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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 유니텔 부처님나라 참선법회/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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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02-08 09:07 조회3,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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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 유니텔 부처님나라 참선법회




축서사 무여큰스님(2001년 2월 10일)


그토록 눈이 많았던 겨울의 잔설이 축서사에는 그대로 쌓여 있었다. 좁은 밤길에 법우들이 탄 버스가 축서사를 눈 앞에 두고 참으로 어렵게 올라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별이 하늘에 가득하고 산사의 찬바람이 코끝을 매섭게 스친다.

서옹큰스님, 청화 큰스님, 혜국 큰스님에 이어 네 번째로 가진 무여스님 참선법회에 지방에서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다. 일정에 변화가 있었지만 그러나 무여스님의 자상한 법문 과 축서사의 추운 산사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고 다만 귀향의 길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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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시작]


공양 많이 드셨습니까? 찬이 변변치가 못했죠? 하룻저녁 자고 나니까 어때요? 세속에서 잔뜩 끼었던 먼지나 스트레스나 온갖 번뇌 망상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습니까?


어떻게 사느냐가 아주 중요한데 이 산사에서 간혹 이런 날을 맞이하면 좋을거예요. 꾸준히 수행하려고 애써 보고 노력하십시오. 인생은 길지 않아요. 잠깐이에요. 그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요즘은 직업도 다양하고 세상이 아주 복잡하고 다단한 세상이라서 참 여러 형태로 천태만상으로 살아가는데, 잘 사시는 분은 저 부처 경계까지 올라가시는 분이 있을테고 못사시는 분은 참으로 괴롭고 부끄러운 그런 한 평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가장 좋은 길을 택했다, 그렇게 보셔도 조금도 과한 표현이 아니에요. 최상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에요.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捧)이란 말이 있어요. 사람 몸 받기가 어렵고 불법 만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사람 몸은 얼마나 받기가 어려운가하면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고 그래요. 눈먼 거북이가 나무를 만난 격이다 하는 것이지요. 태평양바다 보다도 더 넓고 넓은 큰 바다 가운데 그 바닷 속 깊숙하게 눈먼 거북이가 살고 있어요. 그 거북이는 천년마다 물 위로 올라와서 숨을 실컷 쉬고 내려가야 만이 또 천년을 살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바다 한가운데서 나무를 하나 만나야 되요. 그 나무는 구멍이 뚫린 판자입니다. 그 구멍으로 머리를 넣어서 그 나무를 의지해서 숨을 쉬다가 내려가야만이 또 천년을 살수 있는 눈먼 거북이이지요. 그 크고 넓은 태평양보다도 더 넓고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그 눈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판자를 어떻게 만날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은 이 사람 몸뚱이를 받은 것이고 바로 불법을 만나는 거래요. 그래서 여러분이 불법을 만났다 하는 그 사실만으로도 아주 다행스럽다, 복이 많다, 이런 생각을 해도 조금도 과한 표현이 아니에요.


훗날 여러분이 참으로 지극한 경계를 체험해보면 「아! 이것이로구나, 아! 이래서 참으로 내가 복이 많다는 거로구나, 복이 많고 어디 가도 떳떳하고 당당한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날이 있을 겁니다.


이 불법을 만나도 정법(正法)을 만나기 어려워요. 요새는 법이 많아 불법도 여러 가지 법이 있어요. 원래 본 바탕은 하나뿐인데 오직 한 길뿐인데 경전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하고 수행법도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어요.


요새는 위빠사나 같은 관법도 많이 해요 관법은 사실 우리 한국에서 지도할 만한 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수행은 어떻게 한다 하는 형식이나, 하는 방법 정도를 가르쳐서는 할 수 있다, 배웠다 할 수 없어요. 수행은 인생 자체예요 그래서 누구에게 지도를 받는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내 인생을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래서 참으로 내 인생을 바꿔 줄 수 있는 그런 분에게 지도를 받아야 돼요. 그런 대단한 그런 도인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화두를 하신 분 가운데는 여러 선지식이 있지만 관법으로 지도 할만한 분이 한국에서는 글쎄요, 저는 없다고 봐요. 남방에 가서 한두 철 지나고 외국에서 수행해서 가르치는 그런 정도로 가르칠 수 있다, 지도를 받는다 그런 말을 쓸 수 없어요.


남의 인생까지도 책임질 수 있어야만 해요. 수행을 지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책임지는 일이에요. 즉 속된 표현으로 팔자까지 고쳐 줄 수 있는 것이 수행지도예요. 이 사람은 팔자를 받고 난다고 하죠. 내가 몇 살에 결혼해서 아기는 몇 낳고, 몇 살에 간다. 이렇게 그 인생의 시나리오가 작성이 되어서 나와요.


그래서 그 시나리오에 따라서 각본에 따라서 연출하듯이 연기하듯이 일생을 살다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생입니다. 이러한 보통 시나리오를 없애 버리고 찢어 버리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듯이 자기 인생을 펼칠 수가 있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수행이에요.


이 수행이 화두 참구법이예요. 화두참구를 잘한다는 것은 자기 인생을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팔자를 고치는 방법이에요. 부처님 같은 분은 자기 팔자를 참으로 고치신 분입니다. 보통 사람이 부처님을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짐작이 안가요. 대단한 분이에요.


아이고 내 팔자야 할 정도로 부족하고 못나고 어리석은 존재를 부처님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행이에요. 이 수행이 어느 정도 되어서 즉 화두가 상당히 깊어진 상태에서 여러분들이 학창시절에 기억하고 있던 아주 하고 대단했던 분들을 비추어 보세요.


그러면 그분들의 위치가 상당히 드러날 거예요. 아! 나도 이쯤 됐구나! 스스로 자기를 볼 정도로, 자기가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자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세속에서도 깊게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대단하다, 대천재다, 역사적인 인물이다 하는 그런 분들도 사실 비추어보면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잘 산다는 분들은 참으로 인생에 대해서 고뇌를 하고 아주 괴로워하신 분들입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수행입니다. 마지막 길이에요. 오직 이 길뿐이다, 그렇게 이야기 할 수가 있어요.


유명한 톨스토이 그 분 일생 참 잘살았잖아요. 톨스토이 백작이라고 할 정도로 아주 존경을 받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영지가 우리나라로 하자면 웬만한 군정도가 되요. 그리고 아들딸이 14남매나 됐어요. 얼마나 대단한 문학작품을 썼습니까. 톨스토이는 대단한 산맥이에요.


그런 참 일생을 남보다 더 잘 사시고도 돌아가시기 5일 전에 가출을 했어요. 자기 고향 역에서 열차를 타고 세 역을 더 못 가고, 시베리아는 역과 역 사이가 넓으니까 세 역을 더 못 가고 내려서 어떤 역장의 사택에서 목숨을 거두었어요.


톨스토이가 가출한 이유는 뭐냐하면 성인을 길을 걷기 위해서예요. 성인의 길을. 그렇게 잘 살고 존경을 받고 대문호이고 돈 많고 아들딸 많이 낳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톨스토이도 마지막엔 가출을 했어요. 노망을 해도 보통 노망이 아니지.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성인의 길을 걷고 싶은 거예요.


괴테도 돌아가실 때 나에게 비춰 했다는 거예요. 빛이 뭐냐? 마음의 빛이라는 거예요. 즉 깨침이에요 괴테도 시성(詩聖)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문학을 이룬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한 두 번 안 읽어본 분은 지식인 축에 들어가질 않았다는 거예요. 늘 젊은이 책을 끼고 다닐 정도로 그렇게 인기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문학적인 공로가 많아요 그런데도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비추어보려 했다는거예요. 그 빛이 뭐냐? 깨침! 빛! 즉 마음의 빛이에요. 톨스토이가 성인을 길을 걷고 싶어했던 것과 나에게 비추려고 한 괴테의 그 말씀이나 같은 말이예요.


공자님은 그것을 조문도석사(朝聞道夕死)라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나는 거예요. 마지막이에요. 미국의 석유왕이라는 록펠러 1세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광고를 크게 냈어요. 나를 삼 년간만 더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사람이 있으면 내 재산 반을 주겠다 했어요.


당시 록펠러는 미국의 최고 갑부였어요. 목숨이란 그런 거예요. 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게 목숨인데 그 목숨을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요. 졸부들은 좋다면 별 짓 다 하잖아요. 그런데 그 소중한 목숨을 아침에 도만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거예요.


도란 그런 거예요. 그래서 옛날 어떤 깨친 스님이 깨치고 나니까 너무 좋아서 사흘이나 춤을 춘 거예요. 그 주변에 깨치지 못한 스님이 아, 뭐가 그렇게 좋아서 춤을 추시느냐? 하니까 자네는 모를 걸세! 자네는 모를 걸세! 했답니다.


그 깨침의 경지를 못 깨치신 분이 어떻게 알겠느냐 말이예요. 그 춤추는 심정을 누가 알겠어요. 조문도이면 석사라는 말은 깨치지 못하면 못해요.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도 여러분의 청춘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도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은 길이 이 길이예요.


사실 이 길은 예사로운 길이 아니에요. 보통 길이 아니에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공부가 아니에요. 반드시 하고 꼭 해야 되는 공부가 이 공부예요. 그래서 여기에는 모든 것을 바쳐도 그야말로 후회스럽지 않은 길이예요.


이 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길을 만난 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아주 고맙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시면서 화두하시는 분은 어쨌든 화두를 지극하게 열심히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시고, 관법을 하시는 분은 관법을 열심히 하세요. 그래서 참으로 여러분의 인생에서 근본적으로 잘 태어나시고 상당한 분은 좋게 하시고, 그렇지 못하고 나는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다 난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은 각별하게 애써 보세요.


그럼 애쓰면 애쓰는 만큼 참으로 대단한 알맹이가 있어요. 그것은 조금만 맛봐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정도여서 하지 말라 하지 말라 옷깃을 부여잡고 말리고, 별 방해를 다 해도 안 할 수 없는 것이 이 공부예요.


그렇게 대단하고 굉장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공부입니다. 오전에 잠시 말씀 드렸지만 화두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되요. 화두에서 행복을 찾지 못 찾으면 진정한 행복을 말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세속에서 그냥 보통 느끼는 행복은 사실은 - 그것도 행복은 행복이지만 - 참 행복은 아니에요.


이것을 다 느껴야 이것을 참으로 느껴야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정말 이것이 행복이구나! 정말 이 여기에는 모든 것을 다 줘도 좋겠구나」 하는 것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십시오.


오전에 잠깐 이야기를 들으니까 여기오신 분들 가운데 초심자도 계시니 초보적인 이야기를 해 드리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화두란 뭐냐? 옛 스님들의 법문입니다. 즉 문제예요. 참선자가 풀고 해결을 해야 될 문제예요.


옛 스님들께서 깨친 인연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낸 여러 종류 그런 것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참선자에게 과제로 준 것이 바로 화두예요. 화두를 참구한다, 화두를 공부한다, 참선한다, 그런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하면 바로 화두의 의심을 짓는 거예요.


화두 참선한다, 화두를 공부한다, 화두한다 그런 말은 화두의 의정을 일으키는 것을 말해요. 꼭 알아두세요. 화두는 의정이 생명이에요. 의정없는 화두는 화두가 아니에요. 화두는 오로지 의정을 일으켜야 만이 화두의 본 뜻을 알 수 있어요. 이뭣고? 어째서 마삼근이라고 했을까? 어째서 무라고 했을까? 하는 의심을 일으켜야 되요.


화두는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혹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화두는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의심을 짓는 거하고 생각하고는 다른 거예요. 의심 짓는 것을 크게 생각해서 생각한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건 분명히 달라요.

이뭣고? 어째서 무라고 했느냐? 하는 의심을 일으켜야 되요. 그래야 화두참구입니다. 화두는 의심을 일으키되 간절하게 일으켜야 되요. 아주 간절하게 그냥 예사롭게 보통 일으키지 말고 아주 간절하게∼


간절하게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절실하게, 성심성의껏 하는 것을 간절하게 한다고 하는 것이고, 절실하다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즉 없어서는 안 될 것을 말하는 것이래요. 몇 끼 굶어 보세요 아주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밥 생각일거예요.


사람은 밥 안 먹으면 죽습니다 밥처럼 아주 절실하게 화두를 들으라는 거예요. 아주 절실하게 없어서는 안될 아주 긴요한 것처럼 그래서 화두는 아주 절실하게 아주 간절하게 들면 다른 말은 필요치 않아요. 그거면 돼요. 절실하게만 들면 돼요.


안되니까 이런 말 저런 말 많이 붙이는데 아주 절실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화두는 아주 성심 성의껏 드세요. 여러분이 직장생활 하거나 집안 일할 때에 그냥 보통하고 예사롭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적당히 해도 되요. 형식적으로 흉내만 내듯이 그래 해도 되는 일이 있어요. 뭐 세속의 보통 일은 그래도 다 되요.


그러나 이 마음 공부는 아주 성의껏 해야 되요 아주 성의껏 해야 되요 아주 지극하게 해서 앉은 땅에 풀도 안나듯이 하는 거예요. 똑 떨어지게 그렇게 하는 거하고, 보통 예사롭게 하는 거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나요. 화두는 간절하게 들어야 하는 거래요. 그 간절함이란 절실하게 성심 성의껏 드는걸 말해요.


이뭣고? 어째서 무라고 했을까? 어째서 마삼근일까? 그런가 하면 화두는 끊어지질 않아야 되요. 이뭣고 하면 의심이 나다가 의심이 끊기잖아요. 그러면 얼른 챙기고 이뭣고 의심이 나다가 의심이 약해져요. 그러면 얼른 화두를 들어요. 화두와 화두 간격이 없어야 되요. 물 흐르듯이 끊임이 없어야 되요.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늘 화두기가 있어야 되요. 그것을 닭이 알 품듯이 해라 하는 것이래요. 요즘은 부화장에서 병아리를 깹니다. 그러나 옛날엔 닭이 병아리를 깔 땐 둥지가 있었습니다. 어미닭은 알을 깔 때는 둥지에 올라가서 내려오질 않아요. 늘 계란을 품고 있어요.


그렇게 있으면 그 닭은 더위를 많이 느낀답니다. 보통 더위 때도 입을 떡 벌리고 헐떡거리듯이 그렇게 더위를 많이 타는데 둥지 위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덥겠어요. 그러고 있으면숨을 헐떡거려요. 날씨는 덥지 계속 품고 있으니까 바싹 말라요. 몸이 바싹 말라 반쪽이 되요. 그래도 안 내려와요.


잠깐 내려와서 얼른 물을 먹고 올라가련만 내려오지도 않아요. 왜 안 내려오느냐 하면 계란이 식을 까봐 그런대요. 계란이 식으면 병아리가 안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늘 둥지를 떠나지 않고 떠나도 잠깐 떠나서 항시 37도 38도 그 온도를 유지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병아리가 되요.


닭이 알을 품듯이 늘 화두기가 없어지지 않아야 되요. 알이 뜨뜻하듯이 화두기가 늘 없어지지 않아야 되요. 그래야 알이 3×7일만에 터져 병아리가 깨어나듯이 이 화두가 순순해서 타성에도 들고 선정에도 들고 그래서 깨치게 된대요. 늘 화두기가 없어지지 않도록 하세요.


즉 화두가 한 순간도 없어지지 않도록 해야 해요 아시겠어요? 이게 중요해요. 첫째는 아주 간절하게 들어야 하고 둘째는 늘 화두기가 없어지지 않아야 되요. 항시 물 흐르듯이 그렇게 화두를 들어야 해요. 그런 가하면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하세요. 최선을 성심 성의껏이나 최선이나 비슷한 말인데 최선을 다하세요.


이 마음공부는 그냥 보통하고 예사롭게 하면 잘 안 되요. 힘들고 오래 걸리고 그런데 정신 바짝 차리고 애쓰면 의외로 아주 쉬워요. 바로 되요. 아주 빨라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흉내내듯이 요즘 애들 말 따라 폼만 잡듯이 그래 하면 10년이 가고 100년이 가도 안돼요.


정신 똑 바로 차려서 의외로 쉽게 바로 돼 버려요. 화두를 해 보면 마음을 훤히 읽을 수 있어요. 의외로 쉬워요. 그런 가하면 흉내내듯이 대충하면 몇 생을 해도 다 하기 어렵다고 해요. 어쨌든 이 마음공부는 아주 지극하고 아주 매달려야 해요.


즉 최선을 다 하듯이 그렇게 하면 정신세계는 아주 엄청난 폭발적인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런 말이 있죠? 바로 화두 참구를 두고 하는 말이예요.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할 정도예요. 하늘이 느낄 정도로 지극하면 의외로 바로 되요.


그래서 하는 이에 따라서 어떤 분은 아주 쉽게 되요. 어떤 분은 아주 어렵고 안 된다고 아니라고 하고 심지어는 죽겠다고 하고 자살 기도하는 그런 분도 있어요. 돌아가신 성철스님이 어떤 스님이 와서 해도 안 된다고 하니까 네가 화두가 될 만큼 해 봤느냐 했다는거예요.


해도 안 된다는 놈은 거짓말쟁이다! 하면 된다는 거예요. 안 했으니까, 할만큼 될 만큼 안 했으니까 못 하는 것이지 될 만큼 하면 할만큼 하면 왜 안 되느냐? 그래서 화두는 쇠를 녹이 듯이 하라는 거예요. 용광로에 넣으면 대번에 녹는데 어떤 분은 숯불로 녹이려고 애쓰는 그런 분도 있어요.


숯불로 아무리 녹여봤자 그냥 벌겋게 닳기는 하지 녹지는 않아요 정말 화끈하게 정말 될 만큼 하라는 거예요 또 밥짓는데 비유하기도 합니다. 불을 때서 밥을 짓는데 비유해요. 밥을 지으려고 하면서도 불을 조금 넣다 말아요. 솥 밑이 조금 탈까 말까 할 정도로.


불이 탈만큼 집어넣어서 해야 고실고실한 밥이 될 텐데 조금 넣다가 말고 불길이 솥에 닿지도 않게 넣는거예요. 그것도 오래가 아니라 잠깐 넣고 말아요. 그런 식으로 화두한답시고 마는 거예요.

많이 해야 한 시간하고 말고, 그것도 하고 싶을 때 좀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해요. 며칠하고 또 안하고 매일 한다고 해도 한 두 시간 할까 말까 하는 그것은 솥에 밥한다고 불 넣는다고 하면서 제대로 못 넣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그래서 안되니까 화두를 가르치는 분을 나무라는 경우도 있어요. 화두 가르치는 분을 나무래서는 안돼요. 어쨌든 쇠를 녹이려면 용광로에 넣어서 넣자마자 달아오를 정도로 그렇게 녹이든지 밥을 할 사람 같으면 불을 좀 넣어서 폭 퍼진 밥을 만들듯이 그래야 되요. 그래야 화두가 진정으로 되서 기분을 느낍니다.


화두하는 분은 첫째는 간절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둘째는 한순간도 끊기지 말라는 거예요. 셋째는 최선을 다해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최선을 다해라하는 것이예요. 사실 최선을 다하기가 어려워요. 늘 최선을 다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이나 짧은 기간은 할 수가 있어요. 짧은 기간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하면 됩니다. 그 세 가지를 잊지 마시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아까 오전에 저에게 화두 타러 오신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께 관법을 이야기 해 드릴까 생각을 했었는데 듣고 보니 웬만한 분들은 관법을 하신다고 하데요. 여러분이 이왕이면 화두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멀리 오셨고 화두를 받으러 오셨으니까 화드를 드리면 좋겠는데. 그리고 사실은 화두는 한 분 한 분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그래 드리면 적당한데 여기선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일괄적으로 이 화두를 한번 해보세요.


많이 하는 화두지만 이뭣고를 해 보세요. 이뭣고 앞에 전제를 붙여요. 마음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오 부처도 아닌 이뭣고 ∼∼∼∼ 마음도 아니고 - 우리가 마음 마음하지만 우리 주인공은 마음도 아니에요 - 마음도 아닌 그 무엇이래요.


그것을 한 물건이라고 그래요. 육조스님께서도 「무슨 물건이 왔는고」했답니다. 남악 회양선사가 대답을 못하고 쩔쩔 매다가 8년이 지난 다음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해서 육조 혜능 대사가 그걸 인정했습니다. 한 물건을 부처라고도 해요. 그렇지만 부처라고 해도 안 맞고, 그저 이름이 부처예요.


마음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오, 부처도 아닌 이뭣고∼∼∼ 이뭣고란 「이것이 무엇인가 ?」의 경상도식 사투리의 줄임말이에요. 이것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를 해 보세요 보통 할 때는 여러분이 관법을 해 봤으니까 이뭣고를 들 때 단전호흡에 의지해서 하십시오. 어떻게 의지하느냐 하면 숨을 들이 켰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하세요.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하는데 의심이 잘 안 나거든 앞에 전제를 붙이세요.


마음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오, 부처도 아닌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처음에 전제를 부치면 의심이 잘 날 거예요. 그런데 두 번 세 번해도 의심이 잘 안나요. 그러면 또 앞에 전제를 붙여요.


그렇게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오. 마음 마음하지만 한 물건이라고 하지만 물건도 안 맞아요. 부처라고 하지만 부처도 아니오. 그 마음도 아니오 물건도 아니오. 부처도 아닌 그 것이 무엇일까 이뭣고∼∼∼ 그렇게 계속해서 참구를 하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말씀드린 대로 초심자도 계시고 하니까 질문을 받으면서 제가 말씀드릴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을 테니까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질문할 때는 화두 참선에 대한 질문만 하십시오. 다른 질문은 하지 마시고 시간이 좀 없으실 테니까 뭐든지 화두에 참구에 대해서 물으십시오 .


- 계속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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