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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불광 2000년1월호 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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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2-28 18:21 조회3,59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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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호




교해선림(敎海禪林)/경북 봉화 문수산 축서사 무여(無如) 스님


“선(禪)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글·사기순


200146.jpgalign=right border=2> 무여 스님은 194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6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 상원사,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관음사, 칠불사, 망월사 등
전국 선원에서 20여 년 동안 수선안거하였다. 87년도 이후 봉화 축서사에서 주석하시며 불자들의 마음문을 열어주고 있다. 칠불사와 망월사 선원
선원장을 역임하셨으며 현재 조계종기초선원운영위원장으로서 선의 가풍을 새롭게 정립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누구나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와 인생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현란한 색(色)의 시대, 완벽하다싶을 정도로 물질이 발달한 이 시대에 존재와 인생, 온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진리의 삶, 부처의 삶을 일구어가는 수행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무여 스님(조계종 기초선원운영위원장)이
주석하고 계신 축서사 홈페이지(http://www.chooksersa.org) 덕분에 기초취재와 배차시간을 알아보는 수고를 덜었다. 수행자와
첨단문명의 이기인 인터넷과의 관계에 미소짓고, 수행자가 머무는 인터넷, 수행자가 된 인터넷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니 어느덧 봉화란다.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것은
택시기사야말로 그 마을 인심의 대명사요, 정보통이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염주를 곱게 매단 축서사행 택시기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주 부석사의 형님절인데 쇠락해져 축서사 주지스님께서 도량을 크게 넓혀 옛 면모를 찾아가고 있지요. 얼마 전 절에 행사가
있었는데 온 마을이 주차장이 되었을 정도였어요. 주지스님은 수행을 많이 하신 큰스님이라고 합니다.”
축서사의 번영을 함께 기뻐하고 스님을
칭송하는 택시기사에게 기자 또한 수희찬탄하며 도량에 들자마자 뵙게 된 무여 스님, “오시느라 힘드셨지요.” 그 겸허한 자태에서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땅힘을 돋우어 환골탈태한 도량, 수행으로 환골탈태한 선사, 화합대중이 기도·수행·교화하는 도량에서 새 천년의 희망찬 출발을
자축하는데 때마침 낙조가 장관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외아들로 태어나서 부모 사랑 듬뿍 받으며 곱게만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집안에서 맴돌던 소년은 고등학교 때 하숙을 하면서
인생에 조금씩 눈뜨게 되었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고, 군대에 자원입대한 것도 인생을 알고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톨스토이가 80세에 세상 떠나기 5일 전, 평생 모은 재물과 명예를 다 버리고 가출한 사건을 보면서 삶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님 말씀 덕분에 도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걸음걸이며 말씨도 공자님 비슷하게
하려 애쓴 적도 있었다.
“군대 있을 때 조계사에 갔다가 처음으로 반야심경 강의를 들었어요. 강의는 지리했는데 나중까지 마음에 여운이
남더군요.”
진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던 청년 시절 당시 유명하다는 교수님과 목사님들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러 다녔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분들의 말씀, 들을 때는 쑥 빠져들었다가도 나중엔 별 감동이 없었는데 스님의 강의는 달랐다. 하지만 출가수행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아 성장을 위해 공직을 택했으나 상처만 입었다. 그 때 쇠약해진 심신을 추스리고, 인생의 진로를 새롭게 정하기 위해 절에 왔다가
그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평온을 느끼고 삭발 입산했다.
고생 모르고 자라 행자생활이 힘겨웠지만 잘 참아낼 수 있었다. 참선 수행을
하면 자아완성은 물론이요, 우주 만유의 이치를 깨칠 수 있다는 선방 수좌들의 이야기에 솔깃해졌다.
“수계하고는 바로 선원에
들어갔습니다.”
책을 통해선 성인의 길에 대해 알 수 있었을 뿐 성인이 될 수는 없었기에 오로지 수행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첫 철을
당대의 대선지식인 향곡(香谷) 큰스님의 회상인 경남 양산 묘관음사 선원에서 보냈다.
3개월 여 선수행에 힘쓰다보니 화두가 잘 들리는 듯해
선 또한 대단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2~3년 수행을 했는데도 별 진전이 없자 다급해졌다. 바짝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으로 강원도 산중의
도인스님을 찾아갔다.
허름한 행색의 촌로 같은 노스님을 뵙고 짐짓 실망스러웠다. 도인이라면 뭔가 달라야 할텐데… 물론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잠도 안 자며 정진하는 노스님의 형형한 눈빛은 범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도인에 대한 기대치가 큰 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십년 수행한 도인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싶어 선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했지요.”
어느 날 저녁 “어허 큰일이로고. 불이 났군”하는 노스님 말씀에 깜짝 놀라 불이 났다는 집으로 한달음에 뛰어갔다. 노스님
말씀대로 토굴에서 40리 떨어진 그 신도집에 불이 났고 막 불을 끈 참이었다.
“토굴로 돌아와서 ‘어디 어디가 많이 탔지’하는 말씀에 더욱
놀랐습니다. 직접 보고 돌아온 나보다도 더 소상히 알고 계셨지요.”
손님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공양을 준비시키는 등 그런 일은 가끔
있었다. 그 뒤로 노스님을 달리 보게 되었고, 참선공부에 대한 신심이 깊어져 더욱 치열하게 수행하였다.
“공부를 하다보면 그런 경계가
대단한 경계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볼 수 있는 것인데, 그 때는 대단해보였고 새롭게 발심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노스님은 불현듯 암자를 떠나셨으나 정진에 고삐를 조이고 있던 터라 문제되지 않았다. 불때는 것과 하루 두 끼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정진에만 힘썼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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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를 숙지하고 참으로 발심해서 간절하게
참선수행하면 흔들림없이 정진할 수 있다"고 조언하시는 무여 스님은 특히 지극한 수행, 철저한 계행, 따스한 보살행을 통한 대승보살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오직 화두참구에 밥먹는 것, 불때는 것도 잊어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방과 삭아서 물처럼 변한 밥을 대한 적도 있었다.
“그 때
나름대로 애는 썼지요. 먹고 입고 주하는 데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요. 춥다 덥다, 밥맛이 있다 없다, 몸이 가렵다 가렵지 않다는 것 정도는
초월하게 됩디다.”
흔히들 편식하면 병이 든다고 하는데 수행의 세계, 진리의 세계에서 통하는 말은 아니다. 몇 끼를 굶어도, 언밥에
간장만 먹어도, 무려 8개월 동안 한 번도 씻지 않았어도 살이 뽀얗게 오른 수행자의 체험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용맹정진 9개월
만이던가. 간첩출몰로 인해 토굴을 떠났다. 강원도 해안선을 따라 부산을 거쳐 목포까지 만행하면서 행선(行禪)의 묘미도 체험하였다.


영원한 깨달음의 길
스님의 그 힘겨운 수행역정을 그리면서 ‘선수행의 이익’에 대한 속된 질문을 던졌다.
“선수행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서
마음을 닦는 방법입니다. 마음을 집중하면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도, 온갖 번뇌망상도 다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편안합니다.
더 깊어지면 마음이 지극히 맑아져서 지혜가 생기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희열을 느낍니다. 이를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선수행입니다.
더 깊은 선수행을 함으로써 진리의
세계에 들고, 이 땅이 그대로 극락인 것을 체험할 수 있지요.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계발되고, 웬만한 병은 물리칠 수
있습니다. 공부 못하던 아이가 참선을 하면 머리가 좋아지고 능력 부족으로 사업에 실패한 사람도 창의력과 판단력 등의 지혜가 생겨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선은 어떤 수행보다 어떤 교육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선을 흔히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한다. 우주 만물의 근본진리를 깨달은 분이 부처님이고, 부처님을 달리
말하면 완성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스님은 자기완성의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 선이라고 역설하신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와 덕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지요. 불자라면 누구나 그 말씀을 진실되게 믿고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바탕은 부처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끝없는 옛적부터 윤회하면서 쌓은 업 때문에 본래면목이 드러나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나는 먼지와 때로 비유되는 업을 쓸어 내는
방법으로 간화선을 택했지요.
간화선은 화두를 들고 하는 것인데 화두는 옛 조사스님들의 법문으로 일종의 수단이에요. 화두에 정신을 집중해서
깨달음의 경지에 드는 것입니다. 간화선은 처음 하는 분들에겐 어렵게 느껴질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참으로 발심해서 들어가면 의외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참선 중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간화선이 가장 선진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는 무여 큰스님, 불자들은
물론 서릿발 같은 기상의 수좌들에게도 흠앙을 받고 계신 스님의 향기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
“불교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가까운 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일거수 일투족 불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풍요로운 세상이 되고 과학문명이 발달한 세상일수록 불교적인 수행이
절실합니다.
현대인은 제정신을 잃고 사는 듯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외면하고 허망한 것을 추구하다가
보면 괴롭고 부끄러운 일생이 되고 말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도, 이웃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도 수행을
해야 합니다. 선수행으로 자기를 알고, 자기와 남이 둘이 아니고,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닌 이치를 자연스레 터득할 때 인간의 뿌리깊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진정한 행복,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 닦는 일이 단시간에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꾸준히 하다보면 어제보다는 오늘이 좋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좋은 긍정적인 변화가 온다.
“수행이 되고 안 되고에 신경쓰지 말고
수행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가지고 매일 애쓰면 그만큼의 이익이 있으니 오늘부터라도 앉아보십시오.”라는 스님의 말씀에는 중생 사랑이 절절이
배어 있었다.
선수행을 생활화해서 하루하루 활력있게 살면서 자아와 온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재미를 느끼면서 살아간다면 인간과 인간의
갈등, 자연과 인간의 불협화음도 사라지고 이 땅에 그대로 평화가 오리라.
21세기 인류의 화두라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의 근원적 해결책 또한 선수행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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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님의 댓글

김종진 작성일

큰스님 감사합니다.