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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육바라밀 실천은 곧 불보살의 나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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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11-03 14:29 조회3,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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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_미디어붓다 대표

 

불교란 무엇일까, 또 어떻게 신행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에 대해 꽤 오랫동안 골똘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불교는 ‘지혜’와 ‘자비’를 두 기둥으로 하는 종교이며, 두 기둥 가운데 어느 하나도 기울거나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색즉시공에 대한 완전한 체득을 통해 완성된 지혜를 얻고, 공즉시색에 대한 완전한 체득을 통해 완전한 자비를 발현하는 것’, 이것이 불교이며, 불교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기둥, 즉 ‘지혜와 자비의 성취는 오직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도 이런 고민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결과다.

어지간한 불자라면 육바라밀을 모르지 않겠지만, 정작 그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육바라밀을 단순히 대승적 삶의 실천방법 정도로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육바라밀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육바라밀이 공(空)의 이해이자 실천’임을 체득할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결코 간단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육바라밀은 출·재가를 막론하고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이 실천해야 할 여섯 가지 필수코스다.

주거나 베푸는 의미를 지닌 보시바라밀의 능동적 의미는 ‘허망한 것에 매달리지 말’거나 ‘집착하지 않는’ 공성(空性)에 대한 깨달음의 실천이다. 지계바라밀은 상대가 끊어진 지악수선(止惡修善)의 ‘불교 윤리’이며, 인욕바라밀은 참는 주체마저 사라진 경지에서 용서로 나아가는 실천행이다. 정진바라밀은 선(善)을 행함에 있어 좌절함이 없이 굳건한 것(立志堅强 遠離怯弱)이며, 선정바라밀은 ‘생각을 모아 정신을 응집한다(專念集注)’는 의미지만 사리불의 좌선에 대한 유마의 비판에서 보듯이 ‘모든 불교적 실천의 근본자리’에 해당한다. 반야바라밀은 앞의 다섯 바라밀의 완전한 이행으로 얻어지는 ‘바라밀 완성태’이자 모든 불교적 수행의 완성이다. 이 여섯 바라밀은 공히 일상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을 극복하고 청정한 공성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큰마음으로 정진하는 성불의 지침(成佛指針)이다.

그렇다면 육바라밀 정신을 가장 실감나게, 또 쉽게 드러내 주는 불전(佛典)은 없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본생담(자타카)>중 한 편을 읽어 보자.

탐욕스런 왕비가 있었다. 왕비가 어느 날 꿈을 꿨다. 꿈에 히말라야의 한 산에 들어갔다가 황금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만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우아해 황금 상아를 장신구로 삼고픈 마음을 내다가 깨어났다. 왕비는 왕에게 달려가 코끼리의 황금 상아를 구해달라고 졸랐다.

왕은 히말라야 황금 상아 코끼리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린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이 포고문을 본 한 사냥꾼이 사냥에 나섰다. 이 사냥꾼은 언젠가 히말라야 숲에서 이 코끼리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 코끼리는 이 숲 모든 동물들의 왕으로, 동물들이 마음속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이 코끼리가 수행자들 옆을 지나칠 때는 예를 표하고 가곤 하는 모습을 기억해낸 사냥꾼은 수행자로 위장해 독화살을 들고 숲으로 갔다. 사냥꾼은 수행을 하는 척하며 코끼리 왕을 기다렸다. 어느 날 코끼리가 나타났다. 코끼리는 수행복을 걸친 사냥꾼을 보고는 다가와 머리 숙여 예를 표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냥꾼은 독화살을 쏘았다. 코끼리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비명에 놀란 숲속 동물들이 몰려왔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왕을 해친 사냥꾼에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쓰러졌던 코끼리가 일어나 코로 사냥꾼을 감아 다리 사이로 옮겨 보호했다. 그리고는 안전한 곳까지 걸어가 사냥꾼을 풀어주며 말했다.

“나는 곧 온 몸에 독이 퍼져 죽게 될 것이오. 그러나 독이 온몸에 퍼지기 전에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 이유는 당신이 살생의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내 황금 상아를 뽑아 줄 것입니다. 내가 죽은 후 뽑으면 당신은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냥꾼은 상금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 부끄러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호흡이 더욱 거칠어진 코끼리 왕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를 해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대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수행자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큰 악업을 지었지만, 수행자의 옷을 입었던 공덕으로 다음 생에 수행자로 태어날 것입니다.”

힘겹게 말을 마친 코끼리 왕은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향해 달려가더니 그 나무에 황금상아를 세차게 부딪쳐서 이빨을 뽑았다. 그리고는 검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죄책감에 떨고 있는 사냥꾼에게 코끼리 왕은 안간힘을 다해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와 같은 인연 공덕으로 내가 다음 생애에 부처가 된다면 맨 먼저 그대의 삼독을 빼줄 것입니다.”

육바라밀을 생각할 때면, 오래전에 읽은 <본생담(자타카)>의 이 한 편이 떠올려진다. 육바라밀에 대해 이 만큼 잘 설명한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황금상아를 가진 코끼리는 물론 전생의 석가모니부처님이다.

이 전생 이야기에서 코끼리 왕이 사냥꾼에게 황금상아를 직접 뽑아 건넨 것은 보시바라밀의 절대적 관용 정신을 상징한다. 또 수행자의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면서도 상대를 해치지 않는 것은 무아의 경지서 가능한 인욕바라밀 자체다. 상대가 살생과 도둑질의 중죄를 짓지 않도록 독이 퍼지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지계와 정진바라밀이 어떤 경지에서 실행돼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이고, 생명을 앗은 원수에게조차 원한을 두지 않고 외려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배려하며 평정을 유지한 것은 말 그대로 선정바라밀의 정수(精髓)다. 마지막 유언을 통해 ‘성불을 한 후 제일 먼저 그대(사냥꾼)의 삼독을 빼주겠다’는 약속은 지극한 자비에 근거한 지혜바라밀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이 전생담에 나타난 바라밀행들이 공히 대승의 특징인 ‘이타주의(利他主義)’를 철저하게 배경에 깔고 있는 점이다.

그렇다면 육바라밀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육바라밀은 부처를 낳는 불모(佛母)이며, 그 실천은 곧 불보살의 나툼(顯現)인 만큼, 그 의미에 현대와 고대를 구분할 수는 없다. 다만 고학력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의 불자들은 과거 세대보다는 마땅히 육바라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 올바른 공부과정을 통해 육바라밀을 제대로 이해한 이가 행하는 실천이 곧 보살행이요 부처님의 행이며, 이러한 보살과 부처들이 펄펄 살아 뛰놀며 살아가는 세계가 곧 불국토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불자들이 불교를 바르게 신행하는 길은, 또 부처가 되고 마침내 불국토를 이룩하는 길은, 생떼같은 매달림이나 공허함을 부르는 침묵, 신이한 돌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육바라밀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실천에 있음을 체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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