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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부처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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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1-21 16:51 조회3,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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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들은 다양한 삶의 형태 속에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 없이 욕망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이 성취되어
영원히 안락을 얻기를 바라지만 대개는 그것을 이루지 못할 뿐만아니라,
또 만족하지 못하여 항상 괴로워하는 것이 인생살이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삶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탐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몸소 수행과 성도라는
과정을 통해서 진리의 삶을 살다 가셨다. 부처님의 일대기는 삶 자체가
큰 법문으로서 부처님 당시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자비
광명의 은덕으로서 많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시고 있다.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서 수행함으로 우리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또 스스로의
삶 속에서 자신을 향상시키고, 다른 모든 이들에게 이익이 되고 안락을
줄 수 있도록 정진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부처님의 탄생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장구한 세월을 도도히 이어온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 기슭에는
로히니강 곁에 고타마라는 성을 쓰는 사캬(석가)족이 모여사는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숫도다나왕과
마야왕비에게는 결혼한지 20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없는 것이 늘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밤 마야왕비는 6개의 상아를 가진 눈부시게 빛나는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때부터 마야왕비에게는
태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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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동산
부처님이
태어나신곳


카필라성의 왕비 마하마야는
해산하려고 친정인 데바다하(천비성)으로 가고 있었다. 카필라성과 데바다하
중간에 ‘룸비니’라고 하는 아름다운 동산이 있었다. 이 동산에는 아쇼카나무(無憂樹:무우수)가
우거져 있었다. 그 때 여러 나무들은 줄기에서 가지 끝까지 꽃을 피웠고,
그 사이로 아름다운 새들이 지저귀면서 날아다녔다. 왕비는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서 잠시 쉬고 싶었다.


왕비는 가마에서 내려
숲에서 가장 웅장한 아쇼카나무 아래 이르렀다. 왕비가 꽃이 활짝 핀
가지를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손이 가지에 닿자 왕비는 곧 산기를 느꼈다.
시중들은 곧 왕비의 주위에 포장을 치고 산실이 마련되자 마야왕비는,
아쇼카나무 꽃가지를 잡고 선 채 오른쪽 옆구리로 옥동자를 낳았다.
아기는 탄생하자마자 다른 사람의 부축없이 스스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 걸음걸음마다 수레바퀴같은 연꽃 송이가 피어 올라 발을 받쳐
주었다. 일곱 걸음씩 걷고 나서 사방과 상하를 둘러본 아기는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가리키며 사자처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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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데비사원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 속에 헤매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그 아기가 사캬족 카필라성의
새로운 왕자 ‘싯다르타’였다.


♧ 어린 시절과 출가


어린 시절 싯다르타
태자는 철학, 학문, 무술, 병법, 천문, 지리, 제사 등의 교육을 받으면서
스승이 놀랄 만큼 빠르고 정확히 익혀 이내 스승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12살이 되던 해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중요한 국가적 의식인 농경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거기서 밭가는 농부의 모습, 파헤쳐진 흙 속에서 벌레들이 나와
허둥대자 순간 새들이 쏜살같이 벌레들을 다투어 잡아 먹는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태자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어 잠부나무 그늘
아래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명상에 잠겼다.


어느 날 태자는 성
밖으로 유람을 나갔다. 동문 밖에서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걷고 있는
허리가 구부러지고 여위어 뼈만 앙상한 노인을 만났다. 그 뒤 남쪽 문
밖에서는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병자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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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유관상


사문증 서쪽 문밖에서
싯다르타 태자는 죽은 사람과 죽음을 슬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서쪽 문을 나섰다가
이번에는 죽은 사람의 장례행렬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본 태자는 마음에 깊은 번민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
뒤 북쪽 문 밖에서 비록 누더기옷을 걸쳤지만 초라한 행색에 반해 얼굴에는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출가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태자가 시종에게 묻기를,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저사람은 사문(沙門)이라 하여 출가한
수행자입니다.” “출가사문이란 어떤 행을 하는 사람이냐?” “출가사문이란
세상의 악을 떠나서 선을 행하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두려움을 없앴으며,
일체 모든 중생에게 평등과 자비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뛸듯이 기뻤다.


이후 태자의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자 더 이상 출가를 미룰 수 없어 29세 되던 해 2월 8일 드디어
성문을 나섰다.


♧ 험난한 수행과 깨달음


출가사문이 된 태자는
깨달음을 이루기 위하여 스승을 찾았다. 아라라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웃다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익혀 짧은 기일 내에 스승의
경지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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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상


그 당시 수행자들은
비상비비상처정을 최고의 경지로 보고 있었으나, 고타마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이상 스승이 없음을 알고 혼자의 힘으로 수행해 가기로 하였다.
우루벨라의 숲으로 간 고타마는 그를 따라 나선 다섯 명의 수행자들과
함께 고행을 했다.


고타마의 고행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지독하고 처절하였다. 경전에서는 그의 고행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살갗은 익지 않은 오이가 말라 비틀어진
것 같았으며, 수족은 갈대와 같았고, 드러난 갈비뼈는 부서진 헌 집의
서까래와 같았으며, 척추는 대나무 마디와 같았다.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손을 들어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졌다.
해골이 드러나고 눈이 깊이 꺼졌으며, 일어서려면 머리를 땅에 박고
넘어졌다. 그러나 오직 눈만은 깊은 우물 속의 별과 같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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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
법륜


그러나, 그런 몇 년간의
고행이 깨달음을 주지는 못했다. 마침내 고타마는 육체를 괴롭히는 극단적인
고행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강물에
몸을 씻고, 소치는 소녀의 우유죽 공양을 받고 나니 극도로 쇠약해진
몸과 정신이 상쾌해졌다. 그리고나서 홀로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지 않고는 결코 이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는 선정에
들었다.


마침내 12월 8일 새벽,
사문 고타마는 동쪽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위없는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을
얻었다. 그 때가 35세 때였다.


♧감로의 문을 여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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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태자는 우주와
인생의 최고의 진리를 깨닫고 마침내 석가모니부처님이 되셨다. 부처님은
성도 직후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7일 밤낮을
그대로 앉아 진리를 성취한 희열을 즐기셨다. 그 때 브라흐마신(범천:梵天)이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중생들을 위해 가르침을 널리
펴실 것을 간곡하게 청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브라흐마신의 세 번에
걸친 간청으로 드디어 콘단냐(교진여) 등 5명의 비구들을 시작으로 하여
45년간 진리의 말씀을 설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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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하 부군에 있는 영축산 부근에서부처님의 많은
서러이 이루어 졌다.


부처님의 1,250 명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10분의 제자로는 ‘지혜제일 사리풋타(사리불)’,
‘신통제일 목갈라나(목건련)’, ‘두타제일 마하카삿파(마하가섭)’,
‘다문제일 아난다’, ‘지계제일 우팔리(우바리)’, ‘천안제일 아누룻다(아나율)’,
‘밀행제일 라훌라’, ‘설법제일 푼나만타니풋타(부루나)’, ‘논의제일
마하캇차야나(마하가전연)’, ‘해공제일 수부티(수보리)’ 등이었다.


♧ 온 인류의 스승
열반(涅槃)에 드시다


80세가 된 부처님의
열반을 앞두고 시자인 아난다는 근심이 되어 부처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다.


“나는 안팎의 구별없이
모든 법을 설했다. 나의 가르침에는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 없다.
비구들이 나를 의지하고 있다거나 내가 비구들을 이끈다거나 하는 생각도
없다. 비구들은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며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에 의지해서 수행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높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쿠시나가라 교외 사라나무 숲에 이르러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변하니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그리고는 아난다가
깔아놓은 자리에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고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누워 발 위에 발을 포갠 자세로 선정에 든 채 열반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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