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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6-29 14:36 조회4,520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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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을 생활화 합시다>

  오늘 법문은 ‘선수행을 생활화 합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꼭 100여년전 1908년도에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인도 출신의 유명한 시인인 타고르가 영국의 로얄 아카데미에서 영국의 귀족들과 지식인을 상대로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강연의 내용이 영국 사람들이 들을 때는 너무 획기적이고 감동적이라서‘The Times’라는 신문에 보도 되기를 듣는 이들이 자기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지가 1,600여년 되었기에 불교인이든 비불교인이든 우리들의 생활이나 문화속에 불교적인 요소가 면면히 흘러와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선수행을 해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바로 느끼실 것입니다.

  선수행이 잘 되는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면 화두가 들려있습니다. 화두가 들려있다는 것은 자면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두가 자면서도 들려있는 상태가 되면, 정신은 아주 맑고 몸은 가벼우며 기분이 좋습니다. 걸음마저도 사뿐사뿐하여 어떤 때는 몸이 날아갈둣 가벼우며 자기를 억제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침식사 하기를 싫어해서 굶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할 정도가 되면 배고픈 줄 모르고 앉아 있다가도 막상 공양을 하게되면 꿀맛 같을 때가 많습니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출근을 하거나 등교할 때도 발걸음도 가볍게 하고, 근무도 기분좋게 집중해서 할 수있습니다. 그렇게 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로도 없이 장시간을 근무할 수도 있고, 공부 할 수도 있습니다.
  주부나 항상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곳이 보잘 것 없는 좁은 공간에서 늘 하는 청소나 빨래 또는 음식준비를 하면서도 싫다 괴롭다는 생각없이 즐겁게 기분좋게 하게 됩니다. 그런 수행자라면 하루종일 하면서도 별로 피로한 줄 모르고, 집안에 갇혀있듯이 있어도 외출하고픈 생각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할 일을 마치고 앉으면 몇시간이 잠깐 지나가는 것 같으며, 정진하는 곳이 절인지 집인지 모를 정도로 시공,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은 예사스런 일이 됩니다.
  하루의 일과을 하기 싫어 괴로워하며 사는 사람과 기분좋게 안정되게 사는 사람과는 사실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수행의 공덕입니다.

  부처님께서 깨치고 나서 제1성이,‘아! 기특하구나, 일체 중생이 부처님과 꼭 같은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네’라고 하셨습니다.
아, 신기하고 특별하구나, 깨치고 보니까 지금까지 느끼고 보지 못했던 일체 중생, 사람은 물론 개나 소나 돼지 같은 동물에서부터 꼬물거리는 생명체까지 모든 생명체는 부처님과 같은 초롱초롱한 지혜 천재성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위대한 발견이고 역사적인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대단한 천재입니다. 경전을 읽어보면 이런 천재도 있을까 싶은 천재중의 천재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런 천재성을 여러분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덕상(德相),후덕스러운 모습 또는 복스러운 모습 즉 32상 80종호를 말합니다. 부처님만이 갖춘 서른 두가지의 특별한 모습과 여든 가지의 좋은 점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모습이란 바로 보통 인간들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영원한 인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다는 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뒤에 법화경에서는 불성을 갖추었다’고 하다가‘본래성불론’(本來成佛論)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러분도 본바탕은 부처님과 꼭 같고 본래는 부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금생에는 업이 두터워 부처님처럼 외형을 갖추지 못하였고, 능력도 인격도 부족한 보통 사람이지만 근본 바탕, 본래 면목은 부처님과 꼭 같은 본래는 부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도‘나도 선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나도 부처님과 같이 깨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선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란 무엇(누구)인가?
‘염불하는 것이 뭣꼬? (이뭣꼬?)’

  화두참구의 요령은 간절하게 성심성의껏 한결같이 끊임없이 하는 것입니다.
  간절하게란, 절실하게 성심성의껏 하는 것입니다.
  절실하게란,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반드시 해야될 것처럼, 안할 수 없는 것처럼 매우 긴요하고 다급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화두참구야 말로 가장 절실하고 긴급한 것입니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졌듯이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간절함입니다.  화두공부는 성심성의껏 해야합니다. 최선을 다하듯이, 자  기의 모든 것을 바치듯이 오직 그것뿐이듯이 해야 합니다. 또한 화두는 한결같이, 끊임이 없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절실해서 온갖 성심성의껏, 한결같이 해야 하는 것이 화두참구의 요령입니다.

  신남신녀 여러분 중에서 참선하시는 분은 아침 저녁에는 시간을 정해놓고 정시에 하십시오,
  아침 : 30분 또는 1시간 정도
  저녁 : 1시간 또는 2시간 정도
  정진 마지막은 반드시 축원을 하시기 바랍니다.
  낮에는 수시로 장소에 관계없이 하십시요.
  참선자는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부처님께 예불을 모십시요.
  예불은 정성껏 모십시요. 좌복을 펴고 앉되 부처님을 향해서 앉으십시오. 약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분좋게 화두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앉습니다.
  혹 화두가 잘 안되는 사람이라도 화두가 안된다, 어렵다 또는 괴롭다는 생각을 마시고 자신감을 가지고 앉으십시오. 자신감을 가지고 앉으면 화두에 의심이 약해도 강한 것 처럼 느껴지고,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다소 불편해도 거의 괴로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화두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화두참구는 정성껏 지극하게 앉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간가는줄 모르고 화두에 전념하며 빠지기 쉽습니다.
  화두는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화두공부가 잘 안되거나 나태한 생각이 드는 사람은. ‘나란 누구(무엇)인가?’ 따지듯이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잘못이 많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은 ‘나는 어떤 인간이기에 이 모양 이 꼴인가? 막 밀어부치기라도 하듯이, 코너에 꼼짝못하게 해놓고 펀치를 날리듯이 참구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대단하게 지독하게 하면 의정이 강해져서 이내 의심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새벽에 참구를 하되 화두에 진의가 나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에도 성성하게 들리는 그런 정도는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경계는 돼야 직장인은 직장일을 하면서도 화두를 할 수 있고, 가정주부는 늘 하는 가사일을 하면서도 수행을 할 수 있으며, 학생은 강의를 듣고 자기 공부를 하면서도 수행이 되게 할 수 있고, 전문 직업인은 사고를 하고 글을 쓰면서도 마음을 닦아 갈 수 있습니다.
  보통 수행인으로도 일하면서나 공부하면서도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두선의 장점이란 바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을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정에 일여한 상태 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한결같이 조금도 변함이 없이 들리는 상태가 되면 거친 망상은 사라지고 마음은 상당히 고요하고 몸은 편안합니다. 이 시절은 어디에 가나 오나 안정이 됩니다. 옆집에서 불이 났다고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안정이 지속됩니다.
  이렇게 안정이 되면 마음은 맑고 몸은 아주 가볍습니다.
그렇게 맑고 가벼우면 묘한 즐거움까지 느낍니다.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 기쁘다고 할 수도 있고 즐겁다고 할 수 있는 아주 묘한 즐거움입니다. 그런 즐거움까지만 느껴도, 즉 마음은 아주 편안하고 즐거움까지 느끼면 사실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바라느냐 할 정도로 만족함을 느끼고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이런 정도만 되면, 누구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화를 내고 하는 그런 괴로운 상태는 다 벗어납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를 고통의 바다라고 하셨지만 괴로움은 사라지고 즐거움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참선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선적인 삶을 살면서 노력해야 더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집중해서 사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집중해서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집중이란 힘과 마음을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능력이 없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나 지혜가 부족하다고 괴로워하는 사람일수록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사회가 복잡다단하고 각종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라 불안하고 괴로워 살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생각도 가급적 단순화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이 많고 다양하면 그 자체가 괴로움이 됩니다.
취미나 기호도 한 두 가지로 압축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취미나 기호를 가지면 경쟁사회에서 남보다 뒤쳐지기 쉽습니다. 직업도 가급적 한 가지에 집중해야 남보다 앞서가고 살아가기가 편리합니다. 일에도 화두참구하여 정신을 집중하듯이 해야 능률이 오릅니다.

  한 25,6년 전입니다. 해인사 퇴설당 선원에 있을 때인데 일본의 프로 바둑기사 13명이 해인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 출신 조치훈이라는 기사도 왔습니다. 유명한 성철 큰스님이 살아계셨을 땐데 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라고 해서 법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을 아느냐 물었더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13명 중 12명이 선에 대하여 상당히 체험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시합하기전 20~30분 또는 1시간정도 좌선을 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맑게 해서 대국을 한다고 했습니다. 프로 기사들에게 선수행은 필수적이고 상당한 효과를 받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참선자가 어떤 직업을 가졌던 일하기 전에 선을 해서 마음을 맑게하고 시작하는 것은 아주 현명한 일입니다. 마음을 맑게 한다는 것은 기분을 좋게해서 학생이면 공부를 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내게 해서 수업을 시작하고, 근로자 같으면 일을 잘 하고 열심히 해서 생산성을 높이고야 말겠다는 염원을 세우면서 일터로 향하고, 공무원이라면 이 한 몸 바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고야 말겠다는 애국심으로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일본에서는 40여년전 1970년대에 이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학교에서는 첫 수업 시작 전에, 공장에서는 일하기 직전에, 관공서에서도 근무하기 전에 반드시 10분에서 30분 정도 명상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런 선풍이 전 일본열도를 후끈거리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작하게 된 동기가 동경올림픽 이후 점점 커가는 국력에 맞는 세계적인 인물을 양성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 목표가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내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한때 우수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 나라에서도  신경을 썼다는 것입닏나. 작년에 일본인이 3명이나 노벨상을 받았는데 70년대 선풍이 이제야 효과를 본다고 일본이 흥분했다고 합니다.
  여기 계시는 분 중에서 언론 불자님을 비롯하여 교수님, 공무원, 직장인이 많을텐데, 학교나 직장에서 명상시간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근무를 해보면 좋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실 것입니다. 이런 선풍이 우리 한국에도 꼭 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이 선을 통하여 정신을 집중해서 마음을 맑게 하는 것입니다.
  흔히 보통사람을 무명중생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어둡고 탁한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둡고 탁하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하는 일마다 잘 안되서 괴롭습니다. 마음을 화두에 집중하여 번뇌망상이 사라지면 어두운 마음이 서서히 걷혀서 맑고 깨끗해 집니다. 더 집중하여 미세망념까지도 사라지면 마음이 더 맑아지고 깨끗해집니다. 그러면 근본 자성, 본마음이 서서히 개발됩니다.
  이렇게 집중하여 맑아지는 것을 머리가 좋아진다, 지혜가 개발된다고 합니다. 학문으로 얻은 지혜는 배운 것 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선수행으로 얻은 지혜는 한량 없습니다. 선수행으로 얻은 지혜는 태양에 비유하고 학문으로 얻은 지혜는 반딧불에 비유합니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좋아지고 지혜가 개발됩니다.
  집중하면 일에 능률도 올릴 수 있습니다. 화두하듯이 맑은 정신으로 힘까지 집중하여 일에 빠지면 생산성은 오르고 능률은 배가 될 것입니다.
  요즘은 학문하는 사람이나 프로 기사 뿐만 아니라 직장인, 군인, 스포츠맨, 웰빙(행복한 삶, 만족한 생활)이나 웰 다잉(안락한 죽음, 품위있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필수라고 합니다. 선에서는 선수행을 하지 않으면 반쪽 인생도 못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반드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미래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일수록,
  진정으로 행복하고픈 사람일수록,
몸과 마음을 집중하고 집중해서 일하고 공부하십시오. 집중해야 정신이 개발되고 능력자가 되고 큰 인물이 돼서 천하도 움직이고 만물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둘째는 주인의식을 가지십시오.
  깨달음을 얻어 밝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면, 모양이 있는 것이든 모양이 없는 것이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춤추는 짐승들의 모습, 새들의 노래소리, 흐르는 시냇물소리 조차도 자기 아닌 것이 없습니다.
  밝은 혜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자기요, 부처요, 불법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밥먹고 청소하고 늘 하는 대소변 보는 것 까지도 조사의 뜻 아닌 것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하나의 생명체로 이루어졌고, 하나의 질서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같은 뿌리요 만물이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틀에서 보면 너와 내가 한 몸이요 우리 모두가 한 뿌리요 한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의 분상, 밝은 지혜로 보면 실제 그렇습니다. 그것을 대승이라고 합니다. 불교를 대승불교라고 하는데, 그래서 대승불교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는 이 지구와 이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라는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생각이란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기 앞으로 등기가 돼있는 손바닥만한 땅만이 내 땅이고 세계를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구 전체가 내 것이고 내 땅이라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지나가면서 침도 뱉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한반도는 6,25전쟁 이후 60년간 아직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호시탐탐(虎視耽耽) 대치 중에 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 핵문제로 유발된 긴장은 서해 연평도 근해에는 일촉즉발(一觸卽髮)의 위기 상황까지 몰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인 보기가 부끄러워 얼굴 들기조차도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한민국이 내것이고 진정한 자기라는 주인의식을 가진 국민이 드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자신과 국토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가 번창하고 국민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국회라면 나라를 위하여 선량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곳인데 여야 대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가 찰 때가 있습니다.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당리당략에만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로 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자기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원색적인 악담을 하겠습니까? 상대당을 칭찬하는 것을 여러분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주인이라면 당이 다르다고 어떻게 마구 못된 말만 늘어 놓겠습니까?
 
  직장도 어떤 직장이든,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어떤 직업을 가졌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직장을 내일처럼, 내집처럼 생각하면 행동이 달라지고 사고가 달라질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삽자루만 쥐는 것을 보아도 주인인지 머슴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내것처럼 생각하면 종이 한 장 볼펜 하나라도 예사롭게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면 노동운동이 뭣이 필요하겠으며, 어찌 분규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직장인으로서 자기 일처럼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면 어찌 좋은 일이 없으리요. 우주 만물 조차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대승적으로 산다면 어찌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출세하지 못하겠습니까?

  조선조 중엽 진묵일옥(震黙一玉)선사라는 일화도 풍성한 도인이 계셨습니다. 그 선사의 속탈한 시 일구(一句)를 읊어드리겠습니다.

  하늘이 이불이요, 대지는 자리로다.             
  태산을 베게 하고 저 달을 촛불삼아
  바닷물을 곡차 만들어 실컷 마셔 볼거나
  한 잔 두 잔 들이키며 세상사 모두 좋네
  크게 취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니
  아뿔사 기나긴 소매 곤륜산에 걸릴라.

  곤륜산(崑崙山)은 중국 신강성에서 티벹 북쪽으로 뻗은 산입니다. 불법의 최고 경지를 말하기도 합니다.
  진묵대사는 훤칠한 대도인입니다. 사람은 크게 살고 장부답게 대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불자는 어디에 가든 또 무슨 일을 하든 일체 만물에 큰 마음 주인 의식을 가지고 내 것이고 자기 일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자비하고 보시하는 정신으로 삽시다.
  위와 같은 큰 마음, 주인의식, 만물이 자기이고 부처님이라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푸니 바로 대자대비입니다.
  불자는 자비해야 합니다. 자비가 뚝뚝 흘러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慈)는 여래요 비(悲)도 여래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래란 부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자비가 바로 부처님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풀 한포기, 땅위에 기어다니는 개미 한 마리, 물속에 있는 작은 벌레에 까지도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부처님은 자비를 떠나서 이야기 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불자라면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본 받아서 자비하고 또 자비해야 합니다.
  자비를 떠나서 선법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신남신녀 여러분!
  자비하십시오. 자비를 먼 곳에서 실천하지 마시고 바로 여러분의 가정에서 실천하십시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또한 두 부부가 아이들에게도 진실한 자비를 베풀어 보십시오.
  즐거운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뿐만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까지 가져라’고 했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이란 공손히 섬기는 마음입니다. 남을 공손히 섬기되 부처님처럼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집에서도 남편은 아내를 부처님처럼 섬기고, 아내는 남편을 부처님처럼 섬기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이들에게 까지도 부처님처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부부가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 까지 부처님처럼 공손히 섬기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 집안이 바로 불국정토(佛國淨土)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늘 베푸는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깨끗한 마음을 내어 법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재물이나 법이 없으면 부드러운 얼굴로, 좋은 말로 예의 바르게 선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도 바로 보시로 들어갑니다.
    가급적이면 인색하지 말고 마음 만이라도 진심에서 베푸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자비’하시라 ‘보시’하시라 ‘남을 공경’하시라는 이야기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잘 알고 많이 들은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행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종교는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날 중국에 당송 8대 시인 중에 백낙천(白樂天)이라는 유명한 분이 있었습니다. 백낙천이 어느 날 걸출한 선사인 작소도림(鵲巢道林)을 찾아서 물었습니다. 작소 도림선사는 높다란 나무 위에 까치집처럼 가지를 얼기설기 얽어서 정진했다 해서 작소, 까치집 같다해서 불리어진 별명입니다.
  ‘불교란 무엇입니까?’
  도림 선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과거 칠불통계(七佛通誡)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악(諸惡)을 막작(莫作)하고
  중선(衆善)을 봉행(奉行)하고
  자정기의(自凈其意)함이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나쁜 짓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고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함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낙천이 말하기를, ‘그런 말씀은 5,600여년 전에 공자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을 대단하게 말하느냐?’고 하니 도림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말씀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실천수행 하는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낙천이 감동하면서 귀의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종교는 실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정말 자비합니까?’‘진심에서 남을 공경합니까?’‘참으로 보시행을 실천합니까?’ 대답하라면 큰 소리로 자신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라도 참으로 실천하면 바로 큰 소리 칠 수 있습니다.
  자비도 참으로 실천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깨칠 수 있습니다.
  공경도 참으로 남을 공경하면 깨칠 수 있습니다.
  법화경에 ‘상불경보살’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살은 어찌나 훌륭하던지 어떤 사람도 공손히 섬기는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보살은 이 사람도 공경하고 저 사람도 공손히 섬겼습니다. 그것도 부처님처럼 최선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보살은 남을 너무 공경했기 때문에 정작 자기 는 수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을 공손히 섬기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고 낮추니 마음이 점점 비워지고 비워져 수행을 않고도 자연스럽게 깨치게 되었습니다. 깨침은 꼭 수행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심만 잘 하고 겸손만 해도 깨칠 수 있습니다.
  보시도 진심에서 베풀면 큰 공덕이 쌓입니다.
  부처님 당시 어떤 거지 처녀가 동전 두 닢을 보시한 공덕으로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집중도 잘만하면 쉽게 깨칠 수도 있을 것이며, 주인의식도 참으로 가지면 최고의 직위도 높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은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참으로 발심하고 신앙심을 돈독히 해서 한가지라도 제대로 실천하는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9.6.27 대구신도회 창립법회 법문)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축서사님의 댓글

축서사 작성일

말 그대로 성황리에  치루어진 대구 신도회 창립법회였습니다.
축서사 선원장이시며 주지스님이신 무여큰스님의 감로법문중 필자는 '주인의식을 가지자.'는
내용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너나 할것없이 주인의식이 없어지는 현실.

언제 어디서든  주인의식이 있는 삶이라면 바로 성공하는 삶이 아닌가 합니다.
큰스님께서도 성공하고자 하거나, 행복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살아보시라 당부하고 계십니다.
실천 수행하는 불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삶이 였으면 합니다.

모든님들 성불하세요.^^

선재라님의 댓글

선재라 작성일

일체여래진실의

어서빨리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게 하여지이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정일태님의 댓글

정일태 작성일

큰스님 너무나 고맙습니다.
  성스럽고 자비하신 모습에 무한한 공경을 바칩니다. 

  6월 27일 큰스님 초청 대구 대법회가 열리던 날
 
  30도가 넘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먼길을 한참에 달려 오셔서 충분한 휴식도 갖지못한 채
사자좌에 오르셔서 우리 모두를 위해 달콤하면서도 덕높은 법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날 법회를 준비한 대구경북 불교언론인회 회원과
축서사 대구신도회 회원들은 물론이고 법회에 참석한 모든 불제자들은
큰스님의 법문을 늘 '마음속의 등불'로 간직하기로 다짐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불제자를 위해 감로법문을 더욱 많이 설하여 주시길 기원드립니다.
  또 가능하다면 큰스님이 한꺼번에 많은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겠습니다. 

  제가 큰스님을 처음 뵌 것은 2005년 8월 중순 한여름이었습니다.
  당시 큰스님은 진신사리탑을 조성하고 계셨고
저는 kbs 안동방송국의 방송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 kbs에 진신사리법회 관련 보도를
의뢰한 것입니다. 
  고민 끝에 저는 직접 취재하기로 마음을 먹고 축서사로 떠났습니다.   

  봉화읍을 지나 국도를 따라가다가 축서사라는 표지판을 보고
농로 같은 길로 접어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저는 축서사와 큰스님이 어떤 모습이고 어느 경지에 계시는 분인지 상상을 하지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탄 차가 농로 같은 길로 접어든 지 얼마 되지않아
차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우뚝 솟은 문수산과
문수산을 기둥삼아 뻗어나온 야산들의 모습이 심상치않다고 느꼈습니다.       
  8월 중순의 나무와 풀들은 진한 녹색으로 싱그러웠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문수산은 멀리 소백산과 마주앉아 숱한 야산들을 발치에 두고 
깍아내린 절벽의 모양으로 대웅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여태껏 보지못한 위세 당당하고 장엄한 풍광에
머리 끝이 쭈삣해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런 곳에 계시는 스님은 어떤 분이실까?
  기대와 설레임으로 큰스님 방으로 갔습니다.
  삼배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청정하고 단아한 모습에 후광으로 빛나는 스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큰스님은 열정적인 참선 수행을 통해 체득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색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않는 공의 세계가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큰스님은 이렇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인연이 꽃을 피워 축서사 대구 신도회가 만들어지고
지난 27일 대구에서 대법회가 열렸습니다.

  대법회로 핀 꽃이 좋은 열매를 맺도록 보살도와 참선수행을 통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큰스님 고맙습니다.
  성스럽고 거룩하고 자비한 모습에 무한한 공경을 바칩니다.

황범주님의 댓글

황범주 작성일

길가는 중에 잠시 흐트러져 방황하고 있는 이 어리석은 무명중생에게 최적의 감로법문이라고
마땅히 여겨집니다....큰 스님의 말씀을 처음의 마음으로 다시 새기어 열심히 정진일여의 길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큰스님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