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법문

  >   무여스님   >   감로법문

감로법문

화두참구법 제 5강 / 지혜롭게 참구하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2-07-18 13:20 조회4,507회 댓글0건

본문

오늘도 늦은 밤에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간 화두참구법으로 화두참구의 요령과 화두참구의 삼요(三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도 의정이 잘 안 나는 참선자는 호흡법으로 집중해서 지혜롭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화두참구의 요령은 화두를 간절하게 들고, 성심성의껏 들고, 쉼 없이 들라고 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화두는 아주 간절, 간절하게 들어야 됩니다. 화두가 간절해서 막 눈물이 날 정도로 그롷게 들기 바랍니다. 그렇게 들면서 또 성심성의껏 들어야합니다.

 

최선을 다하듯이, 오직 그것뿐이듯이,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그렇게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간단(間斷)이 없이, 끊임이 없이 그렇게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래도 진의(眞疑), 진정한 의정이 돈발하지 않는 사람은 대신심(大信心)을 내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말씀이나 조사스님의 말씀과 화두에 대해서는 아주 온전히 믿고 철저히 믿어보십시오. 그렇게 큰 믿음을 가지시고, 큰 분심(憤心)을 내세요.

 

분심이란 분한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왜 안 되는가? 왜 나만 못한단 말인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 선지식이 이 관문을 통과해서 명안종사(明眼祖師)가 됐는데 왜 나만 못한단 말인가? 나도 본래 부처인데, 즉 본바탕은 부처님과 꼭 같은데 그들이 장부라면 나 또한 장부가 아닌가? 왜 나만 안 된단 말인가?”하는 분심을 내도 큰 분심을 내서 참으로 화두가 되도록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대의심, 아주 크고 지극하고 간절한 그런 의심을 내 보시기 바랍니다.

 

참선자는 화두가 안 된다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막 비상이라도 걸어야 합니다. 옛 어른들은 식음도 전폐하고요, 밤잠도 자지 않고 부모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심지어 목숨까지도 걸고 어떻게라도 되도록 애쓰고 애썼다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그렇게 애쓰면서, 화두가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처럼, 아무 쓸모가 없는 송장에 자신을 비유한 그런 분도 있습니다.

 

오늘은 화두에 진의가 나지 않는 분을 위해서 호흡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흔히 화두가 안 된다, 화두에 진의가 돈발하지 않는다는 그런 참선자 중에서 마음이 안정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참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두참구는 마음이 고요하고 고요한, 아주 안정이 된 상태에서 참구해야 의정이 잘 일어나는 것 같고, 또 참구하는 기분을 느끼기가 쉽습니다.

 

마음을 안정시켜서 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호흡을 바르게 해야 수행을 잘 할 수가 있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진정한 보람과 행복까지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호흡법을) 꾸준히 함으로써 몸의 원동기라고 할 수 있는 심장까지도 건강해져서 오래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해도 화두가 안 되는 분이나 속효심(速效心)을 내서, 즉 속효심이란 어서 빨리 화두가 됐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속효심을 내서라도 수행의 맛을 꼭 맛보고 싶은 사람은 호흡법을 해 보시면 상당히 만족하실 겁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대중들 속의 한 제자에게 질문을 했어요.
“너는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한 제자가)“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대답합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너는 아직도 도를 닦을 수 없겠구나.”했다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는 다른 제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니까 한 제자가 “밥을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너도 도를 닦을 수가 없구나.”


부처님께서는 다른 또 한 제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너는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한 제자가 말합니다.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아이구나, 장하구나, 장해. 너는 도를 닦을 수 있겠다.”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명심, 아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목숨은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숨 한 번 들이켰다가 내쉬지 못하면 바로 죽음이고 내생입니다. 호흡 한 번 사이에 생사가 있고 이처럼 무상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잘 깨워주신 법문입니다. 무릇 도를 닦는 이는 들어오고 나오는 숨 사이에 목숨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호흡은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아니 생명 그 자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법문을 잘 들으시고 건강하고 행복을 누리면서 수행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이토록 중요한 것이 호흡이기에 그 옛날 인도 성자들은 호흡의 중요성을 깨닫고 호흡법을 해탈의 한 방법으로 삼아서 수행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처음 수행하실 때 인도의 정통 호흡법을 두루 익히셨다는 거래요. 그래서 깊은 선정에 들었을 때의 부처님의 1회 호흡이 한 시간 가량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함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입식(入息)과 출식(出息) 즉 숨을 들이키고 숨을 내쉬는 것을 수행함이 좋으리라. 그렇게 하면 몸은 피곤을 모르고, 눈도 질병을 모르고, 생각하는 대로 즐겁게 구할 수가 있고, 그릇된 환락에 물들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도 말씀하셨어요.

 

“입식(들이 쉬기), 출식(내 쉬기)을 수행하면 대과(大果) 즉 큰 인과와 큰 복을 얻으리라. 그리고 깊은 선정에 들어 자비의 마음을 얻고, 미혹을 끊고 정(定)에 들어가리라.”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호흡법을 중하게 여겼고, 호흡의 수행법을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호흡법을 해탈의 근본 수행법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흡법보다는 마음의 다스림을 수행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른 호흡을 들 것을 여러 경전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고요, 호흡을 집중해서 정정을 이루는 수식관을 익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화두선(話頭禪)에서는 호흡에 대해서 옛 선사들은 별로 강조하지를 않았습니다. 화두는 오직 참구하고 참구해서 진의가 돈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화두참구의 초보자나 안정이 잘 안 돼서 참구하기 어렵고 진정한 의정을 일으키지 못하는 참선자를 위해서 수식관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수식관이란 숨을 세어서, 숨을 헤아려서 집중하는, 즉 관하는 그런 방법입니다. 수식관 하는 방법은 먼저 입을 동그랗게 해서요 ‘후’ 소리를 냅니다. ‘후’ 소리를 내 보세요. 몸 안의 숨을 강하게 뱉어냅니다. 몸 안의 오래 된 숨을 다 뱉어내십시오.

둘째는 단전에 의식을 두고요. 


단전이란 배꼽 세치 아래 부위를 말하는데, 센티로는 3센티 내지 4센티 정도를 말합니다. 사람의 신체의 중심이 되는 곳이래요. 아랫배를 의학에서는 자율신경이 모여 있는 태양촌이라 합니다. 그곳은 혈액순환이 활발발하고요. 아주 활발발하답니다.

 

마치 “붉은 빛을 발하는 밭과 같다” 해서 단전(丹田)이라고 합니다. 그 단전은 선에서나 한의학에서는 아주 대단히 중시하는 곳입니다. 어떤 분은 “아주 불가사의한 곳이다” 그렇게도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단전은 인간의 중심과 육체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중심점이래요. ‘힘이 발현되는 발전소와 같다’ 그렇게도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서 힘이 막 솟는 곳입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단련하면 원기가 자연히 충실해서요, 아랫배가 표주박이나 공처럼 동그랗게 돼서, 대단한 힘이 생기고, 죽어서 화장을 하면요 다른 부위는 다 타는데, 심지어 뼈까지 타도 단전으로 단련된 살덩어리는 마지막가지 타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참 정신집중이 얼마나 대단하냐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단전에 의식을 두고요, 배꼽 및 세치 정도에 의식을 두고 속으로 ‘하나’ 하면서 그 숨을 아랫배까지 아주 깊게 하고요, 길게 하고, 아주 고르게 하고, 부드럽게 들이켭니다. 숨은 깊고 길고 고르고 부드럽게 들이켜야 됩니다. 이때 아랫배는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런 호흡을 단전호흡, 복식호흡, 또는 쉼호흡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여전히 단전에 의식을 두고요, 속으로 ‘둘’ 하면서 코로 숨을 내쉽니다. 이때 배는 등 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네 번째는 두번째와 같은 요령으로 ‘셋’하면서 숨을 아랫배까지 들이켭니다. 다섯 번째는 ‘셋’과 같은 요령으로 ‘넷’ 하면서 또 숨을 내쉽니다. 이렇게 열까지 또는 백까지 수를 세면서 호흡을 한 다음에 다시 열부터 하나까지 또는 백부터 구십아홉, 구십여덟, 구십일곱, 그렇게 역(逆, 거꾸로)으로 세어서 둘 하나까지 반복합니다. 아시겠죠? 집에 가서 그대로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수식관을 익힐 때 반드시 주의할 점은 단전을 의식하고요, 즉 단전에 마음을 둔다는 것이에요. 호흡의 수(數) 헤아리기만을 마음에 모아야 합니다. 즉 단전에 마음을 모으고요, 호흡의 수 헤아리기만에 마음을 모야야 돼요. 즉 집중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 수식관을 하고 있으면 갖가지 번뇌들이 그렇게 많이 떠올라와요. 뭐 이런 망상 저런 번뇌, 일상생활에서 경험했던 일이나 어릴 때 추억 같은 것, 뭐 별별 것들이 다 나타납니다. 그래서 수식관 수행을 할 때는 평소 때보다도 더 많은 번뇌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번뇌가 일어날 때는 ‘다섯’ 하고, 예를 들어서 숨을 들이켤 때 갑자기 번뇌가 일어나면, 번뇌를 없애려 하거나 번뇌를 쫓아가지 말고요, 그 번뇌에 관심도 두지 말고, ‘여섯’으로 넘어가지도 마십시오. 그럴 때는 다시 ‘하나’로 돌아와야 합니다. 다시 ‘하나’로 돌아가서 ‘둘’ ‘셋’ ‘넷’을 속으로 외우면서 수식관을 계속해야 합니다.

 

만약 ‘아홉’에서 또는 ‘아흔아홉’에서 번뇌가 일어났다 그럴 때라도요 다시 ‘하나’로 돌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는 까닭은 번뇌에 조금도 끄달리지 않고, 호흡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예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식관을 익히게 되면, 다음에 화두를 들 때도, 그대로 집중이 연장돼서 화두를 잘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단전에 좋아요.

 

흩어지지 않고 정기를 집중시키면 정신이 어지럽지 않고요, 아주 지극히 안정이 돼요. 뿐만 아니라 기운의 바다가 돼서, 즉 기운이 생겨서 만병을 녹여 삼키고요, 백가지 병, 예를 들어서 뭐 스트레스나 번뇌망상이나 출산 많이 한 여성들이 오기가 쉬운 병 같은 여러 가지 병이 물러나 양생(養生)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수식관은 어느 정도 하는 것이 좋은가?
한차례에 삼십분 또는 한 시간 정도 하면 좋아요. 화두참선 하시는 분들은 삼십분 정도 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집중력이 생겨서 화두하기가 좋을 만하면 바로 화두하십시오.

 

삼십분까지 않더라도 최소한 하나에서 열까지 한 차례는 집중이 될 때 화두선(話頭禪)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수식관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정도씩 하루 두 번 정도 하고요. 직장생활 하시는 사람이나 가정에서 번뇌망상이 많은 사람은 낮에 머리가 좀 무겁고 짜증스럽고 스트레스가 있을 때 한 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만 해도 좋습니다.

 

수식관은 숨을 한 번, 한 번 세면서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켜서 정신을 통일시키는 것이 바로 수식관이래요. 이 수식관을 하면 우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어요.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사건으로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운데, 그 불안한 마음, 괴로운 마음을 안정시켜서 편안하게 합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면 고요하고 고요해서 아주 맑아져요. 맑아지면 아주 오묘한,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즉 법열(法悅)을 느껴요. 그것을 ‘진정한 행복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행복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행복을 느낄 정도면 ‘뭐 어디가 아프다, 괴롭다, 슬프다, 어떤 비관적인 생각 같은 것’은 저절로 없어지고요, 즐거움만 느끼게 됩니다.

 

이 정도만 되면 주변이 뜻과 같이 변하고 수행공덕이 드러납니다. 그런 사람은 자연히 수명까지 길어지게 됩니다. 단전호흡이 제대로 되면 호흡이 아주 깊어지고 숨이 아랫배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요. 즉 호흡이 길어지고 긴 사람은 몇 분까지 보통 됩니다. 아주 고르게 돼요. 부드럽게 되고요. 숨을 깊게 길게 고르게 아주 부드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요.

 

마음만 편하냐? 몸도 편안해요. 그렇게 길드니 심장도 자연적으로 좋아지고 그러니 오래 사시게 됩니다. 편안하고 건강하게 수행까지도 하면서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수식관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수식관은 화두가 잘 되는 분은 하지 마십시오. 화두가 안 되는 참선자나 번뇌망상이 많은 사람은 화두 들기 이전 예비단계로요, 즉 (수식관을) 준비단계로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화두를 아무리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이나(사실 아무리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없지요) 참 잘 안 되는 사람이나, 어서 빨리 체험을 해서 어떻게라도 좀 맛보고 싶은 그런 사람은 한번 해 보세요. 화두가 안 되는 사람도 화두참구의 요령으로서, 즉 화두의 삼요소를 갖춰서 호흡법으로 안정을 시켜서 지혜롭게 하면 잘 될 것입니다.

 

화두가 안 되는 사람은 지혜롭게, 아주 지혜롭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 되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잘 점검하고 반성해 보십시오. 화두가 안 되는 사람은 화두가 안 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철저히 규명하고 분명하게 고쳐나가야 합니다.

 

참선자는 자기를 잘 알아야 돼요. 장점이 무엇이고 단점이 무엇인지, 시정하고 보완할 점을 무엇인지 엄격하게 가려내야 합니다. 그래서 잘하는 점이나 좋은 점은 더욱 잘하고 더욱 좋게 하고, 잘못하는 점이나 단점은 꼭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공부가 매일 달라지고 매일 진취가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려면 지혜롭게, 아주 지혜롭게 공부하셔야 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서나 또 직장에서도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혜, 지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의 말씀에 “지혜로운 공부는 정미작반이요, 어리석은 공부는 정사작반이다.” 했습니다. ‘정미작반’이란 쌀을 놓고 밥을 짓는다는 말이고, ‘정사작반’이란 모래를 놓고 밥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솥에 쌀을 놓고 적당히 불을 지피면 아주 고슬고슬하게 맛좋은 밥이 될 텐데, 쌀 대신 모래를 넣으면 애써 불을 지핀들 어떻게 밥이 되겠어요. 모름지기 공부는 정미작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정사작반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는 아주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이루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룬다. 지자(智者)가 배우면 보리(깨닮음)를 이루고, 우자(愚者)가 배우면 생사(生死)를 이룬다.’ 하셨습니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듯이, 같은 배움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될 수 있지만 어리석은 공부는 생사윤회의 고통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道)의 문을 두드리지만 이루는 자는 드물고 생사언덕에서 괴로워하는 자가 많은 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선자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합니다. 화두참선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공부인은 지혜롭지 못하면 늘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해야 됩니다.

유명한 마조(馬祖) 도일(道一)선사(709-788)가, 흔히 마조도일 선사 얘기를 할 때는 ‘천하의 마조다.’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원체 대단한 스님입니다. 조사선(祖師禪)을 확립한 분이시고요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요, 마음이 곧 부처라.”는 그런 유명한 법문을 하신 분입니다.

 

그 마조도일선사도요 전법원(傳法院)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입니다.


스승인 남악 회양(南嶽 懷讓, 677-744)선사가 보니 늘 공부하는 모습이 장차 큰 도를 이룰 그릇이나 공부하는 모습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어요.


하루는 마조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참선을 해서 무얼 하고자 하느냐?”
“장차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다음날 회양선사는 벽돌을 한 개 가져와서 마조 앞에서 덜덜 갈아댔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벽돌을 갑니까?” “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좌선만 해서 부처가 된다는 사람도 있는데 어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못 만들겠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이 수레에 짐을 싣고 가는데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으냐?
 소를 때리는 것이 옳으냐? 그대는 좌선수행을 하는가, 좌불을 배우는가? 만약 좌선수행을 한다면 선은 좌와(坐臥)에 있지 않은 것이고,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없네.


무주법(無住法)에서, 주(住)하는 법이 없는 법에서 취하고 버리되 차별심을 일으키지 말라. 그대가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일이오, 만약 좌선하는 모양에 집착한다면 불법의 참된 이치를 깨닫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선사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제호(마치 우유를 정제해서 만든)를 마시는 것과 같았다.” 즉 깨쳤다는 거래요.

이 공부는 소를 때리는 아주 지혜로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은 선사의 말씀처럼 좌와에 있지 않고, 앉고 눕는 데도 있지 않고,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부처를 죽이는 일이요, 모양에 집착하면 불법의 참된 이치를 꿈에도 볼 수 없습니다.

 

손자병법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한다.’ 백번 싸워서 백번 다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은 전술의 기본 전략입니다. 참선자가 역시 자기를 알고 화두를 이해해야 간절한 정진을 할 수가 있고, 그래야 진의가 돈발해서 선정에 들기 쉽습니다. 자기는 자신을 잘 알 것 같지만 참선하는 사람까지도, 즉 마음공부하는 사람까지도 의외로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참선자로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자기의 근기와 참구자로서의 자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고 적당하게 참구해서 최상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화두는 지혜롭게, 아주 묘하게 참구해야 합니다. 화두에 의정을 일으키되 강하게도 말며, 약하지도 않으며, 급히 들어서도 안 되고, 느리게 해서도 안 됩니다. 의정은 적당하고 알맞게 일으키되 분명하게 일으켜야 합니다.

 

화두를 급히 강하게 들고 의정을 거칠게 일으키면 마음이 불안하고 들뜨며 동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러면 정신집중도 안 되고 진실한 의정을 일으키기가 어렵고요, 그런 사람은 육단심이 동해서 혈기가 고르지 못하고요, 갖가지 병을 유발시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화두를 약하게 들고 느리게 의정을 일으키면 정신이 해이하고 망상이 들어오고 산만하기 쉽고 혼침(졸음)에 빠지기 쉬우며 분명하게 들기가 어렵습니다. 화두는 적당하게 알맞게 들어야 합니다. 화두참구는 ‘적당하게, 알맞게’ 라는 말이 아주 긴요합니다. ‘적당하게 알맞게’ 라는 말에 온갖 지혜가 함축돼 있습니다.

 

참선자는 남자냐, 여자냐, 노인이냐, 젊은이냐, 건강한 사람이냐, 병약자냐, 발심자냐, 비발심자냐에 따라서 알맞게 참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선자가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이나 힘이 세고 남성적인 사람은 약한 듯 분명하게 화두를 지어가고요. 이런 사람은 약한 듯 들어도 대체적으로 강하게 듭니다. 약한 듯 들어야 상기기운이 오르는 것, 즉 열이 오르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기력이 약한 노인이나 나약한 여성은 강하게 남성적으로 의정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며, 그래야 의정이 강하게 크게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은 기력이 원체 약하기 때문에 어떤 분은 화두만 해도 아주 매가리 없이 그래 드는 분이 있어요. 그러면 의정이 일어나기도 어렵고 진취도 별로 없습니다.

 

병든 사람은 중병에 든 사람일수록 의심을 맹렬하게 하고 끈질기게 일으키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런 의지여야 병마를 이겨낼 수 있고, 죽음이 가까운 사람은 죽음까지도 멀리할 수가 있습니다. 성질이 급한 다혈질인 사람은 약간 느리고 고집스럽게 들어가고요.

 

앞에서도 화두는 급히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일수록 끈질기고 아주 고집스럽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화두는 끈질기게 아주 고집스럽게 들어가야 합니다. 느리고 박력이 없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용맹스럽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고요. 그런 사람은 성격을 좀 보완할 수 있도록 참구하셔야 됩니다. 이렇게 참구해야 부족한 것을 잘 보완해서 원만한 인격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하근기고 발심 못한 사람이나 망상이 많은 사람은 큰 분심을 내서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성심성의껏 아주 간절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어려운 사람은 단전호흡에 의지해서 해 보십시오. 호흡에 의지하면 호흡은 안 할 수가 없으니 호흡 때마다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때로는 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해태심이 나면서 공부가 짜증스럽고 아주 괴로울 때는 행선 위주로 하다가 좌선을 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합니다. 야외나 주변이 산만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약간 소리 내서 힘차게 들어가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주위환경이나 자신을 알아서 적당하게 아주 알맞게 그렇게 들어가야 됩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수목나(소냐)존자라는 분이 있었어요. 그는 거부장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찌나 귀하게 컸던지 땅을 밟은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발바닥에 털이 날 정도였다는 거예요. 그의 아버지는 수목나가 철이 들자마자 부처님을 친견해서 법문을 듣게 해야겠다 생각합니다. 그는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운하를 파고 배를 띄워서 아들을 보냅니다.

 

수목나는 어렸지만 선근이 아주 장한 사람이라 부처님의 법문을 듣자마자 출가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한 반대로 출가까지는 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몇 년 간 아버지를 백방으로 설득해서 드디어 승려가 됩니다. 그런 수목나는 세상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생각해서 열심히 정진했어요. 그 곱던 발바닥이 터져서 피가 나고요, 피골이 상접해서 쓰러질 정도로 애쓰면서 공부했다고 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큰 진전이 없었어요. 크게 실망한 수목나는 공부를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나는 돈과는 인연이 많지만 도(道)와는 인연이 적은가 보다.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서 그 많던 재산으로 스님들을 위해서 길을 닦고 집을 지으며 많은 공양을 올리는 것이 좋으리라.”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수목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수목나야, 넌 세간에 있을 때 무엇을 가장 즐겼느냐?”
“거문고 타기를 즐겼습니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게 되느냐?”
“끊어지기가 쉽습니다.”
“거문고 줄이 너무 느슨하면 어떻게 되느냐?”
“고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수목나야, 공부도 이와 마찬가지다. 너처럼 억지로 애를 쓰면 정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발바닥이 터지고 몸만 피로해져서 생각이 더할 뿐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는 것과 같이 하되 너무 긴밀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 되느니라. 모든 신묘한 법이 그 가운데에 있으니 잘 명심하여라.”

 

 수목나는 이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아서 자기 몸과 마음에 맞게 공부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합니다.

 

화두참구는 부처님 말씀처럼 거문고 줄을 타듯이 아주 지혜롭게 해야 됩니다. 거문고에서 고운 소리가 나게 하려면 거문고 줄을 지나치게 조여도 안 되고요, 너무 늘어지게 하지도 말고요, 적당히 맞추어야 합니다. 뜯는 것도 아주 알맞게 해야 묘음이 납니다. 참선자는 적당히와 알맞게 라는 말에 유념해서 지혜롭게 들어가야 됩니다.

 

한 스님의 말씀을 드리기가 조금 어렵습니다마는 ‘대지’라는 수좌가 있었어요. 지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안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조그만 방갈로에서 귀승귀속으로 살면서 조국의 하늘 쪽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한 7년 전쯤 미국에 갔다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다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어요. 당시 승용차에는 4명이 동승했는데 3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거래요.

 

그래서 주변에서는 천명이다, 순전히 부처님의 가피다, 라고 하면서 스님이 안됐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한답니다. 다행히 죽음은 면했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고, 얼굴은 3도 화상으로 아주 흉측하게 보인다고 해요. 거의 외출도 안 하는 편이라고요. 그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수행을 잘못해서 받은 과보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합니다.

 

사고 전에는 얼굴도 미남형이고 키도 크고 몸도 건장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도 잘했고요. 집안도 고향에서는 제법 이름난 가문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절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한 것이 인연이 돼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근이 있어서인지 사미계를 받고 바로 선원에 입방했어요. 그때는 한창의 나이라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만만할 때라 이 공부를 몇 철이면 해 마칠 것 같았는 거래요.

 

처음에는 발심하고 기세가 등등해서 화두도 상당히 되는 듯했다는 거래요. 그러나 3년이 지나도 크게 진전이 없었는 거래요.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았다는 거래요. 그는 대단히 실망하고 막 화가 나서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화두가 안 되는 허물이 자신에게 있는 줄 모르고 막 화두만 나무라고 화두에서 문제점을 찾았다는 거래요.

 

심지어 화두법문을 한 옛 선사까지 나무랄 정도가 되었는 거래요. 그러니 마음은 항상 불만이 가득하고 얼굴은 잔뜩 찌푸리고 괴로운 모습으로 수행자답지 않게 상기증세로 불그스레하여 안타깝게 보였답니다. 그러니 사는 기분도 못 느끼고 하루가 삼추(三秋) 같아서 괴롭기만 했습니다. 입산할 때는 의기가 대단해서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가깝게 보였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급전직하했어요. 그러니 충천하던 희망과 포부는 어디로 가고 이젠 신세타령까지 하는 그런 못난 중님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 세속의 부모형제들은 어서 환속해서 장가도 가고 입신출세를 하라고 하면서 종용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나 체면상, 그 오기가 허락하지 않았는 거래요. 그렇게 몇 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자신이 아주 초라하게 느껴졌고요. 스스로도 한심스럽다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간혹 죽고 싶다는 그런 생각가까지도 했다는 거래요.

 

어느덧 입산한 지 10년이 되는 여름 어느 해제철이었는 거래요. 문득 미국여행을 하고 싶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후에 미국에 이민 가서 사는 누님의 집으로 도망치듯이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미국 관광을 거의 한달 가량이나 했다고 해요. 마지막 코스로 조카들을 위해서 태평양 연안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변을 당했다는 거래요. 사고 현장에서는 그도 전혀 의식이 없었는 거래요.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5일이 지난 뒤였는 거래요. 의식이 돌아오니 온몸이 서서히 아파오더랍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얼굴에 화상을 입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는 거래요. 일주일 만에 자신의 피해상황을 알게 됐어요. 조카 두명과 보살 한명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앞이 캄캄해지더라는 거래요. 붕대를 감은 얼굴조차 들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때 문득 어디에서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서 엉엉 울었다는 거래요. 어찌나 큰 소리로 울었던지 담당의사와 간호원이 달려오더랍니다.

 

얼마를 울다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고 생각했다는 거래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일이 뭐냐? 그야말로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린 내가 할 것이라고는 화두뿐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생각하니까 문득 습관적으로 늘 하던 화두가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죽자사자 막 화두만 들었는 거래요. 오직 화두, 화두, 화두, 막 미친 듯이 화두만 들었는 거래요. 그래 드니까 불과 몇 분 만에 진의가 돈발하더니 아주 성성하게 되는 거래요.

 

그렇게 안 되던 화두가, 20년 간이나 미적지근하게 안 되던 화두가, 막 가슴이 답답하니 막 목이 콱 막혀서 들리더라는 거예요. 그는 간호원이 와서 치료를 하든 말든 간병인이 드나들든 말든, 심지어 음식도 일체 안 먹고요, 며칠간 오줌도 그냥 쌌다는 거예요. 그냥 미친 듯이, 미친 듯이 오직 막 화두, 화두만 들었다는 거래요. 그렇게 안 되던 화두가 이내 선정에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더라는 거예요. 며칠 만에 의사와 간호원이 어찌나 음식을 먹으라고 종용하는 바람에 깨서 음식을 받고 또 선정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한 열흘쯤 지났을까? 자신을 점검하고 반성하게 됐다는 거래요. 반성해 보니까 지난 8년간이, 수행한답시고 선원과 토굴을 오간 그 8년간이 오히려 악업만 지은 것 같다는 거래요. 자신이 참으로 바보였고 우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 거래요. 이 공부하기에는 똑똑한 편인 줄 알았는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처럼 느껴지더라는 거예요. 자신을 자세하게 점검하니까 발심도 진정으로 못한데다가 신심도 돈독하지 못했고요, 정진도 하는 것처럼 상만 피웠지 참으로 애쓰지 못했는 거래요. 좌복 위에 앉으면 예사롭게 졸기도 하고, 심지어 습관적으로 졸기를 했어요.

 

수행에서는 망상이 금물이거든요. 의식적으로 망상을 피우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계획적으로 번뇌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음식타령도 하고, 방선(放禪) 시간에는 차를 즐기고요. 후식 들식을 해야 직성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도반들과 어울려서 온갖 잡담도 하고요.

 

포행 한답시고 다니면서 세속 일에 열을 올리고 관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해제가 되면 해제비도 상당히 지급이 되니까, 해제비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심지어 금전에 욕심까지 내는 못난 스님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해제하면 몇몇 스님과 짝을 지어서 이절 저절 다니며 만행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신도 공양을 받고 산철 공양을 즐기면서 젊음을 달래기도 했는 거래요. 그냥 보통 평범하게 예사롭게 그럭저럭 살았는 거래요.

 

그는 그런 지난 10년 동안의 승려생활은 완전히 허송과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는 거래요. 그런 수행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류하던 부모형제를 두고 입산출가했다니 자신이 너무나 측은하고 가엾게 느껴졌는 거래요. 걸핏하면 공부중의 공부, 최상의 공부를 한다는 요란을 떨고 소란을 피웠지만 엄격하게 말해서 망상만 피웠어요. 그런 정도로 될 공부가 아니었어요. 그렇게 하는 공부는 10년이 아니라 평생을 해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것은 도(道)도 아니고 선(禪)도 아니며 수행도 아니었어요. 한철, 한철 공부한다고 전국을 다녔지만 이름이 결제지 결제다운 결제는 못 되었어요. 더 엄격하게 말해서 옷은 승복을 입었지만 스님도 못 되었고 수행자도 아니었어요. 이 공부는 예사롭게 졸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존다든가 의식적으로 망상을 피우는 그런 정신상태로는 공부한다 수행한다는 생각을 말아야 돼요. 먹는 데 관심을 가지고 차를 즐기고 잡담을 하고 세상일에 왈가왈부하는 그런 참선자는 수좌라 할 수가 없어요. 더구나 해제비에 신경쓰고, 돈을 알고, 산천구경이나 즐긴다면 그런 출가는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공부인은 기본자세나 사상이 분명하게 확립돼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무엇을 하고 싶은 욕망도 쉬고요, 쉰다는 생각도 쉬어서, 완전히 백지상태로 돌아가, 철저히 무로 돌아가야 돼요. 그래서 마음은 고요하고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화두만 분명하게 간절하게 들어가야 돼요.

 

화두참구는 미적지근하게, 흐리멍텅하게, 흉내 내듯이 해서는 절대 안 되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해야 돼요. 아주 지혜롭게 성심성의껏 의정을 일으켜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해요. 그는 자기 점검이 끝나니까 눈물이 비 오듯 하는 거예요. 자기의 과거가 너무 후회스러웠는 거래요. 가까운 데 법당이 있으면 기어서라도, 전신을 태워서라도 참회하고 부처님을 껴안고 엉엉 울고 싶은 그런 마음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지스님 이야기는 보통 살아가는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에게 사실 좋은 경책이 되고 있습니다. 이 공부는 공부가 될 수 있도록 아주 지혜롭게 해서, 정말 후회 없는 그런 인생이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이 공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공부가 아니래요. 반드시 해야 되고 꼭 해야 되는 공부가 바로 이 공부래요.

 

이 공부는 참선자의 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일입니다. 그런 중요한 일을 어찌 한 번인들 지혜롭지 못해서 일생을 그르치고 세세생생 한스러움을 남길 수가 있겠습니까? 대지스님은 자기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래요. 그는 그제서야 지혜롭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한탄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혜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법명까지도 대지 ‘큰 대(大)’자, ‘지혜 지(智)’자 ‘대지(大智)’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삼국지의 등장인물 중에서 위나라 ‘조조’라는 분이 있었어요. 조조는 젊을 때 아주 유명한, 아주 고명한 관상쟁이를 찾았다는 거래요. 그런데 관상쟁이는 조조를 보더니 완전히 바보로 취급할 뿐 변변한 대답조차 해 주지 않는 거래요. 그러니 조조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꾹 참고는 말합니다.

 

“선생, 연못의 물고기는 보았어도 대양의 고래는 보지 못한 것 같군요.”라고 비아냥거렸다는 거래요. 그러니 그 관상쟁이는 대노(大怒)해서 “무슨 소리인가? 치세의 능신, 세상을 다스리는 능신, 난세의 간웅에 지나지 않아 당신은!”라고 소리치더라는 거래요.

그 말을 듣자 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라고? 고맙소.”라고 하면서 만족해하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조조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크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던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20년 후에 춘추전국시대 그 쟁난의 시기에 여러 나라를 섬기고 배반하기를 일삼게 됩니다.

 

조조는 간웅의 본성을 드러내서, 간사한 영웅의 본성을 드러내서 후한의 조정을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만들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때는 건한 3년 초여름인데, 조조는 대군을 거느리고 ‘남양’, 요즘으로 말하면 ‘하남성’에 속할 거래요. 그 하남성에서 준동하는 장수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다는 거래요. 장수를 토벌하려고 나갔었어요. 도중에 하남의 한 산맥에 이르렀을 때인데, 험중한 산길에 찌는 듯한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려서 초목은 먼지를 쓰고 있고 자갈길은 뜨겁게 달궈져서 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 거래요. 그래 “물! 물! 목이 마르다!” 병사들은 타는 듯한 갈증에 퍽퍽 쓰러지는 거래요. 이것을 본 조조는 말위에서 채찍을 막 휘두르면서 외칩니다.

 

“조금만 더 참아라! 이 산만 넘으면 매림이 있다. 매화숲이 있다. 그곳에 가서 마음껏 매실을 먹자.” 했다는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무의식중에 새콤한 맛을 상상해서는 입안에 침이 고여서 갈증을 잊어버렸다는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

 

과연 일대의 간웅 조조의 기지, 그 지혜는 인간의 마음의 기묘함을 꿰뚫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가 조조로 하여금 영웅 노릇을 하게 해서 2천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불교의 중흥조인신 경허선사(1849~1912)께서 서산 천장암에 계실 때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제자인 만공스님(1871~1946)과 함께 탁발을 갔다오는데 그때만 해도 아주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이라 사찰경제 또한 먹고 살기가 어려웠어요. 동냥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동냥이 잘 돼서 크게 한 자루 하게 되었어요.

 

당시 만공스님은 20대 초반이라 힘이 아주 장사였다고 해요. 그런 한창의 나이지만 동냥자루를 하루 종일 메고 다니니 대단히 무거웠는 거래요. 그런데도 경허스님께서는 큰 다리로 성큼성큼 앞에 가니까 따라가기가 어려웠는 거래요. 그래서 천천히 쉬어가자고 종용을 합니다.

 

경허스님이 생각하니까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요, 발걸음을 더 빨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떤 마을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문득 경허선사가 기지를 발휘했어요. 마침 어떤 젊은 아낙네가 물길은 물동이를 이고 가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수십 명이 모여 있었어요. 갑자기 경허선사가 젊은 여인을 껴안으면서 입을 쪽 맞추고 말았어요.

 

이를 본 마을사람들은 저 중님을 죽이라고 하면서 막 따라옵니다. 경허선사는 줄행랑을 놓았어요. 뒤에서 무겁다고 잔뜩 찌푸리고 따라오던 만공스님도 걸음아 날 살려라 마구 죽자 사자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는 거래요. 만공스님은 그렇게 무겁던 탁발자루의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고요, 오직 도망 도망 도망치고 말았는 거래요. 얼마를 달리고 나서 마을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보이지 않게 된 뒤 경허선사께서 멈추더니 “어떠냐? 가볍지?” 했다는 거래요.

 

그러니 만공스님이 “스님께서는 정말 큰스님이십니다.” 했다는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 순간의 지혜가 몇 십리를 아주 가볍게 뛰어서 무거운 줄 모르고 도착하게 됐다고 해요. 이것이 지혜입니다.

 

여기 신남신녀 여러분! 세속에서 잘 사시겠지만 혹여나 “스스로 잘 못살았다, 실패한 인생이다” 라는 지난날의 후회스러움이 있는 사람이 있거든 지혜롭지 못했던 것을 점검하고 반성해서 참회하고 지혜로우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대지선사처럼 그렇게 안 되던 화두가 선정에 들게 하고, 조조가 일생을 풍미해서 이 세상을 움직이듯이 지혜를 짜내시기 바랍니다.

 

대우그룹의 전 회장이신 김우중씨가 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에 보니까 그분은 한창 돈벌고 다니실 때 어디 다니든 꼭 돈이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어디 가서 좀 쉽게 빨리 효과적으로 많이 벌 수 있는가?’ 그것만 생각했다고 해요. 지혜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늘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지혜를 계발하면 사물과 인간에 남다른 눈이 뜨입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얼굴을 안 봐도 음성만 들어도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뒷모습만 보고 지나가는 걸음걸이만 보아도 점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보통 지혜는 닦아서 얻을 수 있지만 큰 지혜, 근본 지혜는 깨쳐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근본 지혜는 밝기가 천 개의 해가 뜬 것과 같다.” 라는 조사스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밝고 밝은 것이 바로 근본 지혜라는 거래요. 그런 지혜는 천지를 움직이고요, 번갯불 속에서 바늘귀도 꿸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여러분도 다 갖추고 있다는 거래요. 부처님과 같은 그런 지혜는 누구나 다 갖추고 있어서, 아니 “본래는 부처다, 본바탕은 부처님과 꼭 같다”는 그런 말씀을 부처님은 하셨습니다.

 

어쨌든 여러분께서 늘 그런 근본 지혜를 닦으시려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공부는, 또 살아가는 것은 아주 지혜로워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지혜입니다.

 

깨달음은 잠깐 사이에 있거늘
수행을 모르고 지혜를 닦는 것은
무명만 더할 뿐입니다.
지혜 없는 공부는 수고로울 뿐
아무 이익이 없이
세월만 보내고
생사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지혜롭게 사시고 아주 지혜롭게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화두참구법 제5강- 화두참구는 지혜롭게 해야(2007년 5월 법문) (무여스님과 함께하는 화두공부) |작성자 서암합장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