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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하는 삼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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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8-22 16:26 조회3,1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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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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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하는 삼천 배

 

최윤정_서울

 

4년 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절에 다니게 된 것이 축서사와의 첫 인연이다. 당시 나는 소극적이고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 탓에 스스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남들보다 몇 배로 오는 업무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지만 절을 오고 갈 뿐 내면의 변화는 조금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지난 몇 해를 돌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들을 점검하다 보니 직장을 그만둔 이후 새로운 일을 해놓은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작년까진 실감하지 못했던 󰡐마흔󰡑이란 나이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오십, 육십이 될 텐데󰡑, 󰡐늙지 않고 마냥 젊게 살 것으로 착각만 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온몸을 누르는 답답함이 목을 죄어 오는 기분이었다.

그동안의 삶을 돌아볼 틈 없이 다른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며 살아왔던 나. 뭐 하나 열심히 한 것도 없고 어영부영 직장생활을 하다 힘들면 그만두었다가 불안한 마음에 다시 직장에 들어가고, 생활의 여유도 없이 다른 이들보다 더 잘살기 위해 경쟁하듯 살아왔던 나. 습관처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삶의 기준이나 목표 없이 주위 환경에 휘둘리는 나. 이렇게 사는 게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막상 변화 앞에서는 주저하고 망설였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어떤 삶이 잘 사는 것인지…….󰡑

이런 의문을 가진 채 부처님 오신 날 축서사를 찾았다. 그렇게 조용하고 깨끗하던 절이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처음에는 일을 도와드릴 겸 해서 며칠 축서사에 머물기로 작정을 했다. 그러나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음 날 스님들까지 나오셔서 바쁘게 울력을 하는 중에 할 일을 잠시 접어두고 보광전에 올랐다. 스님들과 보살님들께 죄송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부터 다스리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보광전에서 절을 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거였다.

 

다음날 공양 때,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한 나를 눈여겨 본 여러 보살님께서 삼천 배를 해보라고 권하셨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사흘 동안 해 보라는 말씀에 마음을 내보기로 하고 삼천 배를 시작했다.

평소 절은 계속 해왔기에 첫날은 별달리 힘들지 않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며 절을 했다. 어느새 좌복이 땀방울로 물들어갔다. 얼마나 한참 절을 했을까. 문득 큰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관세음보살 염불하는 이놈이 뭣꼬?󰡓

갑자기 까닭 모를 눈물이 터지면서 그 자리에 앉아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 울고 나니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가벼워졌다. 이전에 사람들과 함께 절을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내면의 멍울들이 눈물과 땀 속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둘째 날 절을 할 때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한참을 울었다. 이후 절을 할 때마다 마음은 더 고요해졌다.

마지막 날 절을 하는데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처음 절하는 사람 마냥 호흡이 차고 힘이 들어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결국, 차편 때문에 삼천 배를 채우지 못한 채 돌아서려는 순간, 삼천 배를 권했던 보살님들께서 나를 위해 예약해놓은 차편을 미룰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덕분에 무사히 사흘 동안의 삼천 배를 회향할 수 있었다.

 

그날의 삼천 배 이후 나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맺혀 있던 것들이 이번 기회에 많이 해소된 것 같다. 이게 업이라는 걸까? 그리고 절을 할 때는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깊은 환희심의 순간이 되기도 하고, 너무 고통스러운 절망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아차리게 됐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을 벗어난 것은 삼천 배가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삼천 배를 회향한 나 자신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기도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 보살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지금까지 인생의 반을 아무 생각 없이 나만을 위해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불보살님들의 대원처럼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나의 삶은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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