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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깨어있는 마음만이 삶의 온전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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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11-15 11:05 조회3,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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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마음만이 삶의 온전한 모습

 

 

이광세 법사

 

22.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중생은 그릇 따라 이익을 얻네

모든 생물체인 중생은 각자가 닦은 근기의 분수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는 뜻이다. 둥근 그릇에 담긴 물은 둥글게 보이고 모난 그릇에 담긴 물은 모나게 보인다. 불법의 진리를 담은 그릇은 그릇에 따라 다르니 참으로 이로운 진리를 올바르게 담고 가꿔야 할 것이며, 그릇이 커야 많이 담을 수 있을 것이니 즉, 그릇이란 깨달음의 근기를 말함이다.

해인삼매는 모든 중생의 모습 그대로 열린 세계의 빛으로 있는 것을 알때 나타난 무아의 삼매이다. 한 중생으로서의 자아를 갖지 않는 데서 법계중생의 제 모습으로 그릇됨(器)을 갖고 있으나 이것은 아울러 이웃 부처님을 만드는 것이니 끝없이 펼쳐진 부처님 세계를 이룩하게 하는 것이 또한 중생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의 이익을 구하려 할 때는 한 톨의 밥도 진정한 의미에서 소화시킬 수 없지만 이웃 부처님을 이루는 베풂은 그대로 온 우주 법계를 소화시킬 수 있으니 베풂만이 이익인 것이 해인삼매에서 얻는 중생의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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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是故行者還本除(시고행자환본제)그러므로 수행자는 마음자리에 돌아와

그러므로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람은 근본 부처의 진리로 도달할 수 있다. 수행자란, 생각생각에 개념으로 파악하는 모든 상을 여의고 마음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무념무상으로 무심할 때를 말한다.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의 전부이다. 거짓없는 빈 마음을 그대로 쓰는 것이 수행자가 자신의 자리에 돌아온 것으로 본디 모습이다. 본제란 내종의 해인으로서 중생에게 내재된 불성이다.

 

24. 叵息妄想必不得(파식망상필부득)망상도 쉬지 않고 열반도 얻지 않으나

부질없는 번뇌와 망상을 쉬어야 근본 바탕에 돌아 간다는 것이니 반드시 근본 바탕에 가려면 번뇌와 망상을 버려야 하며 번뇌 망상을 여윈 마음이라야 부처라 할 수 있다. 우주 법계와 함께 하는 연기실상 속에서 한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생각흐름을 그대로 두고 빈마음으로 지켜볼 때 생각생각이 부동심이 되어 그 자체로 망상이 쉬게 되고 본디 마음자리가 훤히 드러나게 된다.

 

25. 無緣善巧捉如意(무연선교착여의)분별을 떠난 교묘한 방편으로 뜻대로 여의보배를 잡아 조건에 구애되지 않는 교묘한 방편으로 뜻을 이루게 되나니

즉 분별을 떠난 교묘한 방편으로 뜻대로 여의보배를 얻는다. 분별없이 그저 지켜보는 수행으로 모든 것이 마음자리의 나툼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무연(無緣)이라고 한다. 또한 마음 없는 데서 마음을 나투어 중생의 세계가 그대로부처님의 세계를 이루게 하니 방편이라고 한다. 스스로가 마음의 본 바탕을 닦고 터득하면 누구나 부처가 되며 여의하게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

 

26. 歸家隨分得資糧(귀가수분득자량)집에 돌아가 분에 따라 자량을 얻네

분수에 따라 재물과 양식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본바탕의 진리에 돌아 갈 때는 누구나 자기가 닦은 만큼의 양식을 얻어가고 지은 업행에 따라 돌아간다는 것이니 제악막작하고 중선봉행하여야 한다. 근본마음자리를 드러내는 데는 지금 쓰고 있는 마음 밖에 따로 얻을 자량이 없다. 이 마음 그대로 법계 전체에 보배를 보내고 있는 것이고 그보배를 일체 중생의 온 삶이 있는 것이다.

 

27. 以陀羅尼無盡寶(이다라니무진보)다라니의 다함 없는 보배로

신묘한 다라니는 연기 실상의 다함없는 보배이다. 순간순간 깨어있는 마음이 법계를 이루는 보배이며, 이 마음은 항상 새롭게 세계를 빛으로 밝히고 있다. 다함없는 보배인 깨어있는 순간순간의 한마음이 바로 연기법계의 총상이 되어 모든 것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라니 곧 총지라고 한다.

 

28. 莊嚴法界實寶殿(장엄법계실보전)법계의 참된 보배궁전을 장엄해

법계를 장엄하면 부처님 세계가 된다. 즉 한바탕 불국토에 법왕궁을 꾸민다는 것이다. 우주 만유를 무진보로 장엄을 하면 부처님의 세계 즉화장 세계가 된다. 온 누리의 진리가 각자 마음속에 있으니 자기 마음의 보배 궁전으로 장식한다. 법계의 참된 보배궁전을 장엄하는 것은 깨어있는 수행자의 마음이다. 깨어 있는 마음만이 삶의 온전한 모습이고 법계의 실상이기 때문이며 법계를 장엄하는 다라니의 한없는 보배란 마음마음이 인연따라 한없는 모습으로 빛이 되는 것이다.

 

29. 窮坐實際中道床(궁좌실제중도상)마침내 실제의 중도자리에 앉으니

마침내 실다운 중도의 해탈좌에 앉으면 깨달으리라. 중도란 있다. (有), 없다(無), 옳다(是), 그르다(非)를 다 초월해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진리에 들어가야 해탈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어느 특정한 시공의 자리가 아니라 온 생명이 어울려 있는 한 삶으로서의 자리를 말하고 이를 화엄이라 한다. ‘마침내’란 다시 처음을 포함한 말로써 처음과 끝이 없는 데서 처음과 끝을 세우니 그것이 진여법계에서 말하는 중도의 자리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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