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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보궁기도(寶宮祈禱)를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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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7-11-28 19:57 조회4,309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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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음력 10월 초하루는 유서깊은 문수산 축서사에서 매년 연중행사로 봉행하는 100일기도 입재일입니다.

금년에는 보탑성전(寶塔聖殿) 낙성식과 지장보살, 동진보살 및 제불보살 벽화 점안을 겸해서 역사적인 뜻 깊은 보궁기도를 봉행코져 합니다.

동참하신 불자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광명(慈悲光明)이 더욱 가득하여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 되고, 한 해를 알차고 보람 있게 잘 마무리 하시고, 새 해 새 희망과 포부를 향하여 힘찬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원래 기도는 보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도하면 보궁을 떠올릴 정도로 보궁은 기도나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축서사 신도 여러분은 특별한 생각을 하셔도 좋습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탑에 봉안하고 보탑성전을 지어 수많은 불보살을 점안해 드리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인연이요, 불자로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입재일을 맞이하여 신앙심을 돈독히 하고 더욱 발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매년 100일기도를 하시고, 이 외에도 보통기도와 특별기도를 하실 텐데 기도가 잘 됩니까? 또 기도하는 보람과 공덕을 느끼십니까?

기도는 하시는 것만큼, 애쓰면 애쓰는 것만큼 공덕을 느끼실 것입니다. 가피(加被)나 느낌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안 될수록 더 지극한 신앙심을 내시고, 더욱 굳건한 원력을 세워 열심히 정근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스스로 ‘나는 못난 사람이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나는 단점과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등등 지혜롭지 못하고, 부족하고 고칠 점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굳건한 원력을 세워, 지극하게 하시고 간절하게 해보십시오. 기도는 바라는 전부를 성취해 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불자를 개발하고, 완성하고, 깨달음으로 가게 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해라, 말아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고 꼭 해야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안 하면 자기 손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옛 어른은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 하여,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하였습니다. 속담에 ‘빌면 무쇠도 녹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간절하게 기도하며 간절하게 일하라. 그러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집중하여 비는 마음이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이번 보궁기도 인연으로 특별한 마음을 내서 불자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한 두 단계 성숙하여 주위에서 존경받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의 법문은 ‘축서사 보궁기도를 시작하면서’ 라는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KBS에서 ‘순례자의 길’ 이라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다큐멘타리 영상물을 보았습니다.

티벳트 변방에 사는 야크 치는 유목민 5인이 가을 추수가 끝나고 겨울과 봄 동안 평생의 소원인 수도 라싸를 오체투지(五體投地: 몸의 다섯 부분, 이마, 양 팔꿈치와 양 무릎을 땅에 닿게하여 전신을 뻗는 절)로 순례하는 기록 영상입니다.

2006년 12월20일에 출발하여 장장 2,100Km를 186일만에 도착하는 목숨을 건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평균 4,500m의 고지대를 영하 20。C이하의 추위를 이겨내며, 먹는 것이라고는 한 끼에 보리로 만든 짬바 한 덩어리와 차 한 잔이 고작이었습니다. 길은 주로 포장 도로 위를 가기도 했지만, 때로는 얼음이 떠내려 오는 물을 건너고 험준한 산악을 오르내리면서 하루에 겨우 6Km 정도 간다고 했습니다. 걸어서 가기도 어려운 일인데 삼보일배(三步一拜), 세 발자국 걷고 한 번 절하는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존경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들 수행자는 수 만번, 수십 만번의 오체투지로 이마가 땅에 닿아 벗겨져서 혹처럼 굳은살이 되었고, 다리는 살이 부었다 빠졌다하여 걷기조차 어렵게 되었으며, 가슴은 땅바닥에 어찌나 닿았던지 두터운 옷을 입었는데도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한 추위와 무서운 굶주림과 참기 어려운 고통과 뼈 속까지 아픈 괴로움으로 얼굴은 까맣게 타서 사색인데도 오직 라싸, 라싸로 향하는 무서운 순례를 하였습니다.

이들 중 66세 노인과 다른 한 늙은이는 오체투지로 순례를 못하지만 도우미로서 순례에 필요한 물품을 손수레에 싣고 순례자를 돕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무거운 짐을 무리하게 들다가 병이 나서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의 말씀이 순례를 안 하면 낫는다고 하니, “병이 악화돼서 죽더라도 순례는 하고야 말겠다.”고 해서 콧등이 시큰했습니다.

그들은 순례 중에 순례하는 두 가족을 만났습니다.

한 가족은 7~8명이나 되는 식구 전체가 하였습니다. 식구 중에는 10살가량 된 아이도 끼었습니다. 온 가족이 무슨 소원이 그렇게 많은지 신들린 사람들처럼 경쟁이라도 하듯 라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티벳트 불교를 확인하는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또 한 가족은 오십대 가량의 부부가 노모를 모시고 아들 딸 남매와 순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가족은 모든 재산을 버리고 가정까지 정리하여 순례에 인생을 바치고 하였습니다. 이들 중 늙은 할머니는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겨우 걸으면서도 염주를 돌리며 염불을 하였고, 부인은 오체투지를 하면서 무슨 주문인지 큰 소리로 외우는데 어찌나 처량하게 한스럽게 들리던지,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듯 했습니다.

이들 순례자들의 목적지는 라싸의 포탈라 궁과 조캉사원, 침투 계곡의 은둔하며 수행하는 성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라싸의 포탈라 궁은 티벳트의 살아있는 부처님인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곳이고, 조캉사원은 티벳트 불교의 총 본산지이고, 침투계곡의 성자들은 티벳트가 존경하는 수행자들이라 합니다.

순례자들의 목적지는 바로 적멸보궁입니다. 이들 순례자는 순례의 마지막 의식으로 조캉사원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보궁 앞에서 오체투지로 10만배를 하고 회향한다고 하였습니다.

근래에 이들처럼 감명을 주는 이야기나 법문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들은 출가 수행자도 아니었는데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은 지극히 돈독했으며, 보궁으로 가는 마음은 대단히 간절하고 투철했으며, 행동은 거룩하고 훌륭하여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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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보궁이란 불자들의 영원한 귀의처(歸依處)이며 예배처 입니다.

보궁을 일반적으로 적멸보궁(寂滅寶宮) 또는 적멸도량(寂滅道場)이라고 부릅니다.

적멸보궁은 원래 두두룩한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함으로서 부처님께서 항상 그곳에서 적멸한 법을 법계 중생에게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입니다.

적멸이란 적정(寂靜) 또는 열반(涅槃)과 같은 뜻으로, 고요하게 가라앉아 평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장작불처럼 이글이글 타는 번뇌의 불이 완전히 꺼져 마음이 궁극적으로 고요하고 지극히 안정된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적멸보궁이란 성스러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도를 완전히 이루어 모든 고통과 번뇌가 끊어진 해탈(解脫)의 경지를 말하기도 하고, 성도(成道)하신 도량을 말하기도 합니다.

둘째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남기신 신골(身骨)인 사리를 모신 곳이므로 적멸한 보배스런 궁전과 같다 하여 적멸보궁 또는 적멸도량이라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말할 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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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신도 여러분!

이제 영원한 평화와 자유를 찾아 적멸보궁으로 순례의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티벳트 순례자의 신심과 발심과 원력으로 떠나면, 임제(臨濟)스님의 말씀처럼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階眞)’, ‘곳에 따라 주인이 되면 선 곳이 다 진리다.’ 하듯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 부처요, 적멸보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에 있는 적멸보궁부터 참배하기로 하겠습니다.

인도 성지를 다녀오신 분은 부처님이 성불하신 적멸보궁을 가보셨을 것입니다. 다녀오시지 않은 분일지라도 마가다국 적멸보궁의 대탑 (일명 붓다가야 대탑)을 비디오나 사진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붓다가야 대탑은 나이란저 강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육년 간의 모진 고생 끝에 일심중도(一心中道)의 깨달음의 세계, 적멸의 세계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그 곳을 보리도량(菩提道場)이라 하며, 적멸도량 혹은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마가다국의 보리도량에 대해서는 『화엄경』의 첫 품인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경전의 말씀이라 딱딱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다소 길더라도 인용하여 보겠습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 마다가국 아란야법 보리도량에 계시사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었다. 그 땅은 견고하여 금강으로 되어 있었으며 가장 미묘한 보배 바퀴와 온갖 보배꽃과 청정한 마니구슬로 장엄되어 모든 색상들이 끝없이 나타났다. 또한 마니로서 깃대자 되어 항상 광명을 놓고 항상 미묘한 소리를 내며, 온갖 보배 그물과 미묘한 향기 나는 꽃다발들이 두루 드리워져 있었다. 그 마니 보배는 변화가 자재하여 한량없는 보배와 온갖 미묘한 꽃들을 그 땅에 뿌린다.

보배나무는 줄을 서 있고 무심한 가지와 잎은 빛나고 있었다. 이 땅의 모든 장엄은 부처님의 신력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며 옛 도량의 모든 장엄이 온 대지에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그 보리수는 높고 훌륭해서 금강으로 몸뚱이가 되었고 유리로써 줄기가 되었으며, 온갖 미묘한 보배들로 가지가 되어 있었다. 또한 잎은 무성하여 드리운 것이 마치 구름과 같고 보배꽃의 갖가지 색깔들은 가지마다 그림자를 드리웠다. 또 마니로써 그 열매가 되고 안으로도 빛나고 밖으로도 빛나며 꽃들 사이사이 마다 빛나고 있었다.

보리수 주위에서는 모두 광명을 놓고 그 광명 속에는 마니 보배가 나오는데 그 마니 보배 속에 여러 보살들이 있어서 그 수가 구름과 같이 동시에 출현했다. 또 여래의 위신력으로 이 보리수에서 항상 미묘한 음성이 흘러나와 갖가지 법문을 연설하는데 끝이 없었다.

여래께서 머물러 거처하시는 궁전과 누각은 넓고 장엄하고 화려해서 시방에 충만하며 가지각색의 마니로써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과 누각은 온갖 보배꽃으로 장엄하였고 모든 장엄에서는 광명이 흘러나와 구름 같으며 궁전 사이에서는 그림자가 모여 잣대가 되었다.

또한 한량없는 보살들과 도량에 모인 대중들은 모두 그 곳에 모여 여러 부처님의 광명과 부사의한 소리를 내었다. 단 마니보배로써 그물이 되었는데 여래의 자재하신 신통력으로 모든 경계가 다 그 속에서 나오고 일체 중생이 거처하는 집들도 다 그 속에서 영상처럼 나타나며 모든 부처님의 신력으로 일념 사이에 온 법계를 다 둘러쌌다.

그 사자좌는 높고 넓으며 미묘하고 훌륭해서 마니로 좌대가 되고 연꽃으로 그물이 되었으며, 청정하고 미묘한 보배로 바퀴가 되어 있었다. 온갖 색깔의 꽃들로 꽃타래가 되고 전당과 누각과 섬돌과 창문 등 모든 불상들이 잘 장엄되어 있었다.

보배나무와 가지들은 그 주위에 늘어서 있고 마니 광명은 서로서로 밝게 비쳤다. 시방제불이 나타내는 구슬과 일체 보살들의 마니에 있는 미묘한 보배에서도 모두 광명을 놓아 찬란하게 비추었다. 또한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여래의 광대한 경계를 연설하니 미묘한 음성이 멀리 퍼져서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때 세존께서 이 자리에 계시사 일체 법에서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시었다. 지혜는 삼세에 들어가서 모두 평등 하여지고, 몸은 일체 세간에 충만하시며, 그 음성은 시방국토에 다 들리시었다.

이는 마치 허공이 온갖 물상을 다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모든 경계에 분별이 없는 것과 같았다. 또 허공이 일체 것에 두루 하여 모든 국토에 평등하게 따라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항상 일체 도량에 앉아 계신 세존의 몸은 보살들 가운데서 그 빛나신 위엄이 혁혁하여 마치 해가 떠올라서 온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과 같았다. 삼세에 행하신 온갖 복덕의 바다는 다 청정하였다. 모든 불국토에 항상 태어남을 보이셨다.

끝없는 색상과 원만한 광명이 온 법계에 두루 하여 차별 없이 평등하시며 모든 법을 연설하시되 마치 구름을 일으키는 듯 하며 낱낱 털끝에 일체 세계를 다 수용하되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각각 한량없는 신통력을 나타내서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하시며 그 몸이 시방에 두루 하면서도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그 지혜는 모든 형상 속에 들어가서 법이 공적함을 요달 하시며 삼세제불의 신통변화를 광명 가운데서 모두 다 보시며 모든 부처는 국토의 부사의한 곁에 있는 장엄들을 모두 다 나타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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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이상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룰 때의 화려한 상황입니다. 불자들은 처음 적멸보궁의 휘황찬란한 묘사에 몹시도 당황 할 줄 믿습니다.

어떻게 땅이 금강(金剛)으로 되어 있고, 보배꽃과 마니로 장엄되고, 그 사이에서 광명이 나오고, 어떻게 해서 보리수에서 미묘한 음성이 흘러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주변이 지금과 비슷한 땅이었을 것이며, 평범한 공간이었을텐데 어떻게 그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움의 극치일 수 있을까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남신녀 여러분이 분명히 아셔야겠습니다. 비록 땅은 현재와 비슷하게 인도 특유의 매마르고 무더운 곳이었겠지만, 정각을 이룬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이렇듯이 찬란한 보배로 이루어진 광명의 세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모두가 광명과 보배 자체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부처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산은 산대로 법을 설하고, 물은 물대로 부처님의 모습을 보이며, 일체 모든 형상들은 불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무명과 탐욕이 사라지고, 시비분별이 사라진 눈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답고 찬란하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무명(無明)과 탐욕에 의해 마음의 문이 혼탁해진 사람에게는 공간적으로 훌륭한 세계라도 탐욕을 키우는 괴로움과 투쟁의 공간일 뿐입니다.

적멸보궁이란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입니다. 부처님은 2천5백여 년 전에 입멸하셨지만 부처님의 법신은 언제까지나 상주하시며,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세계는 영원합니다. 일체 시비분별이 끊어진 평등하고 자유스런 세계입니다.

이처럼 청정하고 평등한 눈으로 맞이하는 공간이 바로 적멸보궁입니다. 적멸보궁은 국토와 중생이 깨달음으로 청정하고 자유로운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현실과 이상, 마음과 국토(환경)가 완벽하게 평화와 자유를 이루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인도의 마가다국 적멸보궁 다음으로 이제는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을 참배하겠습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을 적멸보궁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사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리(舍利)는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영롱한 신골(身骨)을 말합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남기고 가신 것이라해서 유골(遺骨)이라고도 하고, 신령스런 것이라 하여 영골(靈骨)이라고도 합니다.

사리는 보통 네 가지로 나눕니다. 전신(全身)사리, 쇄신(碎身)사리, 생신(生身)사리, 법신(法身)사리 등입니다.

전신사리는 다보여래(多寶如來)와 같이 전신이 그대로 사리인 것이고, 쇄신사리는 부처님 몸에서 구슬과 같은 낱알로 나온 것이며, 생신사리는 살아계시는 불·보살의 몸에서 나온 사리이며, 법신사리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설하신 교설과 경전을 일컫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시나가라성의 사라쌍수 밑에서 열반에 드시자 제자들이 인도의 장례법에 의하여 다비하였더니 8말4두나 되는 많은 사리가 출현하였습니다. 이를 인근 국가 8개국에서 분배하여 봉안하고 부처님을 그리며 예배 공양하였습니다.

부처님 가신지 200년 후에 태어난 아쇼카 대왕이 등장하여 인도 전역을 통일하였습니다. 아쇼카 대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독실한 불자로서 제3차 경전을 결집하는 등 수많은 불교중흥정책을 펴게 됩니다. 이 때 사리탑도 인도 전역에 무려 8만4천개나 세웠다고 합니다.

불사리는 부처님의 유해이기 때문에 불상보다 더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리를 모신 탑이 대승불교에서는 신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한된 사리 수와 유품의 한계로 탑의 건립이 점점 어려워지자 예배의 대상으로 불상이 조성되고 신앙의 중심도 불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흔히 사리는 신비하고 불가사의 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보통의 사고나 지혜로 미칠 수 없는 수행과 정진력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후에 설산(雪山)에서 6년간 목숨을 건 수행을 하셨고, 일생동안 한량없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의 공덕을 쌓았으며,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도 누구보다 철저히 닦으셨습니다.

그런 대단한 정성과 무량한 공덕으로 승화되어 생겨난 것이 사리입니다. 그러므로 『금광명경』의 「사신품(捨身品)」에서, 부처님께서 아란으로부터 사리를 받으시고 일체 중생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이 사리에 예배하라. 이 사리는 곧 계·정·혜를 훈수한 결정체인 것이다. 이는 매우 얻기 어려우며, 가장 으뜸가는 공경의 대상이 되며, 또한 최상의 복전(福田)이다.” 고 하셨습니다.

사리는 깨달음의 공덕으로 성취한 부처님의 몸에서 출현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면 나라를 초월하여 무한한 이적이 있어 사리에 대한 신앙심을 돈독케 했습니다. 그런 사리이기에 부처님의 깨달음과 공덕을 생각하고 공양하면 무한한 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리는 이와 같이 부처님으로 경배 되었으며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성지는 부처님이 상주해 있는 곳과 똑같은 적멸보궁으로 참배와 공양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 뒤 중국의 현장(玄裝)법사나 의정(義淨)법사 등에 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중국으로 모셔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신라 진흥왕 10년에 중국 양(梁)나라에서 모셔와 경주 흥륜사에 봉안한 것이 효시라고 합니다. 그 후 신라의 자장(慈藏)율사께서 중국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기도하여 문수(文殊)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정골사리와 치아사리등 200여과를 모셔왔습니다. 이 사리를 대표적인 적멸보궁인 경남 양산 통도사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 및 강원도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에 나누어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께서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사리를 나누어 강원도 정선군 정암사에 봉안하였으니 5대보궁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소중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인연이랄까.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유서 깊은 천년고찰인 우리 축서사에도 사리를 모실 수 있었으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5년에 미얀마 남 오칼라마 양군의 박물관 소장 불두사리108과와 탱화에 소장된 적사리 2과, 그 외 진신사리 2과등 112과를 봉안한 것은 축서사 불사의 핵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리탑을 조성하고 사리를 봉안하며 명실상부한 적멸보궁도량이 된 것은 축서사 1천 3백여년 역사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불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축서사에도 보탑성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바로 불탑을 향하여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단만 설치하고 있습니다.


탑을 예경하는 방법으로 탑돌이가 있습니다.

사찰에서는 ‘부처님 오신날’이나 큰 재(齋)가 있을 때 대중적으로 성대하게 하는 의식이 있지만,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탑돌이를 하는 것이 기본예절 입니다.

탑돌이 하는 방법은 우선 탑전에 삼배를 올립니다. 삼배는 큰 절이든 반배든 정성껏 올리면 됩니다. 그리고 합장한 채 탑 주위를 오른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 돌고 또 삼배를 올립니다.

탑을 세 바퀴 도는 것은 삼존(三尊 또는 三寶),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천하의 스님들에게 공경을 표하는 것이고, 무명(無明)의 근원인 삼독심(三毒心),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기를 염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짓는 업, 마음으로 짓는 업 등 삼업(三業)을 밝히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三惡道)를 멸하기를 바라는 염원이기도 합니다.

탑돌이 할 때의 자세는, ‘머리를 숙여 땅을 보아야 하며, 벌레나 생명체를 밟지 않게 할 것이며, 좌우로 돌아보지도 말고, 탑 주위에 침을 뱉지도 말며, 중간에 서서 말하지도 말라.’고 경전에는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탑돌이는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껏 해야 합니다.

그런 탑돌이라면 대단한 공덕이 쌓인다고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살본행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저 바라문은 나를 보고 기뻐하며 청정한 마음으로 나를 한 바퀴 돌았다. 그는 이 공덕으로 지금부터 25겁 동안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에서 무궁할 것이다. 25겁이 지난 뒤에는 벽지불이 되어 이름을 지관나기리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부처님을 돌거나 또 불탑을 돌면 어디든지 그 복이 무량하리라.”

또 『재위경』에서는 그 공덕을 구체적으로 말씀 하였습니다.

“탑을 돌면 다섯 가지 복덕이 있다. 첫째는 후생에 단정한 좋은 몸을 얻고, 둘째는 좋은 음성을 얻으며, 셋째는 천상에 태어나고, 넷째는 왕후(王侯)의 집에 태어나며, 다섯째는 열반의 도를 얻을 것이다. 무슨 인연으로 단정한 몸을 얻는가. 불탑을 보고 기뻐하기 때문이다. 무슨 인연으로 좋은 음성을 얻는가, 탑을 돌고 경을 강설하기 때문이다. 무슨 인연으로 천상에 나는가, 탑을 돌 때 마음으로 계를 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인연으로 왕후의 집에 나는가, 머리를 땅에 대고 탑에 예배하기 때문이다. 무슨 인연으로 열반의 도를 얻는가, 남은 복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탑돌이 하면 예배하는 공덕이 대단히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지극한 공경심을 가지고 청정한 마음으로 티벳트 순례자들처럼 정성껏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서 부처님의 적멸보궁을 인도에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 5대보궁까지 간략하게 순례하고 탑돌이까지 마쳤습니다.

옛날 신라나 중국 당나라의 수많은 승려들은 법을 구하기 위하여 인도의 적멸보궁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당나라 수도인 장안(長安)을 출발하여 낙타도 가기가 어렵다는 고비사막을 지나서 실크로드를 따라 가다가 죽음의 천산산맥(天山山脈)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타림분지를 통과하여 험준하기로 유명한 카라코럼 산맥을 고생 고생하면서 넘어서 지금의 파키스탄을 통해 인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길은 어찌나 험하고 짐승이나 도둑이 많던지 구법승(求法僧) 10명 중에 4명은 저승길이 되고, 겨우 6명 정도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순례승의 대표적인 기록이 당 현장(玄裝)법사의 유명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입니다. 이들 구법승들은 그야말로 위법망구(爲法忘軀), 불법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적멸보궁을 참배하는 공덕은 어떠할까요?


첫째는 부처님을 예경하는 공덕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미망(迷妄)을 밝히시고 이 세상에 가장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진리를 깨달으신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음의 안목을 열어주셔서 대자유, 대평등의 해탈에 이르게 하시고,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해주신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은 이 없고, 시방세계에 비할 이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께 예경하면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부동하게 되며, 부처님으로 향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발심을 하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 부처님의 정신을 실천수행하려는 마음을 내게 되며, 일체 중생을 다 구제하고 성불하고야 말겠다는 서원을 일으키게 됩니다. 바로 예경이 불교의 목표인 성불하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구도의 의지를 굳건하게 합니다. 그래서 보궁 참배는 자주하고 여러 번 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널리 부처님께 공양하고 법문을 듣는 공덕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남기고 가신 유골인 사리에 참배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공양을 올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공양은 범어 ‘Pujana’로서 받들어 베푼다는 뜻으로, 부처님께 정성스런 마음으로 기꺼이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참배하거나 공양할 때는 살아계시는 부처님께 올리듯 물 한 그릇, 과일 하나라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지극하게 공양해야 합니다. 공양할 때는 상대가 누구든 절대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이 성심성의껏 해야 합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악한 사람 백 명에게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착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며, 착한 사람 천 명에게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5계지키는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며… 십억의 아라한에게 공양하는 것이 한 분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 고 하였습니다.

공양은 자비와 지혜가 가장 수승한 부처님께 하는 것이 가장 공덕이 큽니다.

그리하여 참배하시는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께서는 보궁에 참배하는 것을 항상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정성’과 ‘지극함’, 두 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부처님 사리는 항상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사리란 부처님처럼 목숨을 건 수행과 정진력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단한 정성과 무량한 공덕으로 생겨난 신령스러운 구슬과 같은 것이 사리입니다. 그리하여 보통 사람의 사고나 지혜로 미칠 수 없다고 하여 ‘신비하다’, ‘불가사의 하다’고 합니다. 불교의 한 종파인 라마교에서는 사리를 ‘천상의 신들도 탐내는 보물 중의 보물이고, 약(藥)중의 약이며, 최상의 성물(聖物)’이라고 합니다.

사리는 부처님의 신골이기 때문에 항상 부처님과 교법을 상징하므로 8만 4천 법문을 듣는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셋째는 업장을 소멸하는 참회공덕이 있습니다. 뜨거운 용광로에는 아무리 견고한 강철일지라도 다 녹듯이 우리 중생들이 지은 업장 또한 불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을 참배함으로서 봄 눈 녹듯이 소멸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지은 모든 악업은 그 근원이 탐(貪), 진(嗔), 치(痴) 삼독심(三毒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삼독심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이 삼독심이 뿌리가 되어 한량없는 악업을 지어왔고, 그 결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삼독심은 바로 무명(無明)으로, 무명은 다시 어리석은 행동으로 옮겨짐으로서 악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분수도 모르고 살아오면서 온갖 잘못을 저질렀고, 참고 기다리지 못하여 죄를 짓기도 하고, 이기심으로 어리석게도 악업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죄업을 불사리에 지극하게 참회함으로서 소멸이 될 수 있도록 인연을 자주 맺으시기 바랍니다. 백겁 천겁 쌓은 죄업을 한 생각에 당장 없애기를, 마치 마른 풀을 태우듯이 남김없이 없애듯이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지극하게 참배하여 참회공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마음과 우리가 사는 중생계가 바로 적멸보궁이 되어 영원한 행복과 안락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체의 번뇌 망상이 소멸된 적멸의 세계, 모든 고뇌가 없어진 적정의 세계를 우리가 살고있는 곳에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적멸의 보궁을 우리 현실에서 이루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정진하는 것입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팔정도(八正道)를 말씀하셨고,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을 말씀하셨습니다. 무명과 탐욕과 일체 시비분별이 끊어진 평화롭고 자유스런 마음의 적멸보궁을 성취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수행정진을 해 나갑시다.

 


5


존경하는 축서사 신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불자들은 다행스럽게 대단히 복이 많습니다. 부처님 가신지가 2500여년이 되었는데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건립하였으니 대단한 경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지중한 인연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간 여러분께서는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기도를 주로 하였지만, 이제 부터는 기도의 효시요 핵심인 석가모니불 정근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도의 폭도 넓히시고, 부처님의 큰 가피를 입으시고 진정한 기도의 보람과 가치를 느끼시며 무량한 공덕을 쌓아서 자신이 바로 적멸보궁이 되시기 바랍니다.


위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구하고자 한다면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에 목숨을 걸어보라

몸과 마음까지 잊어버린 곳에 이르면

참 부처가 여여하게 자색광명(紫色光明) 비추리라.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윤성모님의 댓글

윤성모 작성일

보탑성전 낙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축서사 다녀온지가 2년이 다 되어오는데도, 심신은 항상 그곳에 머물러 있는것같습니다.큰스님께서 불교는 위대한 종교야 하시면서 자상하게 말씀해 주시던 모습과 정교함에 놀란 사리탑의 모습이 늘 그려집니다.지나번 해인사에 갔는데, 탑돌이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하는것이라 하였읍니다.이제까지 시계방향으로 돌았는데,어떻게 도는것이 맞는지 갈등이 생깁니다.사리탑은 시계방향으로 돌고,일반 탑은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것인지?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축서사님의 댓글

축서사 작성일

삼보에 귀의합니다.
우선 답변이 늦어 죄송하오며, 큰스님을 대신하여 알려드립니다.
마음의 고향 축서사에서는 사리탑을 마주하고 섰을때 왼쪽 방향으로 돌고 있습니다.
많은 불자님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인듯  이러한 질문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언제나 즐거운 나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두손모음

윤성모님의 댓글

윤성모 작성일

고맙습니다.가르침 잘 새겼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것입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보탑처럼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