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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노인복지의 현장에서 연마하는 육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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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11-03 14:30 조회3,0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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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스님_사회복지법인 자비원 사무처장·영축총림 율감

 

 

속진을 비워내고자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 어언 20여 년 가까운 시간이다. 그러나 말이 좋아 수행자이지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나 금세에 불연이 닿아 출가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족하며 내세에는 선사들의 치열한 구도행을 본받아 기필코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눈을 뜨고 눈을 감으며 늘 서원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출가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세상이. 그것은 노인세대들을 위한 노인복지였다. 황혼의 그들에게는 무엇이 우선일까 하는 생각에서 사회복지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생에서의 회향은 정해진 것이라는 판단에서 노인복지에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가 선 것이었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배워서 남주랴’ 는 격언이 있다. 밤잠을 자지 않고 했던 공부를 현장에 활용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른 봄, 기관 이사장스님의 통보는 그랬다. 10여 개가 넘는 산하 기관을 관장하는 기관의 사무처장 역할이 주어졌다. 물론 나는 이론적으로는 무장이 돼 있으나 한 번도 실생활에 투입돼 본 적이 없는 사회복지사였다. 출가수행자로서의 내 부족함이 그렇듯이 말 뿐인 사회복지사가 실무를 관장해야 하는 중책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발령을 받고 기관에 와 보니 해야 할 일이며, 돌봐야 할 노인들의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쉽지 않았다.

출가자로서 사원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도 높기만 하던 하늘과 베일 듯 하늘로 치켜든 용마루. 일렬로 줄을 서서 사중을 가로지르던 학인시절의 발걸음 등 주마등처럼 스치고 달아났다. 중생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알고 수행자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하던 그날의 각오까지 그렇게 봄소식인양 가깝게 와 앉는 것이었다.

80 여 입소 어르신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마음자리에 다가가 보았다. 몇 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들의 젊은 날을 회상한다면 그들 또한 지금의 모습을 가늠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어르신들을 위하여 지혜의 마음을 내 드리자는 생각이 일었다. 그들의 일상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일을 내 육신을 돌보는 일처럼 하자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옷을 입고 음식을 섭취하고 공동의 관심사를 나눠 지니는 일에서부터 생이 다해 눈을 감는 순간까지를 돌봐줘야 하는 일은 그렇게 내가 책임져야 하는 바로 내 부모의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가 하면, 어르신들의 숫자와 맞먹는 종사자들의 근무 상황을 점검하며 혹여 소원해질 수도 있을 입소 어르신들과의 유대관계를 알뜰히 살피는 일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임직원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결국은 어르신들의 일상에 파장이 될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 기관의 기본 질서가 된다고 생각하니 어느 한 부분 소홀히 넘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임직원들의 동선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으로 우리 기관의 얼굴이 되는 종사자들에게 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나는 그들 개개인에게 복지사라는 이름을 벗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어르신들의 문제를 문서화 할 것과 어르신들을 가족으로 대할 것을 주문했다. 그것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며 지켜져야 할 행동양식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기관장으로서의 역할 뒤에는 예기치 못한 보람도 있었으며 또 예기치 못하는 과실도 따르기 마련이었다. 뿌듯한 일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자족감이 있으나 점검해야 할 일에서는 한없이 나를 내려다보며 가장 엄격한 눈으로 담금질을 해야 했다. 그것이 정체되지 않는 나의 생활을 돌아보는 일이며, 처음의 각오이기에 그곳에서 멀어지지 말자는 내 안의 결연한 의지이기도 해서였다.

사계절을 보내며 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관에서 가족들을 초청해 갖는 설명회가 있는가 하면, 어르신들과의 야외 나들이, 생일잔치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을 치르며 그들의 미소를 볼 때가 난 가장 즐겁다. 그들의 웃음이 있고 그들의 세상에 내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백중절에는 기관에서 여생을 보내다 고인이 된 분들을 위한 천도의식을 봉행해 드렸다. 출가자의 신분이면서 참참히 익혀두었던 영산의식을 도반스님들을 초청해 여법하게 해 드렸다. 그것은 우리 기관이 출범하고 처음 있는 의식이어서인지 가족들에게서 듣는 감사의 인사는 영산작법을 한 도반 일행들과 나의 마음을 한결 기쁘게 해 주었다. 아마도 영산재를 하고 그토록 많은 인사를 들어 본 것이 처음이지 싶었다.

올곧은 출가자, 계율에 한 치의 그릇됨을 보이지 않는 수행자의 길을 가장 수승한 법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시간처럼 기관장으로서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 또한 현재 내가 이행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수양의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날 오후 갖게 된 늦은 깨침이기도 했으니 율사의 길을 고집했던 지난 시간들에 지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나를 흔들고 달아나는 거였다.

새것으로 움 트고 빛을 발하고 시들어가는 이치에 불응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의 섭리나 사람의 삶이나 다르지 않다. 사찰의 진입로를 따라 줄지어 선 오래된 나목들에서도 이제 단풍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폭염을 마다하여 실내공간만을 고집하던 어르신들의 동선이 제법 길어졌다. 바깥 등나무 아래서 담소를 나누는 그들 곁으로 가서 잠시 앉는다. 건강 상태가 좋아 입소 어르신들끼리 유대관계를 이어가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건강이 좋지 않아 그저 한참을 그 나무 그늘 아래서 햇볕을 향해 시선을 떨구는 어르신들도 있다. 난 그들의 세계를 여실히 들여다본다. 그들 안에서 실로 바라밀행을 실천하는 불제자인가를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그렇게 마음을 관하고 진실의 세계를 체득하고, 불법에 들어와 있음을 새기며 바라밀보다 더 여실한 바라밀행을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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