님의 마음, 일한 만큼 받으려는 종의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됐다. 또한 일시적으로나마 나를 잊고 모두를 위해 함께 사는 삶이 매일을 기쁘게 시작하게 하는것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공동체에 대한 어떤 비전이 보이는 듯했다.

보탑 성전에서의 확 트인 조망속에서도, 뒤편으로는 위풍당당 버티고 선 소나무들을 보다가도, 행주질로 깨끗해진 세면대와 변기를 흐뭇하게 보다가도, 보광전의 삐걱대는 마룻바닥에 앉아 멍하니 청안의 비로자나부처님을 보다가도, 그리고 부처님의 수호신장으로 오랜 세월을 견뎌낸 표독스러운 용의 발톱과 앙증맞게 삐죽 내민 수염을 보다가도, 법당에서 절하고 염불하는 순간순간 감각을 잊게 하는 추위나 고통조차도 감미롭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기대하지 못한 놀라운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감사의 마음만 끓어올랐다. 그래서 경내의 어떤 분과 눈이 마주치든 그저 두 손이 모아지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축서사는 독수리 요새 그 자체였다. 아니 차라리 사자굴이었다. 어디에 있건 큰스님의 무심히 관망하는 듯한 그러나 독수리 같이 넓고 날카로운 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묘하게도 염불수행을 할수록 나는 매순간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에 투명하게 관찰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게 어떤 보살님은 절이 청정할수록 지키는 천신과 신장의 기운이 세서 생각이 청정하지 못한 자는 지내지 못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투명한 관찰자는 천신도 신장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꿈꾸는 자에서 깨어난 자로

지금 내 방에는 축서사의 2010년 달력이 걸려 있다. 또 다시 1년분의 시간이 응축된 채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합집산하며 부처님의 눈길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축서사에서는 편안했던 그 감각이 이제는 꽤 불편하게 느껴진다. 점점 지금의 자신을 마주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진다는 증거다.

올 까치설 연휴에 본 ‘아바타’라는 영화에서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가 한 말이 떠오른다. 가르침을 청하는 꿈꾸는 자 제이크에게 그녀는 ‘가득찬 잔을 채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느새 내 안에 가득 채워진 잔을 본다.

정신이 번쩍 들게 야단쳐주셨고 가끔은 자비로운 미소로 팍팍한 절 생활을 보듬어 주셨던 큰스님, 기도를 잘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이끌어주시고 때로 매섭게 채찍질 해주신 관세음보살의 화신 같으셨던 기도스님, 기도 중에 막혀 끙끙대면 어떻게 아시고 불러 세워 자신의 수행담을 예로 들어 깨우쳐주셨던 한없이 맑고 고요하시던 도감스님과 선방 스님들, 필요한 것이 생길 때마다 달려가 귀찮게 해도 잘 챙겨주셨던 원주스님, 늘 은은한 미소로 모범을 보이셨던 보살님과 처사님들의 자애로운 얼굴들이 스쳐간다.

백일기도 도반들의 반짝이던 눈망울에 ‘인연’이란 글자가 기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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