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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길에서 그림자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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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4-28 15:40 조회3,2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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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길에서 그림자를 돌아보며

보련행_진주

 

10여 년 전, 무여 큰스님은 그렇게도 텅 빈 모습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고 그분이 머물고 계신 경북 봉화군 문수산 축서사 역시 그러했다.

문수산은 온갖 생명들의 투정과 애환을 묵묵히 감싸 안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장엄하게 서 있었고, 축서사는 깊고도 깊은 성인의 마음인 듯 고요하기만 했다.

축서사에서 보낸 지난 90여 일의 동안거를 생각하면 못내 아쉽다. 각자가 스스로 감내해야 할 삶의 빛깔들을 안고 조용히 움직이던 대중들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 대중들을 그리워하면서 동안거 참가기를 쓴다.

지난 겨울을 보낸 축서사 보현선원. 좌복 위에서 까먹는 복의 수치가 대략적으로라도 나온다면 나부터도 쉽게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수치를 짐작도 할 수 없기에 인생사 희노애락 풀코스를 한번쯤은 겪었을 것만 같은, 그래서 적당히 철이 든 중년의 여인들이 문수산 자락에 울퉁불퉁 모여들었다.

각 지대방에 붙여둔 청규는 그야말로 이론인지라 입선 죽비가 울린 첫날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심각해지더니 마침내 대중공사의 말이 오가기도 하며 모두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내용이래야 따지고 보면 별 것 없다. 기침소리, 코고는 소리, 신발 끄는 소리 등 간단한 것에서부터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등의 편 가르기까지…….

그러나 큰스님의 향훈이 배어 있는 그 도량에서 삼보님께 귀의하게 됨을 감사드리고, 나의 진실한 마음을 저버리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면서 시리도록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옮기던 새벽예불 길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가행정진 중 밤포행을 돌다 문득 바라본 보름달만큼이나 황홀했다.

우리들의 근기에 맞춰 기도와 복 밭의 터전을 열어놓으신 큰스님의 원력 덕분에 천수천안으로 중생의 아픔을 보듬어 안는 관음보살님을 뵐 수 있었고, 기후스님은 북암에 계시면서도 때에 맞춰 예불 모시고 공양 드시며 오고 가는 일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음을 여일하게 보여주신다. 그리고 도감·기도·농감·원주스님, 종무소 보살님들, 도량석, 종성……. 나무 한 그루 돌담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이 도량에서의 토요 참선법회는 환희심에 들뜬 수좌보살이 온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도 펄펄 힘이 나는 곳이었음을 마침내 알게 되었나니.

‘인생의,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절하옵니다.’

어찌 화두가 선반 위에 올려놓은 일념이겠는가. 그 일념을 매순간 생활 속에 녹여서 ‘한 생각 일어나기 전 활발한 소식’으로 일상에서 되살아 나게 하기를 끊임없이 연습하며 나를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수행임을 가르쳐주신 문수산 축서사.

선방 내의 이런저런 문제들은 모두들 가슴 저 밑바닥에 깔린 ‘공심’으로 하나씩 풀어나가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옆 사람의 못난 점은 어제의 나였고, 바람직한 모습들은 지금 당장 본받아야 할 내 모습이었다. 마침내 서로 부딪히고 깨져서 동글동글 자갈돌이 될 것임에…….

마침내 해제일이 되고 보니 그동안 나의 도반님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나 보다. 석 달 동안 인생의 한 마디를 같이 엮어온 지중한 인연들과의 이별이 눈앞에 와 있다. 그런데 웬 이별? 그 자리에서 한 치도 옮긴 적이 없다던 부처님의 말씀을 또 잊었는가 보다.

기도 회향과 바쁜 일정에 피곤도 잊으시고 공부인은 해제와 결제가 따로 없음을 간곡히 일러주시던 큰스님께 두 손 모아 감사를 드리며 대중화합을 이끄시느라 애쓰신 입승스님과 막내의 서툰 점들을 묵묵히 보아주신 대중 보살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부디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를 기원드린다.

북암으로 가는 골짜기에서 들려오던 매서운 바람 소리를 회상하며, ‘이 아득한 길에서 그림자 돌아보며 온 곳을 묻노라, 나는 누구인가! 이 무엇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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